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소설] 좁은 문

'내 맘대로 책 읽기'지만 내 맘대로만 읽지는 말자

by 이요마
8901086301_f.jpg 좁은 문(1909)

사진 출처 : 알라딘


* 읽은 책은 2008년에 나온 펭귄클래식코리아 판

* 다시, 매일 읽고 기록하기 2일 차

* 이 글에 담긴 내용은 과학적, 논리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1. 들어가며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과 종교',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플라토닉 러브)' 혹은 '부모의 행동이 자식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또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이해력도 좋지 않은 나는 '좁은 문'을 '마음'을 중심으로 읽어보았다.


굳이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이유는 위에 언급한 대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보통 내가 책 읽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경우는 두 가지다.(원래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은 함정ㅋ)


아껴서 읽고 싶거나, 잘 안 읽히거나.


비장하게 이 말을 꺼냈을 때는 전자인 '아껴서 읽고 싶어서' 겠구나! 하고 추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경우는 책이 잘 안 읽혀서 시간이 걸렸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번역'에 대한 감각은 부족하다. 어떤 것이 자연스럽고, 어떤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할 수준은 아니다. 내가 잘 못 읽은 이유는 번역한 문체의 탓이라기보다는 문장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작품,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주인공이 누군지 파악하고, 그의 상황이 어떠하며, 어떤 식으로 일을 풀어갈지 예측하는 것.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흐름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개인적인 의견일 뿐 비난이나 강요의 의미는 없습니다.)


2. 예측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좁은 문'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주인공 제롬은 어릴 적부터 자주 교류하던 외삼촌 댁의 사촌 누나 알리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은 '약혼'이나 '결혼' 같은 제도적인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프랑스의 결혼제도에 대해선 잘은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선 사촌 간의 결혼이 가능한 듯 보였다.), 장거리 연애와 플라토닉 러브를 유지하다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다.


(종교 이야기는 내가 잘 모르기에 제외했다. 글을 읽고 혼자 받아들이는 것과 남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의 책임은 다르다고 생각해서. 후에 공부를 더 하고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는 꼭 이야기를 하리라.)


다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습관'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습관의 키워드는 '예측'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고, 살아온 경험이 있으며,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혹은 소설 속 상황에 몰입하여 책을 읽게 된다. 때문에 인물들의 대화 하나하나에도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깔렸던 복선이나 이전 페이지들에서 얻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읽는 이의 생각도 개입된다. 그가 살아오며 누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물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예측한다. 이것은 소설의 묘미일 수도 있겠다. 예측이 맞아 들어갈 때의 통쾌함이나 예측이 어긋났을 때의 반전의 재미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키워드는 '마음'이고, 책을 읽으며 마음은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좁은 문'이 잘 읽히지 않았던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보면,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기에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같은 한 마디에서도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고, 앞뒤를 뒤적이며 상황을 확인하여 답을 구하는 데 급급했다. 다만 '어떤 목적'에 맞춰서. 그래서 알리사랑 제롬은 이어지는 거야 뭐야. 하는 식으로 편리하게 정리를 해버렸으니 인물들의 대사 속에 묻어나는 '마음'은 읽지 못할 수밖에.


맥락과 상황 파악 그리고 그에 맞는 문제 해결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문제는 내가 상대를 이해할 때 '나의 데이터로만'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상대의 맥락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바탕으로 추측을 하기에 서로의 마음이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책의 내용 중에 제롬이 알리사가 사는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군 복무를 하러 갔을 때(물론 그 전에도 꾸준히) 둘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가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얻는다.


그러나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는 편지를 주고받을 때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잠시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썰렁함이 그들을 지배한다.


사람은 변한다. 일분일초,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변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다 변하고, 또 변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사람 혹은 소설 속 인물들은 '내가 본 마지막 순간의 그'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그와 실제의 그의 괴리가 생길 수 있다.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왜 제롬은 알리사에게 적극적이지 못하는가, 알리사는 왜 제롬을 밀어내는가 라는 둘의 사랑의 문제로만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 같다. 상대의 맥락이 빠진 고민이기에 그랬다.


알리사의 가정환경 이를테면 바람나서 도망간 어머니, 그로 인해 생긴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첫째 딸이기에 가정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 동생들과의 관계, 종교적인 스탠스 등을 파악했어야 한다. 제롬의 입장도 알리사의 동생 쥘리에트가 자신을 좋아했던 사실, 쥘리에트를 좋아했던 친구가 그 사실을 듣고 관계가 살짝 틀어질 뻔했던 경험, 아버지의 부재, 유학과 군 복무 등 퐁괴즈마르(알리사의 집이 있는 마을)를 떠나 돌던 상황, 그가 생각하던 알리사의 상 등을 파악했어야 한다.


내가 진단한 나의 문제는 책을 단순화시키는 데 있었다. 이전까지 읽어온 사랑이야기, 본 드라마나 영화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오만하게도 '남녀의 사랑'으로 예측하고 혼자 확정 지어버렸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장거리 연애'나 '종교적인 이유' 혹은 '가족 관계'이고, 이야기의 결말은 알리사와 제롬이 이어지든 이어지지 못하든 하는 두 가지로 도출을 한 것이다.


이런 프레임으로 '좁은 문'을 읽다 보면 읽히지 않을 수밖엔 없다. 제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주는 정보가 한정적이고, 인물들의 대화는 뜬구름을 잡는 듯하다. 예측을 통해 정답으로 정한 '사랑의 완성'은커녕 갑갑하게 주변을 뱅뱅뱅 돌다가 돌다가 이야기 끝이 나버린다. 원하는 정보를 찾다가 답을 못 찾은 이런 경우들에 나는 이렇게 말해왔던 것 같다. 이상해. 결말이 허무해. 그도 아니면 뭐라는지 모르겠어 비추천임 ㅇㅇ.


인물들의 '마음'은 책으로 출판한 이상 같은 판본의 책을 읽는다면 같은 글자로 적혀있을 것이다. 다만 읽는 이에 따라 같은 인쇄물도 다르게 읽힐 수가 있다. 역지사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입장'에서 재단하며 읽지 않는 것이 최소한 글을 읽을 때 오해는 줄이고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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