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이 된 작가 커트 보니것
사진 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8일 차
* 연재까지는 아니고, 가급적 자주 업로드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 2017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을 읽었습니다.
1. 들어가며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가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나올 것이다.
죽은 작가의 시간은 멈춰있다. 그에게 남은 건 더 보여줄 새로움이 아니라, 그간 만들어온 것에 대한 평가뿐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잣대가 평가기준으로 서게 된다. 그것은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오리지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의 소설가'라는 책에서 오리지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ㆍ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ㅡ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98, 현대문학
2. 오리지널 보니것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커트 보니것이 2007년 죽은 후에 묶인 소설집으로, 2012년 그의 미발표 원고와 미완성 원고를 묶어 출간되었다.
책 뒤표지의 추천사를 보면 '커트 보니것 스타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보니것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하루키의 오리지널(이 정의가 완전히 신뢰할만한 것은 아니지만)의 세 요소를 정확히 짚어낸다.
-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고(커트 보니것 스타일의 전형!)
-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고(보니것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
- 그 독자의 스타일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어야('이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라는 뒤표지의 워딩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두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긴 하다. 먼저, 추천사나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따위의 수식어는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이미 유명해지고 난 이후에 내려진 평가라는 점이다.
커트 보니것의 책은 '제5도살장'과 이 책밖에 읽지 않은 나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려보면, 마케팅을 위한 워딩과 유명해지고 난 후의 사후평가를 잘 모르고 읽어도 충분히 '오리지널'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미완성 원고는 묘한 느낌을 준다. 아주 짧은 단편들이기에 내용을 언급하기보다는 내가 느낀 그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간단히만' 해보려 한다.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완전하지 않다. '거장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어딘가 어설프고 허무하다.
기승전결이 딱딱 맞아 들어가거나 이야기 초반에 뿌린 떡밥을 다 회수한다거나 하는 플롯의 재미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엄청난 반전이 있거나 거창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읽고 싶어 진다.
나는 왜 이런 이상한 느낌이 생길까 고민해보았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게) 글을 구성하거나, 엄청난 플롯을 보이지는 않더라도 계속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드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나는 그 이상함을 '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람마다 생긴 모습과 성격이 다르듯, 글에도 쓰는 사람의 색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보니것의 색은 '위트'인 것 같다. 일상의 사소한 장면부터 비극, 때로는 강력하게 비판을 하는 순간에도 피식피식 웃을 수 있는 유우-머가 동반된다.
말하자면 '웃픈'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황당한 상황에서도 엄격 진지 근엄하게 움직이는 인물이라든가, 진지한 상황에서 익살을 떠는 인물들 같은 작품의 '상황'과 '인물'이 어긋나는 판을 잘 짜는 것 같다. 그렇기에 뻔하지 않고 다음을 예측할 수 없으니 궁금해지는 마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살짝 언급했지만 '강력한 비판'도 그의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것 같다. 그의 소설에서는 강력하게 비판하나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회적으로 돌려 까는 방식을 선택한다. 세태나 차별, 잘못된 역사 등 거대한 주제 앞에서 그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농담을 하듯이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그 말들에는 뼈가 들어있다.
간접적인 언급 와중에 훅 치고 들어오는 직설적 비판, 다시 아니 뭐 그렇다고 ㅎㅎ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피해갔다가 다시 중요한 순간에 제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오묘한 줄타기를 잘한다.
그렇게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마냥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죽은 지 벌써 10년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도 '읽은 만한 텍스트'가 되어 자신의 오리지널을 후대의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 자체로 '커트 보니것'인 상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