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정물의 색, 하늘의 색
일곱시 십삼분의 하늘을 본 적이 있나요
집에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위를 쳐다보았고, 하늘의 색이 하나가 아니란 것을 알게되었다.
저 멀리 태양이 넘어가는 산 근처에는 붉은 색이,
그보다 조금 위엔 노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조금씩 올라와 고개를 구십도로 꺾어 위를 보고나서야 내가 알던 푸른 하늘이 있었다.
그라데이션마냥 펼쳐진 하늘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적이 먹먹해졌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 혹 들킬까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앙다물게되는 그 느낌.
나는 어느새 벤치에 자리를 잡고 뉘엿뉘엿지는 해를 보았다. 비로소 내가 왜 마음을 졸였는지 알게 되었다.
수채화를 그릴 때 필요한 용품들은 많다. 일단 종이가 있어야겠고, 선을 그을 연필이 있어야하고, 이를 지울 지우개가 필요하다. 물감과 물감을 풀 팔레트, 붓도 필요하다. 그리고 물통이 필요하다. 이 글은 물통의 이야기이다.
나는 어릴 적 몇개월간 화실을 다닌 적이 있다. 수채화 비스무리한 것을 조금 배우긴했는데 애석하게도 지금은 전혀 그리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화실은 물에 절은 스케치북과 꾸정물을 담고 있던 불편한 물통들의 모습이다. 번지는 것이 싫은데 종이가 찢어지는게 싫은데 색이 섞이지 않았으면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던 그런.
그 중 가장 미웠던 것은 물통의 꾸정물 때문에 쓰고 싶은 색을 못쓸 때였다. 붓을 빨아다 팔레트에 휘휘저으면 거무티티한 색이,
딱딱히 굳은 노란색을 살살살 녹이는 동안에도 거무잡잡한 색이,
물감을 새로 짜든, 물을 바꾸든 하지 않으면 답이 안나오는 파괴적인 색이 싫었다. 태어나서부터 검은 그 색이 그저 싫기만 했다.
하늘의 색이 바뀌는 건은 순식간이었다. 투명한 물이 가득찬 물통에 물감이 묻은 붓을 툭 담근 것처럼. 머리 꼭대기부터 붉은 쪽으로 어둠이 스물스물 하늘을 물들였다.
그때 보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맥락없이 검은 물 색을. 하늘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그 색을.
나는 그 색이 두려웠다. 내가 생각하던대로 그리던 그림을 망칠까봐. 나의 세계를 더럽힐까봐. 괜히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와중에 몹시 아름다웠다.
시계를 보았다. 이 참담한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두고두고 곱씹고만 싶었다. 일곱시 십삼분. 시간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계절에 따라 해지는 시간이 다르다는걸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