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에세이] 밤이 선생이다

상대의 맥락을 이해하는 태도에 대하여

by 이요마
밤이 선생이다(2013)

사진 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14일 차

* 주 2권 리뷰를 목표로

*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있습니다.

*책을 읽고 쓴 단상이기에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리뷰를 하다 보면 이따금씩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내가 읽는 책들은 나의 인생에서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읽은 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그런 고민을 할 법도 한 것이 대부분 에세이와 소설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전공서적을 많이 읽었다면 조금 달라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책을 잡았다면 이렇게 계속해서 리뷰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던 말.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해진다. 혹은 훌륭한 어른이 된다. 는 말이 생각났다. 리뷰를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시나 에세이를 백날 보아도 똑똑해지긴 어렵고, 훌륭한 어른이 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재미로만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인가. 아니 그렇지만은 않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교훈이나 기억에 남을만한 대목을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왜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이유의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2. 맥락이 있는 이야기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 평론가의 글을 모아 출판한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수록된 글이 수십여 편이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글쓴이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그의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때문에 유명한 저자의 책은 내가 생각하는 저자의 이미지를 선입견처럼 품고 읽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000 작가는 평소에 aaa 한 말을 많이 하니까 aaa 한 에세이를 쓰겠지 하는.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자 판단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온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에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린 이미지와 이미지에 맞춰 책을 읽으려는 나만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쉽게 말하는 경향이다. 이를테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건 별로야.'같은 경험에 대한 판단부터 '요즘 애들은 정신이 나약해 / 틀딱들은 도무지 답이 없어.'같은 세대차이까지, 손쉽게 단정 짓는다.


이해라는 말은 참 어렵다. 매일 이 단어를 쓰지만 이 말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너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은 오만한 말이다. 인간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니와 이해한다고 한들 타인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약간의 실마리를 찾는다 해도 "다 이해했어! 너는 00 한 거야."라고 단정 짓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기준에서 이해하고 정리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이해에서 '상대'는 빠져있다. 단정 짓는 순간 상대는 나의 정의에 갇히게 된다. 예를 들어, 다 이해한다. 그건 너무 착해서 그래.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그를 착하다고 말한 순간, 그는 그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착한 사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말 한마디는 상대의 속성을 '착함'으로 눙친다.

상대가 어떤 이유로 어떤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냥 말 그대로 니가 착하니까 그런 거야. 하고 후려치는 것일 뿐..

나는 내 입장에서 '이해'했을는지 몰라도 상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아이러니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맥락을 아는 것은 귀찮고 효율이 떨어진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문제를 찾고 해결방안을 찾는 편이 더 낫다.


성장하기 위해서, 효율을 내기 위해선 '별것도 아닌 것들'은 잠시 미뤄두고 진짜 중요한 문제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시간 대비, 투자 대비 최대 효율을 뽑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인간은 '별것도 아닌 것들'이 중요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별것도 아닌 것들'은 저마다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살아온 경험은 누적이 되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각자 다른 미감과 취향과 행동 패턴을 만들어 낸다.


살아온 날들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민 없이 00한 사람, 00한 타입 등으로 후려쳐선 안 된다. 그저 상대가 어떻게 지금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맥락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


에세이나 소설이 주는 정보나 효용은 얼마 없거나 어쩌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기에 그것들은 가치를 갖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물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를 읽어가면서 맥락을 잡아가는 과정. 그렇게 맥락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에세이와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상대의 맥락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연습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사실 이 모든 판단도 나의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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