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만화] 얼굴 빨개지는 아이

서로 해석하지 않는 친구사이

by 이요마
얼굴 빨개지는 아이(2009)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5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가 이해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1. 들어가며



마르슬랭 까이유는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다. 그의 얼굴은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지고, 언제 얼굴이 붉게 변하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주변 사람들은 까이유의 빨간 얼굴을 이상하게 여겼다. 친구들은 왜 얼굴이 빨개지느냐고 그에게 묻곤 했다. 까이유는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계단을 오르던 까이유는 위에서 들려오는 재채기 소리를 들었다. 2층, 3층, 4층 올라가서 확인하니 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르네 라토였다. 르네 라토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도 재채기를 했다. 걷다가도 바이올린 연주회를 할 때도 반복해서 재채기를 했다. 까이유는 르네 라토와 친구가 되었다.



2. 해석하지 않는 사이


까이유와 라토는 각각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원인도 발생 주기도 알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은 둘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만든다. 아니, 차라리 '다른'이면 좋으련만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병에 걸린', '이상한', '정상이 아닌'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요 몇 년 사이에 '소통'과 더불어 각광받는 단어로,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이라는 뜻을 갖는다. 공감은 '같음'에서 출발한다. 나와 타인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것에서 접점을 발견하고 동질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사회 속의 많은 사람들과 '공감'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공감하는 과정에서 하나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해석'이다. 한 개인은 다른 개인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때문에 대화를 통해, 관찰을 통해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비슷한 것을 찾으며 '공감'하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해 확인하고 '조심'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은 전부 '나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내가 공감을 하고 때론 나와 의견이 갈리기에 조심을 하는 상대의 모습은 실은 '나 자신의' 틀에 맞춰 해석된 상대의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혹은 '그녀'가 실제로는 나의 머릿속에 있는 모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해석과 실제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업데이트의 과정을 갖는다면 상대를 더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이는 대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작업이다.


network-1987225_960_720.png 나는 '나의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문제는 처음 보거나 어중간하게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나'를 보통의 기준으로 삼고 타인을 해석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까이유는 별안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라토는 아무 때나 재채기를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을 수 없는 특수한 경험이다. 따라서 쉽게 '공감'을 형성하거나 '동질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특징이다. 이때 '해석'이 개입하면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된다.



까이유와 라토는 나와 달라.

까이유와 라토는 나와 동질성을 같은 사람들과도 달라.

까이유와 라토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달라.

까이유와 라토는 보통사람들과 달라(이 대목에서 나=보통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까이유와 라토는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야.



약간의 확대해석과 과장이 개입되어 다섯 문장 만에 까이유와 라토는 나와 다르단 이유만으로 보통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보통을 정상으로 바꾼다면 둘은 '비정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의 엇나감이 한 개인의 내부에만 머문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수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확장되곤 하는데, 하나의 돌연변이는 나머지 구성원의 결속을 강화시킨다.



비정상인 사례, 이를테면 까이유와 라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을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까이유와 라토와 동질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상'에 편입시킬 수 있다. 이 비정상적인 소수보다 일반적인 다수의 성질에 가깝다는 것이 자신의 '평범성, 일반성, 정상성'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병'이 걸린 것 같다거나 '왜 얼굴이 빨개지니?'라고 묻는 일련의 행위는 순수한 질문처럼 보이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까이유와 라토에 비해 정상의 범주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부연 설명이 길었다.



그렇지만 까이유와 라토는 서로가 서로를 해석하지 않는다. 비슷한 부분을 찾아서 공감할 거리를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둘은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친구가 된다. 감기가 걸린 까이유가 재채기를 하며 라토와 같아졌다고 좋아하고, 햇빛에 얼굴이 그을러 빨개진 라토가 까이유와 같아졌다고 좋아하는 장면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이 멋진 이유는 '나'의 기준에서 상대와 나의 접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다르다고 하여 멀리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이 (감기든 햇빛이든) 먼저 바뀌어서 상대와 동질감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까이유와 라토의 관계 맺음은 능동적인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상대를 기준으로 내가 상대가 되어보는 관계의 방식을 이해해야 비로소 이 책의 명장면이라고 하는 다음 대사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결코 지루해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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