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소설] 제5도살장

기억을 복원하는 아무말의 이유

by 이요마
제5도살장(1969)

사진 출처 : 알라딘


* 읽은 책은 2017년에 나온 문학동네 판

* 다시, 매일 읽고 기록하기 1일차

* 이 글에 담긴 내용은 과학적, 논리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1. 들어가며


기억의 순서는 정방향이 아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거나, 원인과 결과에 따라 딱딱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기억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뇌리에 박힌 어느 한 장면. 그 '기억에 남을만한 한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재구성된다.


그래서 같은 날, 같은 곳에서의 기억도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 이를테면 일곱살의 기억을 열살에 기억하는 것과 서른살에 기억하는 것이 다르듯 매순간 달라진다.


때문에 기억은 팩트일 수 없다. 그렇지만 팩트보다 진한 진솔함을 간직할 수 있다. 기억은 기억할만큼 임팩트가 있는 이미지이기에 그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 때의 감정, 생각, 판단 어떤 것이든 기억 속의 순간은 멈춘다. 멈춘 상태로 기억하는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그 시공간은 보존된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기억은 진실은 아니일지언정 진솔은 할 수 있다고 본다.


2. 전쟁과 기억 복원의 작업


작가 커트 보니것은 본격적으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곁다리 이야기를 푼다.


함께 전쟁에 참전한 친구를 찾아가서 '전쟁'의 이야기를 하겠노라 말한다. 이에 친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닫아버리고, 친구의 아내는 전쟁이야기를 쓰려는 보니것을 못마땅하게 본다.


보니것이 쓴 소설이 실베스타 스텔론 같은 배우들이 나와 '전쟁을 멋있게 그려낼까봐.' 친구의 아내는 경계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보니것은 약속을 하나 한다. 소설의 제목을 '소년 십자군'이라고 붙이겠노라는.


제5도살장은 말하자면 반전소설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야기. 그러나 읽다보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 그런.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시간'때문이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세 가지 시공간에 존재한다. 노인이 된 현재와 전쟁 포로였던 과거 그리고 외계인들의 행성 트랄파마도어의 동물원에 있던 시절. 빌리는 과거로, 미래로 끝없이 돌아다닌다.


시간은 얽혀있는 와중에 그가 하는 말은 혼란을 더 크게 만든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다는 식"의 해탈한 듯한 태도가 그러하다.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삶에는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쨌거나 한 순간일 뿐이다. 때문에 기쁘거나 슬프거나 죽거나 살아있거나 하는 것을 개의치 말라는.


인생은 결정되어 있고, 순간의 희노애락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이 이야기는 영화 컨택트의 헵타포드어(시련이 있을지어도 그것을 감수하고 미래를 맞이하겠다.)나 드라마 또 오해영의 박도경(에릭)의 예지(죽기전에 후회할 짓 하지말자 + 미래를 바꾸자)등 수많은 매체에서 다루는 '미래를 안 사람'의 이야기류로 볼 수 있다.


다만 제5도살장의 차별점이라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컨택트의 주인공은 스스로 예견된 미래를 선택하고, 또 오해영의 박도경은 예견된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바꿔 미래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이에 비해 빌리 필그림은 수동적이다.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살다보니 뭐 그런거지. 하는 태도를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환경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이 이유를 '전쟁과 기억 복원 작업'이라고 이름 붙여보았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전쟁이 끝나고 약 40여년이 지난 후에 이 소설을 썼다.


전쟁 당시의 기억은 40년간 재구성되어 원본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있었을 게다. 더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자기검열과 삭제가 붙었을 것이고.


때문에 기억이 파편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듯, 이 소설도 여러 시점을 오가며 조각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기억을 꺼내 기승전결에 맞춰 글을 쓸 수도 없었겠거니와 복원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끔찍한 순간을 잊고 싶은 마음과
글로 당시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파편적이고 산발적이지만 전부 이어져있기에 더 진솔하게 읽히는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기억나는 순서대로(물론 소설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무작위하게 진술한 이야기와 이렇다할 거절없이 휘둘리며 끌려다니는 빌리 필그림의 조합은 "전쟁은 참혹해! 더 이상의 희생을 막자!"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진한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뭐 그런거지. 그래서 기록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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