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소설] 천국보다 낯선

세대라는 키워드로 읽어 본 이야기

by 이요마
천국보다 낯선(2013)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1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이번 리뷰는 독서모임의 발제문 목적으로 썼던 것이라 다른 때보다 양이 많습니다.

(아마 다음 리뷰부터는 이 정도 길이가 나오지 않을 것임미다 ㅠㅠ)




1. 들어가며

소설을 리뷰할 때는 보통 '내용'보다는 '설정'에 집중해서 쓰곤 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들이 김이 새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는 '내용'을 다루되 결말만 건드리지 말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아는 것과, 문장을 하나하나 읽으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기에.


아는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을 내 맘대로 '세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보았다. 이 글이 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잘 쓰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할 이상이 뇌피셜이기에 굳이 인용해서 써먹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공유는 환영이다.)



2. 김, 정, 최 그리고 A의 세대


김이 나오는 첫 파트 ‘무방비 도시’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하긴 벌써 서른셋이니까.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에 대해 조금씩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p.39.)
2월 마지막 날의 밤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윤년이었다.(p.40)




가장 최근 윤년은 2016년이었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이 밀레니엄을 운운하는 모습(대학생활을 말할 때 밀레니엄이 언급된다.)을 보았을 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을 것으로 참작할 수 있고, 작품의 출간 시기(2013)를 고려할 때도 작품 속에서 지칭하는 윤년은 2012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12년에 33살인 김은 1980년생, 학번으로 치면 99학번~02학번(4수까지 고려했을 때)으로 추정할 수 있다. 친구로 나오는 정, 최, A, 염도 동갑 내지 +-2살 내외의 인물로 가정하면, 세대 구분상 그들은 N세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



조금 더 와 닿는 비유를 든다면 응답하라 1997세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서태지, 넥스트를 듣고 중학교 때 HOT, 젝스키스를 들으며 자란 세대, 삐삐로 시작해서 단색 혹은 2화소(4화소) 플립폰을 쓰던 세대, 어린 시절 반공 포스터를 그린 거의 마지막 세대, 어린 시절을 호황기에 보낸 세대, 청소년 기에 IMF가 찾아와 무너진 가정이 많았던 세대, 대학생 때 2002 월드컵 거리응원을 즐겼던 세대, 88만 원 세대의 스타트를 끊은 세대, 첫 대선 투표로 노무현을 뽑은 세대, 집단보다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한 세대 등등 그들을 표현하는 말은 많다.



인물들을 세대 구분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우나, <천국보다 낯선>의 김은 이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로 읽혔다. 김은 증권 분야의 직종에 있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보험으로 이직을 한다. 그는 명료하고, 직관적이며, 현실적이다. 새로운 환경과 변화(이를테면 삐삐-플립폰-폴더폰-스마트폰 같은 기술의 변화나 이직과 같은 환경에서의 적응 등)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며 사회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융통성을 갖는다.



평-범 그자체인 세대의 표상 보험사 직원 '김'


그는 사회에서 ‘보통’ 혹은 ‘평범’의 기준이 될 만한 사람이다.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자신을 표준화시킨다. 그가 시를 가르치는 ‘노교수’에게 습작을 상투적이라는 코멘트를 받은 이후 ‘세상에서 가장 상투적이며 관습적인 시를 써서 그 시가 얼마나 큰 지혜를 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는 표현을 통해 보이는 삶의 태도는 ‘동질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남들만큼만, 튀지도 돋보이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타인과 나의 접점을 찾아 타협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이는 세대적 특성을 보이는 전형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80년대 학번의 선배들의 연대의식, 민주화 투쟁과는 거리가 멀어진 개인주의 세대이자 반공교육부터 시작하여 쌍팔년도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우리’라는 말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체화하며 성장한 김은 낀 세대로 볼 수 있다. ‘나’ 자신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공동체’의 중요성도 아는 그래서 혼란스러운, 더불어 어느 쪽으로든 융통성 있게 타협할 수 있는 그런 세대의 표상인 것이다.



때문에 세대의 특성을 내재화하고 있는 김은 ‘동질성’에서 어긋난 A와 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A는 세상의 규칙들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은 (괜찮은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데미안의 에바 부인(동경이자 애정의 대상, 절대자적인 모습?) 같은 존재이고, 정은 김이 이해할 수 없는 예민함으로 모호함을 다루는 존재이다. 김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나 알아듣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시작은 A에 대한 연정으로 시작했지만) 영화 동아리에서 많은 영화들을 보고, 자신의 취향을 B급 감성으로 규정하며 형성해 가는데 나중에서야 그것도 ‘도도한 교양’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며 Be Minor! 를 외치며 만들어간 취향까지도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그렇게 타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김은 타협은 하나 타인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터널 앞에서 차 사고가 났을 때 그는 ‘아수라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차를 세웠어야 한다는 ‘정’과는 생각의 결이 많이 다르다. 그를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하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는 인물상으로 읽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상상력은 부족하면서 나의 입장에서만 타인을 재단하고 판단하는(이를테면 최는 강사 아니랄까 봐 자꾸 가르치려 든다는 진술) ‘해결’에 초점에 맞춰진 그런 인물.


이에 반해 정은 조직생활(공동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굉장히 예민한 감각과 감수성을 갖고 있다. 정은 해파리처럼 촉수를 늘어뜨리고 다니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자신이 겪는 상황뿐 아니라 주변, 주변이 아니더라도 닿지 않는 세계까지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려는 ‘김’의 목표지향적인 태도와는 상반되는 가치 없는 것, 쓸모없는 것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때문에 그녀는 매사에 단정 짓지 않고 고민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을 주고받아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보자. 가령 실제로 이런 대화가 진행되었다고 생각해보자.(*이 예시는 허구입니다.)



A : 이제 취업에 대해 생각해보고 정신 차려서 생활해야 하지 않을까?
B :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이때 A와 B는 같은 상황도 자신이 살아온 경험, 사용하는 언어(논리나 사용빈도가 높은 단어), 가치관 등에 따라 인풋과 아웃풋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말을 꺼낸 A는

A : 이제 취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B : 됐어. 당신이나 신경 쓰세요. 니가 뭐라고 그런 참견이야.


라고 기억할 수도 있고, B는

A : 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정신 차려서 취업 준비해야 한다.
B : 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기억할 수도 있다.



이는 기억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대화라는 것이 발화자와 수화자의 이해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이러한 예시를 가져온 이유는 소설의 특징 때문이다. 이를테면 최가 김의 차에 합승해서 K시로 셋이 떠나는 장면,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정이 “음악 좀 꺼.”라고 말하는 순간의 진술은 같은 상황이지만 인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사건의 순서도, 그들이 말한 음악의 종류도 다르다.(수지 서, 레이철 야마가타-엘리펀트, 올리비아-L.O.V.E 직접 들어보니 노래의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A가 타고 있는 작은 자동차가 마티즈든 아토즈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보다는 그 상황에서 느낀 감정, 든 생각, 회상(회상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이를테면 A의 성격을 정과 최는 정반대로 진술한다.)등이 중요한 것이다. jtbc 뉴스룸마냥 팩트체크를 하기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인물의 사고방식을 따라 읽는 것이 좋겠다.



자신의 언어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소설가 '정'



다시 ‘정’이라는 인물로 돌아오면 정은 겉으로는 잔잔하나 속에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녀는 김의 표현대로 ‘한 점으로 수렴’하는 듯 다소 파괴적이고 파격적인 작풍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질서를 형성한다. 그 질서는 세대 감각을 내면화한 ‘김’과는 상극으로 나타난다. 김의 사고방식으로 읽는다면 ‘정’은 이상한 작업물을 만드는 저렇게 내버려둬도 될까? 하는 불안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김의 기준에서 속단한 명료한(하지만 폭력적인) 결과일 뿐이다. 정은 스스로 모호함을 선택해 타자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준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는 온전히 ‘자신의 언어’ 뿐이다. 어쭙잖게 ‘공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입장에서, 진솔하게 ‘나’를 표현할 뿐이다. 때문에 그녀는 김보다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또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타인과 나의 다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녀는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선 확고하게 서있을지 모르나 타인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기에 피곤한 인생을 산다. 김은 짐짓 모른척하고 지나갈 상황도 그녀에겐 감각의 촉수가 닿는 곳이다. 타인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늘 힘들다.



한편 정에게 A라는 인물은 마찬가지로 데미안이 보이는 스탠스와 비슷하게 보인다. 정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바라보듯 그를 존경하고, 동경하며 사랑한다.(동성애 코드도 비슷한 맥락에 서있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더불어 그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 하고 곱씹는다. 그가 보는 영화와 책을 읽고 다 읽었어!라고 말해도 A는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정은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자아’를 형성하는데 막 성인이 된 대학에서 만난 A라는 인물이 자아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자신의 글은 사실 A가 이미 쓴 글이라고.



‘정’의 파트가 적기도 하고 길게 쓴다고 한들 모호한 표현 속에서 그녀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녀는 ‘해결하고 정리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너는 너, 나는 나의 스탠스에서 타인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되,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러나 김의 세상에서는 비효율적이고,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김과 정의 중간적인 인물 대학 강사 '최'


셋째로 최다. 최는 김과 정의 중간 즈음 위치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강사이고, 술자리에서 김이 늘어놓은 일장연설(노오오오력을 하자!)에 반감을 갖는 모습으로 보아 ‘진보’ 성향을 보이는 인물로 보인다. 99년도에 어린 병사로 묘사된 대목으로 참작해 대충 97-98학번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역시 세대의 감각을 받아들인 인물로 보인다.



작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여당’의 보좌관 역으로 가게 된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타협’이라는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김이 90년대 학번의 개인주의 분위기로 온전히 넘어간 인물이라면, 최는 80년대 학번의 학생운동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혁명’이라든지 보좌관 이야기가 나오는 페이지에 지나가듯 흘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사용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는 세상이 명료하지만 인간은 모호하다는 진술을 통해 ‘김’처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생활하는 것이 세상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지만(최는 김처럼 사고 현장을 빠져나갈 때 침묵으로 묵인했다.) ‘정’처럼 타인에 대한 감정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스탠스가 애매하다. 세상과의 타협을 줄이기 위해 ‘대학’에 남는 선택을 했겠지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여당 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가는 타협을 한다든지, 사랑은 결핍에서 나오네 마네 말은 하면서도 김과 A의 관계를 멀리서만 지켜볼 뿐 나서지는 않는 수동적인 태도 등은 그를 고학력의 헛똑똑이로 그려낸다.



이 역시 과도기 세대의 인물이 보이는 애매한 스탠스를 보이는 예가 될 수 있겠다. A의 말 ‘너는 어디로 가려하는구나.’는 맥을 정확히 짚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는 시대와 세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정처럼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구축하지는 못했다(한 점으로 응축되는 듯한). 그렇다고 김처럼 빠르게 태세 변환을 하여 시대에 맞춰가는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지만 휩쓸린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뭐 그렇게. 흘러 흘러가다 보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그런.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는 그런.



솔직히 잘 모르겠는, 이미 죽은 'A'



넷째로 A이다. A에 대해서는 내가 읽기 능력이 떨어져서 일까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A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책을 올바르게 읽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A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종종 너를 떠날 거야. 너는 어디로 가려하는구나 같은 가슴에 남는 한 마디들이나 (A가 보낸지 알 수 없는) 죽은 뒤의 모호한 문자메시지로 나오긴 하지만 대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녀의 정보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김, 정, 최의 진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불안전하고, 그래서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심지어 그들의 진술은 어긋나기에)



김의 표현에 따르면 ‘정이 한 점으로 응축한다면 A는 불규칙하게 발산하는 것’ 같고, 최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영화판에 뛰어들 수도, 자립공동체에 들어갈 수도 종교에 귀의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즉, 세상의 문법(혹은 세상의 흐름, 김과 최의 예로 들면 ‘타협 포인트’)과 어긋나면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것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죽은 친구에 대한 회상은 필연적으로 미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A가 죽기 전에 자신이 만든 ‘로드무비’이자 ‘르포’이자 ‘다큐’인 영화 시사회를 했다는 것. 그 영화가 정에겐 무서웠고, 김은 졸았으며, 최는 이상했던 감각을 이끌어 냈다는 점, 대학 졸업 후 행방이 묘연했다는 것 같은 정보들을 수집하면 할수록 A의 행동은 일관적이지 않다. 인물에 대한 평도 제각각이다. 한 마디로 할 수 없는 인물인 게다.



A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와 언행은 ‘매력’이라는 말로 연결할 수 있다. 김, 정, 최는 공통적으로 A의 매력에 끌린 인물들이다. 김이 A와 사귀기 전 ‘그렇게 평범한 애랑 너는 안 어울려.’라는 코멘트가 나올 정도로 A는 겉으로 보았을 땐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평범함을 뚫고 나오는 마이웨이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매력, 매력(魅力)의 매(魅) 자는 도깨비 매 자이다. 다시 말해 도깨비처럼 사람을 홀리는 능력을 매력이라고 한다. A는 비록 아버지의 부채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이라는 현실과 맞닿은 설정을 제외하고는 인간처럼 그려지지 않는다(위에서 비교한 에바 부인이나 그의 아들 데미안도 인간이지만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것 마냥).



우주 어딘가에서 뚝 떨어져서, 그것도 하루 이틀 컨셉놀이로 보기엔 빡센 자신의 독특한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점. 주변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인물(평범 안의 본질을 볼 수 있는)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 죽은 후에도 산 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점 등 탈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탈인간적인 모습은 매력적이어서 치명적이다. 김, 정, 최는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인생은 A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것(Own)이라는 것이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타 소설 속 인물들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에 비해 세 인물은 죽은 A에게 끌려다는 모습만 보인다. A의 신묘한 힘은 세 인물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이 대목이야 말로 별 의도 없이 던진 말에 대해 평론가나 사람들이 과도한 해석을 붙여 의미를 만들어 권력을 형성하는 모습과 닮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세 인물이 A를 그렇게 포장하고, 기억하게 하는 배경이 있는데, 그것이 ‘영화 동아리’의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영알못인 나로서는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징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영화를 읽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의도한 바를 전부 공개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동진 같은 양반들이 CGV에서 한 시간씩 해설해 주면서 의미를 발견하고, 확장시킨다. 이는 비단 평론가 같은 전문가의 영역만은 아니다.



하다 못해 일반인들이 쓴 영화 리뷰만 봐도 열이면 열이 다른 의미를 찾아낸다. 다시 말해 개인이 어떤 텍스트(그것이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를 마주할 때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기에 같은 상황이라도 그 내용이 달라지고, 그 내용이 달라짐에 따라 생성하는 의미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은 각자의 ‘영화부심’을 베이스로 세상을 읽어나간다.(특히 김과 최)



어떤 것에 대해 이해하고 의미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의미를 공유하며 저마다의 생각을 확인하고 취할 것은 취하고 대립각을 세울 것은 세우는 배움의 과정이 독서에서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뜬금없지만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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