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마감한다.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진 출처 : 알라딘
* 다시, 읽고 기록하기 15일 차
* 주 2권 리뷰를 목표로
*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있습니다.
*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주의!
1. 들어가며
매일 눈이 내린다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친다는 기약도 없이 한도 끝도 없이 내린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을까?
며칠은 눈을 치워가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씨가 열흘, 한 달, 일 년이 반복된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사람이 희망을 버리는 순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질 때이다. 오늘을 견디는 힘은 과거의 추억도 있겠지만,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보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살 수 있다는 약속은 사람이 '통제'를 할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해 생존은 보장되어 있기에, 내일의 목표는 생존이 아닌 '더 나은(가치있는) 삶'같은 2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더 나은 내일이 목표가 된다면 오늘의 통제는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날짜 없음의 배경과 같은 상황에선 애초에 내일이 없다. 하루 온종일 하늘은 잿빛이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알 길이 없으니 오늘과 내일의 구분도 없어진다.
때문에 오늘은 끝나지 않고, 기약할 내일. 즉, 미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 단위 구분의 소중한 요소는 오늘의 '끝'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낮에서 밤으로 다시 밤에서 낮으로 끝없이 이어지지만 오늘이라는 단 하루는 자정이 되면 끝이 난다.
이러한 구분, 끝이 있는 하루는 이를테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버텼어)." 따위의 말로 '마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날짜가 없어진 세계는 '마감'은 없다. 연속만 있을 뿐이다.
2. 마감 없는 세상
스스로 '마감'이라는 통제를 걸어놓고 글을 쓰는 나는 최소한 '내일'도 살아있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이 있다.
오늘 하루 잘 버티고, 살아서 내일을 맞이 한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당연해서 의식조차하지 못하는 감각이다.
그렇기에 '날짜 없음'의 인물들의 불안은 쉽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게다.
작 중에는 회색인 이라는 무리가 등장한다. 그들은 앞으로 올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살기 위해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이동한다.
끝이 없는 세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세상에서 다수가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생존확률을 높일 것 같은 선택이기에.
다수가 힘을 합쳐 한 인간 보다 강한 맹수에 대항할때는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나 대신 먹힐 사람들이 있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기에(ex)사자를 때려잡아서 위험요소를 제거)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색인의 이동은 개인의 힘을 모으거나 타인을 자신 대신 희생물로 삼기는 어려운 경우다. 함께 생존할 수도 있지만, 집단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결정을 내릴 때 다수의 선택을 따름으로서 마음의 안정(제대로 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ㅡ 나만 죽는 게 아니잖아! 하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는 있을 게다.
오늘이 끝나지 않기에 날짜 없음의 인물들은 항시 긴장해야한다. 오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최선의 선택을 해야하고, 긴장해야한다.
불확실한 정보를 따라 생존확률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살기위해 발버둥친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통제가 없다.
날짜 없음에서 보이는, 여타 재난 스토리와 다른 점은 주인공 해인과 그의 남자친구 그가 물건이나 음식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기상황에선 버티기 위해서 물이나 통조림을 아껴먹는 모습이 연출되는 데 비해 이들은 눈이 오든 말든 잘만 먹고 산다.
군고구마를 구워먹고, 찌개를 끓여먹고, 반려견에게 먹일 닭을 구해다 삶기도 한다. 이런 익숙하지 않는 인물들의 행동은 인간에게 '끝'이 없을 때(나는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자신들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행하는 모습은 아닐까. (더불어 근거 없이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것도)
마감을 데드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위한 오늘의 통제가 '오늘의 생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나는 오늘 마감한다.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