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는 세계와 감호하는 개인의 세상
사진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12일 차
* 연재까지는 아니고, 가급적 자주 업로드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시스템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인이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는가.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을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반역자로 혹은 스스로 생명의 위협까지도 각오하고 사람들을(미국 사람들) 위해 폭로를 각오한 순교자로 판단할 수 있을 게다.
책에서 취하는 스탠스는 후자이다. 과장된 비유일지 모르나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던 무차별적인 정보감시(민간인들의 휴대폰, 검색기록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휴대폰 카메라를 원격 조작해서 사생활 사진을 찍는 등 전 세계 사람들이 매 순간 감시를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를 단 한 명의 청년이 세상에 알렸다는, 어쩌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어쩌면 당연하게도 스노든은 미국을 뜰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시스템은 안정을 원한다. 안정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는 제거하는 것이 여태까지의 처리방식이었다. 안정을 위협한 스노든 이전의 내부고발자들도 그렇게 제거되어갔다.
정정당당하게 법정에 나와서 재판을 받으라는 미국의 제안(이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을 그로서는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정정당당한 재판을 받을 리 만무하고 시스템이 사람 하나 등신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상대하기에 시스템은 너무나 크기만 하다.
2. 감시하는 세계와 감호하는 개인의 세상
멋지게 소제목을 뽑아보았다. 감호(監護)는 감독하여 보호한다는 뜻의 단어다. 스노든 게이트 이후로 사람들은 예측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감시사회'를 실감한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라의 비밀 단체로 전송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 어떤 복장으로, 어느 플랫폼에, 어떤 속도로, 어떤 내용의 글을 쓰는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 내용이 그저 읽은 책을 리뷰하는 일개 리뷰어의 글 일지어도 말이다. 대놓고 '저 놈을 사찰해!' 하며 표적이 된 개인을 뒷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는 수억 명의 자료를 '건초더미'를 창고에 넣듯 일단 수집한다고 표현을 했다. 정보원들이 필요할 때 그 쌓아둔 건초더미에서 정보를 캐낸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큐레이션을 받고,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혜택과 더불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의 정보는 세계 어딘가로 퍼져나간다. 이때 사생활, 프라이버시라는 말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제시한 반역자와 순교자라는 말은 한 끝 차이다. 나의 개인으로서의 권리를 내려놓고 안전을 얻을 것인가. 당연한 권리인 개인적인 정보를 지킬 것인가.
책의 입장을 따라가면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 하고, 시스템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꼭 안전을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뉘앙스로 진술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만약에 급작스럽게 대한민국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난다면, 그것도 911 테러와 같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테러들이 연달아 터진다면 나는 불안함에 '차라리 감시를 받더라도 안전을 보장받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러한 공포감이 '테러 등의 위협을 철저한 감시와 데이터 분석으로 수십 건을 막아냈기에 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라는 주장에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무차별적인 감시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감시와 데이터 분석이 잘 안 되어서 테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정보를 통해 예방하는 것이지.
그렇게 무차별적인 감시가 이뤄지면 사람들은 '통치자의 이념'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엔 없다. 통치이념에 벗어나는 개인은 사회라는 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이고, 그런 존재는 늘 그래 왔듯이 축출된다. 빨갱이나 간첩이라는 말이 남일 같지 않은 그런 상황인 게다.(정말 남파공작원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위험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당할 수 있는 것)
그렇다 보면 점차 통제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모두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답이 정해진 디스토피아, 스노든의 첫 장면에서도 조지 오웰의 <1984>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빅브라더의 감시가 24시간 어느 곳에 나 닿는 그런 세상 말이다.
비단 스노든 게이트가 세상에 공개되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비밀리에 벌어지는 불법 감시, 감청 등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개개인은 스스로를 감독해야 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자급자족하며 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습게도) 필연적으로 감시에 노출될 것이다. 그렇기에 감시되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를 감독해봐야 한다. 나는 나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를테면 약관을 읽지도 않고 전부 다 동의를 체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사소한 체크부터), 나는 나의 개인으로의 성질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생각들.
생각을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기에 관한 성찰이 있고 없고는 꽤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유용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책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마무리하려 한다. 스노든은 만화책이다. 그렇기에 부담 없이 술술술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읽고 즐기기는 어려운 한 번은 곱씹어봐야 할 문제를 다루는 문제적인 책이기도 했다. 뭐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