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소설] 달고 차가운

지용은 왜 신혜의 어머니를 죽였을까

by 이요마
달고 차가운(2013)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2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내용의 대부분은 뇌피셜입니다. 인용은 자제하시고 공유는 많이 해주세영




1. 들어가며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수업의 강사님(현직 소설가)은 학생들의 습작을 받고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수업을 했었다.



몇 주 간의 이론 강의가 끝나고 합평(강사님이 모든 학생들의 과제물을 받은 후 그중 몇 편을 골라 학생들과 함께 읽는 방식이었다.)을 하는 첫 시간에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여러분. 사람 함부로 죽이지 마세요.



아무리 허구라도 사람은 함부로 죽이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부연설명을 대신했던 그 장면이 떠오른 건 왜일까.





2. 지용은 왜 신혜의 어머니를 죽였을까?



'달고 차가운'의 주인공 강지용은 살인을 저지른다. 피해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 민신혜의 엄마다. 그는 민신혜의 어머니의 집에 창을 뜯고 들어가 이어폰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다.



한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는 대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물론 묻지마 살해나 여혐 살해의 경우처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대개 피해자의 내적 동기, 이를테면 분노나 불안이 작용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정도다.(그녀가 어머니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이유는 직접 읽어보시길!)



고위 공무원 집의 막내아들이자 강북에서 강을 건너 재수학원(한강을 건넌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아 강근처에 위치한 노량진으로 추측된다.)을 다니는 일개 재수생인 지용은 왜 신혜의 엄마를 살해했을까.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두 가지 밑밥(복선이라는 말도 있지만 넌지시 뿌려놓아 관심을 갖게 하는 힌트라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선택한다. 앞으로도 이 말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어머니의 간섭이다. 지용의 어머니는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가도록 무한정 서포트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서포트가 과해서 의대 간 형, 미국 유학 다니는 누나 정도 '급'에 맞는 대학을 갈 것을 강요한다.


shame-799096_960_720.jpg 어머니의 닦달은 지용을 더 작게 만들었다


부잣집 사모님 같이 묘사되는 이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도구적이다. 소설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들이 대학에 가도록 압박하고, 주어진 인생에 순응하도록 닦달하는 것이다. 주변 인물(미국에 있는 누나)의 어머니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고 마치 '악'처럼 묘사된다.



지용이 사람을 죽인 후에 꾸는 악몽에서 피해자가 아닌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는 진술에서 그는 살해 대상에 어머니를 투영해서 일을 벌였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서라는 이유는 살인을 처음 하는 지용이 일을 벌일 동기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수험 스트레스로 자살하거나 살인이 일어난 사례도 있으니 이 이유가 전부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밑밥은 미국에 유학 간 누나의 존재다. 책을 읽은 사람은 이 대목에서 띠용! 할 수도 있다. 신혜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위해 살인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답을 하고 싶다.



사랑 앞에 목숨 걸고 결투하다가 죽어나간 인물은 역사 속에서도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많다. 지용은 불꽃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열정적 사랑 때문에, 그녀를 위한 살인을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지용은 위험에 대한 면역이 있는 인물이기에 함부로 불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위 좀 사는 집의 막내아들이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살며,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그가 겪어온 세상은 호프집주인 딸내미 민신혜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fence-470221_960_720.jpg 스스로 선택하고 싶지만, 부모의 울타리 안에는 있고 싶은 지용



지용은 부모의 보호 아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험에 처할 일이 없었고, 위험이 있다 해도 피해갈 여력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재수'는 첫 실패이자 첫 위험이다.



그에겐 위험에 대처할만한 항체가 없었고 처음 겪는 불확실성(재수)과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재수한다고 다 좋은 대학에 가는 건 아니다.)에 극도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앞의 두 자녀보다 투자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 지용에게 결과를 요구하는데 이 행동이 그의 멘탈이 붕괴되는(어른들 말로는 엇나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인생에 책임을 져본 적도 스스로 선택한 적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갈 용기도 없다. 위험에 노출된 적이 없기에.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고 자괴감을 느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괴롭지만 부모의 빽은 포기할 수 없다는 계산이다.



그렇다. 지용은 계산이 빠르다. 스스로를 함부로 위험상황에 처하게 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선례'인 그의 누나가 있기 때문이다.



지용의 누나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를 바랐고 유학을 선택했다. 이 스탠스는 지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스스로 미래에 대해 선택하고자 한다.
- 그러나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받는다.



누나는 지용에게


네 인생이니까 네가 선택해.



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율배반적인 말이다. 그녀의 선택은 그의 부모가 제시한 선택지 중에 하나이고 여전히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택이지만 '위험이 제거된' 선택이다.



재수를 해서 꼭 '좋은' 대학에 가야 할 명분은 있었다. 부모님의 바람과 다른 형제들이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가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지용이 당장 대학 입학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망하지는 않는다. 막말로 실패하면 누나처럼 유학을 가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왜? 믿고 비빌 수 있는 부모라는 언덕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에 대한 리스크가 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하게 견뎌야 하는 신혜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다.



정리하면 지용은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2.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어머니에 대한 타격을 당사자(어머니)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가할 수 있으며,

3. 이로 인한 위험을 커버해줄 빽인 부모가 있기에 과감하게 살인을 할 수 있던 것이다.

(여기서 2번의 피해자가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 지용에게는 어머니를 투영할만한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인륜적으로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인 게다. 또한 어머니에게 직접 타격을 한다면 3번인 빽이 없어지기에 일이 진행될 수가 없다.)



살인을 커버할 만한 빽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가 항상 위험을 제거해주던 그의 성장 환경을 고려한다면 어떻게든 커버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지용의 살인 동기에는 '책임'이 빠져있다. 책임감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그는 '책임감'을 획득하고 싶었다. 때문에 자신이 '책임'지고 지옥에 사는 신혜를 구출하겠다는 어린 생각으로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참 아이러니다.



3. 나가며



사람을 죽인다는 것. 일상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야기'에서 간접경험을 한다. 살인의 동기가 어떠하든 사실 분석은 큰 의미가 없다. 이는 당사자(혹은 소설의 주인공) 본인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 나의 기준에서 참작하고 판단하여 행동한다.


소설 속의 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그'가 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설 창작 수업의 강사님이 지었던 미소는 어쩌면 표현하기 쉽고, 진솔하게 나올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납두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을 가려는 초보자들을 위한 제안은 아니었을까.(아무래도 입문자들을 위한 강의였으니까...)



그가 얘기했던, 어디서 분명히 들어봤을 것이라고 말하던 소설 창작의 3요소.


다독(많이 읽고), 다상(많이 생각하고), 다작(많이 써보아라) 은


'막연히 그러하겠거니'한 것이 아니라 '있을 법한' 인물과 이야기를 겪어보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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