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아지는가
사진 출처 : 알라딘
* 주 2회 리뷰(이게 바란스가 맞는듯)
* 다시, 읽고 기록하기 13일 차
*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주인공 요나는 여행사 '정글'의 직원이다. 직장에서 좌천당하고 상사 김에게 괴롭힘(성추행포함)을 당하던 그녀는 사표를 낸다.
상사 김은 요나에게 제안을 한다.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 출장으로 처리할테니 패키지 여행을 시험삼아 다녀오라는.
요나는 제안을 수락하고 베트남 근처의 '무이'라는 섬으로 5박6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회사 '정글'은 재난 투어를 기획하여 전 세계의 재난이 벌어진 곳을 여행상품으로 개발하여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무이'의 여행 테마는 '사막의 싱크홀'이었으니, 지금은 씽크홀에 물이 차 호수가 된 곳이 주요 관광코스다.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순조롭게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데, 요나는 배가 아파온다.
7번 칸에 있던 그녀는 화장실을 찾아 앞으로 앞으로 갔고 결국 일을 처리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아뿔싸! 이곳의 열차는 분리운행을 한단다.
5번 칸에서 끊어진 열차의 뒷칸은 급행열차로, 앞 칸은 완행열차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여권이며 캐리어며 지갑이며 뒷칸에 놓고 온 요나는 급하게 가이드에게 전화하나 핸드폰 밧떼리가 다 달아 그나마의 연락도 끊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중 묵었던 호텔로 돌아간 그곳에서 요나는 진실을 목격하게 되는데...
2. 살아서 다행이다.
뒷 이야기는 반전이 있기에 더 적지 않겠다.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많다. 플롯이 잘 짜인 소설이고, 마치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는 그 중 '재난 투어'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책에서 요나는 재난 여행의 효용에 대해 언급한다.
재난이 일어난 곳에서 재난의 참상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없었음에 감사하며 그곳 사람들을 동정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의 행복을 누리는 그런 메카니즘.(기억에 의존해 써서 약간 다를 수 있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쉽다. 어떻게 남의 슬픔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느냐. 그게 인간이냐.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책 속의 상황을 비판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꿨던 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묘한 꿈이었다. 사실 꿈이란 것이 일어나는 순간 잊어버리는 속성이 있어서 백프로 내가 꾼 것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그 장면이 생생하여 자다깨서 메모장의 기록을 남겼던, 그 기록을 바탕으로 썼던 짧은 이야기를 써보겠다.
나는 (꿈에서) 인천에서 서울에 갈 일이 있어 1호선 상행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건너가려는데 등 뒤에서 나를 잡는 이가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꾹 눌러쓴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조잡하게 난 턱수염 몇 가닥과 허옇게 튼 입술뿐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나에게 물었다. "혹시 꼭 지금 열차를 타야합니까." 나는 그를 도를 아십니까?하는 부류의 전도사나 구걸을 하는 걸인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개찰구를 통과하려 했다.
그는 그런 나를 저지했다.
"왜 이러세요!"
"다음. 아니 전철말고 다른 걸 타세요. 제발."
짜증을 내며 뿌리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제발? 말을 잘 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라고요?"
"제발 전철은 안 돼요."
그는 분명 제발이라고 말했다. 왜 생전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는 제발이라는 비굴한 말까지 하며 나를 말리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내가 벙쪄서 그를 보고 있자 그가 말했다.
"불이 보입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겁니다. 정말로요. 부디 전철에 타지는 말아주세요."
그의 말을 믿어야할까 고민이 들었다. 무슨 이유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전철을 타지말라고 난리일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벙거지가 만드는 그늘 아래로 씰룩이는 입이 보였다. 그리고 들썩이는 어깨도. 나는 문득 무서워졌고,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시간보다 넉넉하게 나와서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구태여 죽자고 막는 아저씨를 건너서 전철을 탈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광역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돌아서서 지하철의 출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벙거지 남자는 내쪽을 향해 구십도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살아주셔서."
살아주셔서인지 살려주셔서인지 뒷말은 명확치 않았지만 어느 쪽이든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나는 어깨넘어로 개찰구를 되돌아봤다. 벙거지 남자는 나한테 한 것처럼 사람들을 붙잡고 되돌려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 말고는 말을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않고 개찰구를 넘어갔다. 나는 괜히 이상한 사람 말에 속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말들 이를테면 제발, 불이 보입니다, 살아주셔서. 같은 것이 귀에 맴돌았다. 속는 셈치고 그렇게 나는 버스를 타게되었다.
좌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릴테니 자는 편이 나았다.(생각해보니 꿈 속에서 또 잔 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쿠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포탄처럼 단발적인 소음이 아니라, 마치 스키장 비탈에서 포크레인이 굴러떨어지는 듯 연속적인 폭음을 냈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스는 강을 건너고 있었고 버스에 탄 다른 사람들도 소리에 적이 당황해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갑자기 '뉴스속보입니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지하철 1호선 상행선열차가 용산역으로 가기 위해 한강철교를 건널 때 차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시간상 그 열차는 내가 탔을지도 모르는 차였으니까. 한강철교에서 폭발한 열차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가슴이 턱 막혀오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주변의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들을 한다. 나는 멍하니 발치를 내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살았구나. 열차에 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살아서 다행이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는 이내 엄청난 불콰함에 휩싸인다. 대형참사를 앞에두고 제일 먼저 한다는 생각이 살아서 다행이라니.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니.
나 자신이 쓰레기 같았다. 자책감이 나를 지배하는 와중에도 나의 생존에 안도하는 나 자신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이 즈음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또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살았구나. 아니, 꿈이였구나.'였다. 그 사실이 순간 또 다시 한심해져 한참을 앉아있었다.
벙거지를 쓴 남자는 예언자였을까. 아니면 혹시... 그가 쥐고 있던 서류가방이 문득 생각난 것은 왜일까.
3. 우월감과 죄책감
밤의 여행자들에 나오는 '재난 투어'의 메카니즘을 완전히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난 이 꿈을 통해 약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다. 종종 이타적인 인간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자신이 존재하기 이전에 타인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재난 앞에서, 아니 재난의 시뮬레이션 격인 꿈 속의 나는 비겁했다.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공감할 수 없었고 다만 나의 생존이 너무 기뻤다.
내가 그 상황을 피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찾아온 '도덕적으로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되었다는'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졌다.
자책감은 정말 이기적이게도 나의 안전이 확정된 순간, 열차에 탄 사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나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에서야 찾아왔다.
비교하기 뭣한, 비교해서는 안 되는 대상과 비교를 하며 안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게 했다. 어쩌면 꿈 속에서 핸드폰을 통해 가족, 친구들의 안위를 확인하던 사람들의 행동도 순수한 걱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자신의 안전, 상대적인 우월감을 확인한 후에 밀려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 삶의 의지를 키우려는 행동은 아니었을까.
재난 여행 상품은 그런면에서 우월감과 죄책감, 즉 사람이라는 존재의 약한(혹은 기만적인) 부분을 잘 캐치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