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

그릇이 작다고 키울 필요는 없다

by 이요마
약간의 거리를 둔다(2016)

사진 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6일 차

* 연재까지는 아니고, 가급적 자주 업로드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일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얻을 수 있는 건 보람밖에 없는 일을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때문에 내가 이 작업을 하며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좋아서 시작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일이 되고, 일이 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나도 처음 시작은 '글쓰기'욕구와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은 욕구가 합쳐져 '재밌자고'시작을 했다.


그렇지만 기간이 길어지고, 들이는 시간 대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지치더라.


그래서 나는 읽기 쉬워 보이는 책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좋은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지만 나는 숫자도 중요했다. 이를테면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는지 어떤 책 리뷰가 조회수가 많았는지 같은.


그렇다 보니 가급적 빨리 볼 수 있는 얇은 것이나 술술 읽히는 에세이, 글씨가 거의 없는 그림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전까진 막연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힐링'붐이 거세게 불었을 때 우후죽순 나온
에세이들처럼 '넌 괜찮아. 다들 그런 거야.' 하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 '에세이'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가치 없는 장르라고만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내가 읽어보지도 않고 추측한 에세이의 모습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떠들어댄 것이 부끄러워졌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집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상관없다.


기억나는 작가의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였다.


타인과 나, 불행을 견디는 법,
그리고
세상의 잣대와 나

(이 워딩들은 제가 임의로 한 구분입니다.)


'타인과 나'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불행을 견디는 법'은 세상에 던져진 자신에 대하여,

'세상의 잣대와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2. 타인과 나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한 착각과 넘겨짚는 태도에서 오해가 생긴다. 그 오해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도 하루아침에 갈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이 있고 각자의 통찰이 있기에 내가 당연히 A라고 생각하는 일을 상대가 B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철저히 '자신'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위와 같은 경우도 '그러니까 말이야. 나와 네가 다르듯 역지사지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라는 교훈적인 방향으로 쓸 법 도한데


그는 '타인은 나를 염두에 두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처받을 필요 없다. 다만 나도 남에게 말을 할 때 끊임없이 경계한다. 나이를 먹어도 내가 잊지 않고 지키는 한 가지 규칙이다'라는 뉘앙스로 말한다.(책을 보면서 쓰는 것이 아니기에 내용은 상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체를 통해서 자신이 내뱉는 말과 자신의 태도가 일관성 있게 하고, 글을 더 진솔하게 만든다.


'나 때는 말이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다 그런 거야.'하고 말하는 태도는 자신의 경험을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처럼 눙쳐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한정시키고 '나처럼 해봐.'라든지 '너와 나는 같아'라고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는다. 그저 '뭐 그렇다고.'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3. 불행을 견디는 법과 세상의 잣대와 나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이렇다 보니 책에서 유익한 것을 얻거나 어떻게 읽으면 잘 읽었다고 소문이 날까 라는 생각으로 책을 고르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유익한 정보도 정리된 교훈도 없이 조곤조곤 난 뭐 그렇더라 하는 진솔한 진술은 '쓸모'가 없기에(혹은 쓸모가 없어 보이기에) 가치가 있다. 목적 없이 읽기에 가치가 있을지어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심한 근시를 갖고 있다가 오십 대에 실명위기에 처한다. 기적 같은 확률로 수술이 성공하고 시력을 회복하여 외려 안경을 벗고 생활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이에 격한 감정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인생이 뭐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일관성 있게 불행 앞에서도 담담하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 나오는 한 마디가 떠오른다. 뭐 그런 거지.


그는 말한다. 사는 건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고. 그러한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굴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와중에도 긍정적으로 잘 살아보자고, 살 길을 찾아보자고 말이다.


더불어 세상의 잣대에 대해서도 진술한다. 세상과 타인의 잣대에 나를 맞추지 말자고. 나와 당신이 다르듯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다고.


작가는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삶을 견디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성공신화가 몸에 밴 긍정 양키류 이야기와는 상반되는 잔잔하고 조용한 목소리다. 일본어투를 빌려오면 '나란 녀석이 성공할... 리가 없잖아? 헤에ㅡ 그건 무리. 정말로 무리야.'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뒤에 한 줄이 더 붙는다.

'성공 같은 것 안 하면 어때. 내가 나답게 잘 살아가면 되지.'

이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도 가진 자의 여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작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꼭 큰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그릇을 알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태도, 세상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에 맞는 삶을 찾겠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행복한 태도일 수도 있겠다.


그릇이 작아도 한 없이 깊을 수도 있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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