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저성장시대의 새로운 군상 '성찰하는 인간'

by 이요마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2017)

사진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11일 차

* 연재까지는 아니고, 가급적 자주 업로드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보노보노는 늘 보노보노다. 어릴 적 투니버스에서 보았던 기억 속 모습과 수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지만 보노보노는 여전히 숲에서 조개를 들고 느릿느릿 걷는다. 여전히 포로리는 때릴 거야? 때릴 거야?라고 말하고 너부리는 여전히 화가 나있다.


만화 속 캐릭터는 성장 서사가 아닌 이상 그대로 멈춰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만화를 보는 나의 시선이 아닐까.


2. 만화 캐릭터와 에세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면 익숙한 캐릭터들이 보인다. 빨강머리 앤, 호빵맨, 보노보노 등등 과거에 테레비에 나오던 만화 속 친구들을 내세운 에세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 광경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만화 캐릭터들인가. 그리고 왜 이런류의 에세이들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솔직함, 다른 하나는 성찰.


만화 속 캐릭터들은 대개 솔직하다.(보노보노, 앤, 호빵맨 정도를 전제로 두고 글을 쓰겠다.) 이들은 문학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꿍꿍이나 계략, 권모술수는커녕 뒷담화도 거의 없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관계를, 사건을 맞이하고 열렬히 부닥친다. 이 과정에서 오해는 생길지언정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에 '켕기는 마음', '찝찝한 뒤끝'은 없다. 그리고 이 스탠스는 거의 마지막화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성장은 할지언정 인물의 성격이 막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만화 캐릭터를 바라보는 '나'는 어떠한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나의 감정과 나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가. 아마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지위, 인간관계, 돈 문제, 상하관계 등 솔직하지 못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솔직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진솔하다고 하여 그 사람을 더 좋게 쳐주는 것은 아니니까. 캐릭터는 내가 살다 보니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우직하게 지켜왔고, 지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다. 그 모습에서 나는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나의 모습'을 회상하고 내가 잃은 가치를 간직한 캐릭터에게서 진한 사랑(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푼다. 분류상 '에세이'인 글은 보노보노의 장면들을 끌어와 자신의 에피소드와 엮어 조곤조곤 책을 진행시킨다.


보노보노는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다. 명료하지도 않다. 단순하지만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선문답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물론 캐릭터가 귀여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론은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먼 시답잖고 원론적인 답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에세이에 맞게 선별한 것이긴 하겠지만, 대부분 보노보노의 문장들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 인물들에 동일시하여 자신의 에피소드의 상황에 맞는 보노보노 만화 속 조언으로 자신의 일상과 연결을 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전제된 것이 있으니 바로 '성찰하는 자세'다.


원론적이고, 밋밋한 보노보노 속 문장들이 힘을 받는 순간은 객관성이 보장될 때다. 이해관계나 힘의 우위가 개입되는 상황에서 '옳은 말'은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한다. 너라면 안 그랬겠느냐?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 는 질문에 떳떳하게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언행일치'와 같은 솔직함을 유지하며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노보노 같은 캐릭터는 '솔직함'을 유지한다. 그래서 그런 반문 앞에서도 원론적인, 정말 근본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현실적으로'라는 말로 도피해온 원래 그렇게 했어야 하는 '원론적 해결책'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부끄럽다고 말한다. 더불어 당연히 그러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서도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선문답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는 대신 성찰하며 유연하게 통찰한다.


3. 성찰하는 인간의 발견


책을 읽으면서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대개는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라는 마음이 울컥울컥 솟아 읽기를 중단했다. 내가 멈춘 부분들은 이를테면 '성공하지 않아도 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같은 것들이었다.


그 내용들은 어릴 적부터 배워왔던 '패배자의 서사'였기에 그랬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가 대표하는 '노오력'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어요^^ 하는 식의 이야기들. 애석하게도 나도 어른이 되고 노력을 해도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현실을 맞닥드리면서 그간 믿고 있던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도 나처럼 해봐. 그럼 성공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전만큼 효율을 내지는 못한다. 핑크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고성장 시대의 신화는 더 이상 없다. 위의 표어를 보고 '자수성가형'인물들이 탄생했듯이(물론 그 부작용을 이제야 앓고 있긴 하다.) 오늘날, 저성장 시대에는 새로운 인간상이 나타나려는 모양이다.


'난 안 될 거야 아마. 그렇지만 그러면 뭐 어때. 이게 나인 걸.'


체념과 조소가 섞인 말을 내뱉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인간. 더 발전하고 싶지 않은 인간.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인간. 이것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가 제시한 새 시대의 인간상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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