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멈추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4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가 이해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끝장이 났다. 주야장천 빡세게 돈을 벌고 1% 남짓 이자율의 적금을 부으면서 겨울을 기약하며 살아온 개미들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어 띵가띵가 놀면서(노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이 버는 것의 배가 되는 돈을 버는 베짱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론 성공한 베짱이는 극소수이고 그들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자리를 잡았겠지만 개미에겐 그 꼴이 참으로 고까울 것이다.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부당하고 불쾌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부와 안정을 보장해줄 수 없는 사회의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개미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믿어온 '부지런함 신화'가 무너진 것이 아닐까.
나는 개미과의 인물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거나 개미처럼 미리미리 준비해서 겨울을 대비하자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시키는 것 열심히 하고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돌아온 것은 왠지 모를 억울함과 씁쓸함이었다.
'저 게으름뱅이는 무엇이든 잘한다.'는 게으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본성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책에서는 저마다의 가슴에는 본성적으로 강물처럼 흐르는 강한 힘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흐름을 작은 상자에 가둬버린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00하기 위해서 반드시 00을 해야 해.라고 판단하는 순간 본성을 제한하고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미의 억울함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개미의 안이함 때문이다. 평생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왔는데 어떻게 그에게 '네가 안이하게 살아서 그래!'라고 말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자신의 상황에 큰 불만이 없고 잘 살아간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하고 싶은 것 참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열심히 산 것일까 남들이 보기에 열심히 사는 것처럼 살아온 것일까 하고 말이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 속 어린 개미는 묻는다.
왜 베짱이는 일 안 하고 놀아요?
이에 옆에서 일을 하던 개미가 말한다.
지금 일 안 하다간 겨울에 엿 되는 거란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부터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해!
이 대목에서 개미들은 두 가지 실수를 한다. 먼저, 배짱이의 노래를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화를 인간의 세계에 적용해보면 개미의 일이나 배짱이의 노래는 사회 안에서 저마다의 역할로 볼 수 있다. 각자의 재능과 달란트에 따라 저마다의 직업을 선택하기 마련인데, 개미는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만을 '일'로 정의한 것이다. 이는 남들처럼 회사에 안 다니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가수를 딴따라 취급하던 과거의 모습과 비슷하다.
둘째로, 자신들과 베짱이를 비교했다. 어린 개미의 질문에 답을 한 개미의 말에는 비교가 담겨있다.
우리는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베짱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리 대비를 했기에 겨울에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베짱이는 엿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배짱이의 행동보다 낫다.
정리하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는 이 행동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일을 하기에 쟤'보다는' 잘 살 수 있다. 내가 지금 공부를 하면 다른 애들'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쟤'보다는' 좋은 연봉을 받으니 괜찮은 일이다. 같은 말은 나보다 못난 상대가 있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다.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얻은 우위로 자존감을 형성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베짱이같이 걔보단 내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던 상대가 나보다 잘 나가게 되었을 때 멘붕이 오는 것이다. 자신은 전과 다름없이 꾸준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참아가며 살아왔는데 '자신처럼 아등바등 일하지 않고도' 나보다 잘 나가는 상대를 발견하면 큰 자괴감에 빠진다. 자존심처럼 간직해온 우월감이 무너지고, 자신이 참고 견뎌온 시간이 헛된 시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과의 비교는 한도 끝도 없다. 내가 나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에 맞춰 열심히 살아오듯, 남들도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삶을 살아왔다.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비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등수'나 '합격/불합격'과 같은 경쟁시스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스스로의 성장보다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데 익숙하다. 남들'보다' 나을 때 얻는 우월감으로 행복감을 느꼈다면 남들이 '나 보다' 앞서갈 때는 우월감을 느낄 수 없어 불행해진다. 다시 말해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나의 행복에 조건을 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00을 하면 행복해질 거야. 00보다 더 잘하면 행복해질 거야.' 같은.
그러나 그런 조건과 비교 없이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자신이 그런 조건 없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개미과다. 내 딴엔 열심히 살아왔지만 사실 내 인생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순간, 존재 자체가 별로인 존재라고 생각한 순간, 그런 멘붕의 순간이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고, 나만큼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포기하고 산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런 넋두리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한 친구에게 푸념처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야. 내 인생 정말 불쌍하다. 난 정말 열심히 살은 것 같거든? 남들 놀고 여행 다닐 때 아르바이트하고, 장학금 타려고 죽자고 공부하고. 나는 뭐 자유롭게 해본 것이 없어. 포기를 자주 하다 보니까 포기가 너무 익숙해졌어.
내 딴엔 그저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하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 했던 말이다. 그런데 친구의 답은 나를 발끈하게 했다.
그럼. 포기하지 마. 너 하고 싶은 걸 해. 하면 되잖아.
이에 나는 나의 상황을 말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길게 늘어놨다. 00 때문에, 00해야 하기 때문에, 00라서, 00 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 그렇게 한참을 말하다가 문득 이러다가 내 인생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말을 멈추자 친구가 말했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네가 원하면 해. 후회하지 말고.
내 딴에 열심히는 살았다고 해도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은 삶을 안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날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괜히 억울해서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한 늦된 고민의 시간을 통해 막연히 '나는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 같았다면 '그거 해서 뭐할 건데.', '네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 쓴다고 돈이 나오냐 세상이 바뀌냐.',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 뭐가 중요한 질 몰라.' 같은 말들로 스스로 포기를 했을 것이다.
'저 게으름뱅이는 무엇이든 잘한다'에서는 제안을 한다. 일단 멈추라고.
하던 일을 일단 멈추고 나의 온전한 기분을 느끼라고 말한다. 내가 가둬둔 본성, 이를테면 강물처럼 흐르는 강한 에너지를 흐르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이는 나의 친구가 한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일단 해보라는 것이다. 이유를 재거나 고민하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말이다.(물론, 남에게 피해가 되거나 반인륜적인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 3월 중순부터는 열심히 읽고, 보고, 썼다. 약 4개월 동안 60개의 글을 몰아썼으니 한 달에 열다섯 편, 대충 이틀에 한 편 꼴로 글을 쓴 셈이다. 이렇게 글을 찍어낼 수 있던 원동력은 그저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 못할 이유를 치워두고 일단 멈춰서 하고 싶은 마음에 몸을 싣었다.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마음'같다. 앞으로도 이유 없이, 비교 없이 다만 '좋아서' 글을 쓰고 싶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