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하다
사진 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7일 차
* 연재까지는 아니고, 가급적 자주 업로드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누구나 한 번쯤은 던져볼 것이다. 단순히 좋다 싫다 라는 선호나 그 사람 괜찮다 별로다 하는 평판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해도 '나'는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선호나 평판은 시간이 흐르면 바뀔 수 있다. 나를 평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나 입장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기록은 그 순간 그대로 멈춰있다. 긍정적인 평가가 담긴 기록은 계속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담긴 기록은 계속 부정적으로 말이다.
이러한 기록은 온전히 기록자의 평가이다. 다시 말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기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때문에 기록자는 사실이 왜곡되거나 평가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더불어 지치지 않고 대상을 관찰해야 한다.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잘 추슬러서 모든(거의 대부분의) 자료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도록 핍진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당사자는 잘 모르는 '그'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어쩌면 자서전보다 더 진솔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팩트보다 더 진실한 픽션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디어 랄프 로렌은 미국 유학을 하던 대학원생 '종수'가 랄프 로렌의 흔적을 쫓아다니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그 여정은 타인들이 보기에, 또 종수 본인도 자각하기에 낭비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는(고등학생 때의 사랑 수영) 랄프 로렌이라는 키워드를 물고 늘어진다.
2.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과 사건
소설가 정이현은 책의 뒤표지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어떤 작가에게나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소설이 있다. 쓰지 않고는 스스로를 넘어설 수 없는 소설. 누가 뭐래도 지금 완성해야만 하는 소설. 손보미의 첫 장편을 기다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그의 장편을 읽으며 <디어 랄프 로렌>이 손보미라는 작가에게 바로 그 소설임을 알았다.(중략)"
쓰지 않고 넘어설 수 없는 소설. 소설가 손보미는 어쩌면 '종수'를 통해 자신이 소설을 써야만 하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풀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시작부터 급박하게 돌아간다. 주인공 종수가 기쿠 박사 연구실에서 '자네는 훌륭한 학생이나 우리 연구소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식의 완곡한 퇴학 통보를 맞닥뜨리는 장면,
그리고 좌절하여 술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 잊고 있던 편지 속에서 고등 동창 '수영'의 청첩장을 보는 장면, 수영을 떠올리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랄프 로렌 컬렉션에 대한 회상 장면까지.
연구실 퇴출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은 한 인물의 행동과 생각을 뒤엎어버린다. 그리고 생각이 랄프 로렌에까지 미치자 종수는 홀린 듯 도서관에서 '랄프 로렌'에 대한 정보를 찾게 되고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모으려 한다.
작가의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처럼 종수도 '랄프 로렌에 대해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는 단지 현실에서 마주한 어느 '사건(연구실 퇴출)' 때문이라기보다는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자신의 인생에서 꼭 해결해야만 했던 '문제' 아니, 해결했어야 했지만 외면하고 미뤄오던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종수의 과거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종수는 철저한 부모님의 통제 아래 성적을 유지하는 우등생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같은 반의 '수영'이 찾아온다.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종수에게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부탁하는데, 그 편지가 바로 '랄프 로렌'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수영은 학교 끝나고 강남역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랄프 로렌 컬렉션(이를테면 헤어밴드나 티셔츠, 바지, 속옷 등)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하는데, 그 컬렉션의 완성을 '시계'라고 생각하여 랄프 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쓰려고 한 것이다.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움직이는 데 익숙하던 종수에게 수영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둘은 수영이 일하는 강남역 맥도날드에 나란히 앉아 편지를 번역한다. 여차저차하여(궁금하시면 책을 읽어보시길!) 둘은 멀어지게 되고 편지 번역을 시작한 이후로 성적이 점점 떨어지던 종수는 전보다 더한 부모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렇게 둘의 이야기는 끝이다.
종수의 삶은 한 마디로 '변수가 없는 통제된 삶'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다 할 변화나 변화의 빌미가 될만한 변수가 모두 제거된 '효율적인 삶'을 걷고 있다. 마치 탄탄대로처럼 미국 유학을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유명한 학자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따라서 그에겐 '사건'이 없다.
그는 퇴출이라는 사건을 겪고 술에 취해 편지를 보면서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다. 처음 미국을 오던 시절과 지금 사이의 기억이 모두 지워진 것만 같다 라고. 그의 '사건'하나 없는 일상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이었을 게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연구소 퇴출) 이후로 그를 다시 일어나 생활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과거의 사건(수영과 편지 번역)이다. 과거의 사건의 키워드 '랄프 로렌'에 대한 막연한 매달림에서 그는 '랄프 로렌'의 이야기를 한 겹씩 벗겨나가는 동시에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이다.
문제라고 써놓았지만, 단계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프로이트가 발달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기기 등으로 나눈 것처럼(꼭 프로이트의 구분으로 단계가 나뉜다는 말은 아니지만 예시로 사용) 사람에게는 성장과정에서 넘어서야 하는 단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숙'이라는 말로 퉁치기엔 너무도 복잡한 감정이 응축되어있는, 단계를 넘어서는 일은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단계를 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무르며 집착이나 도착증세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종수는 사춘기 때의 '어느 단계'를 넘지 못한 인물이었고, 이는 그의 자존에 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인도 모르고, 문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는 묵묵히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한 그의 삶의 변화는 연쇄적인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며 어느 단계에 머물러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즉, 표면적으로는 랄프 로렌의 행적을 뒤쫓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상 <디어 랄프 로렌>은 '종수'본인의 삶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는 평은 작가에게 유효할 것 같다. 랄프 로렌을 찾아 돌아다니는 '종수'의 여정에서 작가는 스스로 어떤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을까? 그는 자신이 머물던 단계를 넘어설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