4. 쪽팔려도 당당해서

회전을 하십시다.

by 이요마

쪽팔려도 당당해서


연휴이고 해서 드라마를 몰아봤다. 또 오해영!

7편까지만 보고 테레비를 껐다. 아껴보고 싶어서.


순간 끝나지 않았으면 해서 영원히 붙잡고 싶었던 경험. 그런 경험이 있긴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하리보 젤리 아껴먹은 것 말곤 없었던 것 같다.


드라마 속 '그냥 오해영(서현진 분)'은 아프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예쁜 오해영(전혜빈 분)'과의 비교가 숨을 쉴 때마다 들려오는 품평이 그리고 지지리 궁상에 못난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그녀를 못난이로 몰아간다. 그래서일까 매 편마다 눈물을 흘린다.


그냥 오해영은 박살난다.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면박을 받고 오해를 살 일들이 끊임없이 터진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래도 그녀는 산다.


시청자들은 안다. 그녀는 차고 넘치게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지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본인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년 전 내가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들은 얘기가 있다. 옆자리엔 원장이 다른 손님의 세트를 말고 있었다. 가위를 가지러 캐비넷으로 간 미용사를 기다리는 사이, 앞 뒤 맥락도 없이 귀에 꽂힌 한 마디였다.


나는 말 한 마디 없이 꽁한 애들 싫어해. 이게 물이 고이면 썩잖아? 뭐라 그래. 회전이 되어야지. 좋다 싫다 말해야 회전도 되고 풀건 풀고 좋잖아.


아마도 그녀는 '순환'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라는 질문에 "그냥 잘 잘라주세요."라고 말하려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늘 그랬다. 머리가 잘 안 되어도 그럭저럭 오케이, 잘 나와도 오케이.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되든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항상 오케이했느냐면 꼭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회전이 안 되는 사람."이다. 화끈하게 할 말 내뱉고 상처도 주고 상처도 받고 뒤끝도 없고 하는 것이 안 된다.


남에게 결례가 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문다.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을 돌린다. 누군가는 나에게 재미없다고, 너의 그 행동들이 자신을 불편하게한다고 말했다. 어떤 친구는 일본인(!?)같다는 코멘트도 주었다.


확실히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되려면 "가는 말"이 있어야 한다. 가는 말이 없다면 상대는 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오는 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남을 생각해서 스스로 '회전(?)'을 포기하면 원장의 말처럼 필연적으로 마음 한 편에 고이는 것이 있다. 대개는 후회와 아쉬움이 자리한다. 그 때 그 사람에게 말 한 마디 더 해보고 싶었는데, 그 때 그 말을 했었더라면. 하는 지나간 '그 때'에 대한 기억들.


고인 기억들이 쌓일 수록 나는 두려워진다. 데이터라는 것은 참 재밌다. 망설인 기억의 데이터들이 쌓일수록 어째 있지도 않았던, 혹은 있지도 않을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잘하게 된다.


이렇게 했다면 어찌저찌 되겠지 하는 예측만 하게 된다. 대부분은 성공할 확률이 적어 마음을 접게 되는 그런 예측들을 말이다. 이게 다 회전을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그냥 오해영은 당당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치여도 끝없이 당당하다. 나는 그가 회전을 잘하기에 아파도 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도경(에릭 분)에 대한 사랑을 털어 놓는 장면들, 이사도라(예지원 분)에 대한 분노를 동료들에게 털어 놓는 장면들, 때론 당사자에게 솔직하게(혹은 의도치않게) 뱉어내는 감정들은 그를 당당하게 한다. 그냥 오해영은 솔직함으로 인해 건강하다.


나는 그냥 오해영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말로만 남을 위한 행동을 해왔구나.


하고.


실은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 꽁하게 담아두었던 것이다. 용기가 없었다.


다만 쪽팔리고 깨질 용기가 없었다. 듣는 사람의 기분을 핑계로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항상 무언가 숨기고 있는듯 그럭저럭 오케이 하고 넘어가는 모든 말들이, 괜히 비겁하게 느껴졌다.


진솔하게 말하는 듯 보여도 나는 남을, 아니 내 자신부터 속여온 것이다. 이젠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진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남겨둘 순간도 하리보 젤리말곤 없었던 것 같다. 격하게 기쁘거나 격하게 슬픈 순간에도 나 스스로 '그럭저럭'으로 처리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갑갑하다.


하지만 다행이다.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며,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것은 쉽진 않을 것이다. 습관이라는 건 무서우니까. 하지만 바꿔보려 한다. 습관이라는 건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회전 해보겠습니다! 나와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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