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소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당신은 왜 소설을 읽습니까?

by 이요마
S242535737_f.jpg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2016)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6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가 이해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1. 들어가며


몇 년 전 소설가 김영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대충 '소설이라는 이상한 세계' 비슷한 이름의 강연이었다. 그 시기가 힐링캠프나 알쓸신잡에 얼굴을 비치기 전이어서 그런지 서울의 어느 구청에서 열린 강연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백팩을 메고 터벅터벅 강당으로 들어온 그가 청중에게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내뱉은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소설을 읽을까요?



나는 처음엔 너무 원론적인 질문이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왜 소설을 읽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머릿속에 생각난 답은 '그냥.'이나 '재미있자고.' 정도였다. 큰 의미를 두고 책을 읽지 않았고, 의미가 있다고 한들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낄만한 독서량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저 과제로 읽어야 하는 텍스트 혹은 공부하기 싫을 때 이따금 펴서 시간을 보내는 글 정도였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들며 이야기했는데 주요한 골자는 '소설 속 인물은 실패하거나 죽는다.'라는 이야기였다. 신이 아닌 '인간'들은 불완전하기에 실수하고, 좌절하고, 미끄러진다. 이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이끌어내는 인물도 있지만 자신과 주변을 파멸시키고 자살하는 인물도 있다. 김영하는 다시 물었다.


왜 이런 실패담을 우리는 읽을까요?



2. 킬러 안데르스와 (그를 이용해 먹는 나쁜) 그의 친구 둘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은 살인을 해서 오랜 시간 감옥에 있다가 석방된 전과자 '요한 안데르스'와 그를 이용해 먹는 나쁜 친구 둘의 이야기이다. 감옥에서 나온 안데르스는 한 호텔에 묵게 된다. 호텔의 리셥셔니스트(쉽게 말하면 카운터를 보는 사람)인 페르 페르손은 '킬러'라고 불리는 그 사내의 포스에 기가 죽어 7호실을 넘겨주게 된다.



하루는 페르 페르손이 '킬러 안데르스'에게서 피해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한 여자 목사가 그에게 다가온다. 목사는 다짜고짜 페르손에게 설교를 하고 돈을 요구한다. 페르손은 교회에서 추방당한 목사 요한나 셸란데르의 사정을 듣게 되고 먹던 샌드위치를 준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목사는 리셥셔니스트를 따라 호텔로 간다.



호텔에서 요한나 셸란데르와 페르 페르손이 숙박료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인상이 더러운 한 사내가 찾아온다. 그리고 돈 봉투를 건네며 '킬러 안데르스'에게 백작이 다녀갔다고 전하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가 사라진 후 '킬러 안데르스'는 호텔의 카운터로 나타나고 반밖에 없는 돈 봉투에 분개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요한나는 자신이 페르손과 백작을 찾아가 받지 못한 절반의 돈을 받아오겠노라고 말한다. 대신 20%의 수수료를 떼는 조건으로 말이다. 킬러 안데르스는 승낙했고 둘은 백작을 찾아간다.



백작과의 담판에서 승리한 그들은 돈을 받아오고 나서 킬러 안데르손이 돈을 받고 하는 일, 쉽게 말하면 의뢰인의 요구대로 표적이 된 사람의 팔이나 다리를 분지르는 일의 에이전트가 되기를 자청한다. 그렇게 킬러 안데르스와 목사 그리고 리셉셔니스트는 팀이 되어 사람 패는 사업을 시작하는데....



여기까지가 책의 인트로이며 그들은 '사람 패는 사업'을 시작으로 세 번의 사업을 벌인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그리고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다. 그 와중에 '백작'을 비롯한 적들에게 생명을 위협받기도 하고, 전혀 생각도 못한 인물(변수)로 계획이 어그러지기도 한다.


skydiving-658405_960_720.jpg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다. 그렇지만 낙하산이 있다면 어딘지는 모르지만 땅에 발을 디딜 수는 있다.


그러나 책의 이야기는 경쾌하다. 즐겁고 때론 우습기까지 하다. 그들의 사업이 기본적으로 '사기'를 기반으로 하는 일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매력이 넘치지만 순수해서 속아 넘어가는 킬러 안데르스와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요한나와 페르의 머리 굴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가 재미있고 매혹적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먼저, 그들의 실패는 아프지 않다. 사업의 실패는 개인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안데르스도 요한나와 페르도 '실패'에 개의치 않는다. 사업의 끝이 '야반도주'인 면도 고려해야 하지만 좋게 포장을 하면 그들은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잘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무너지는 사업을 살리겠다고 무리하게 현 규모를 유지하거나 자본을 추가적으로 투입하지 않는다. 그 대신 빠른 상황판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순간에 발을 뺀다.(물론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서 적을 만들긴 하지만...) 추락하는 와중에도 최소한 낙하산을 챙겨 다음 살 길은 모색하는 것이다.



숙련된 스카이다이버나 군인들은 낙하산을 펼쳐 원하는 곳에 착륙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낙하산을 사용하게 되는 사람들은 일단 떨어진다. 어디로 갈지는 알 수없지만 땅에는 발을 딛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주인공 셋은 실패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원래 있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향하게 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통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인다. 이는 매혹적인 스타 '킬러 안데르스'라는 인물, 그의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요한나, SNS 채널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페르, 셋의 확실한 역할 분담을 통해 전략적으로 이뤄진다. 새로운 장소에서 기존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변수를 제거하고 성공 요인을 강화시킨다. 그들에게 실패는 '잃은 것을 다시 갚아나가야 하는 극복의 과정'도 아니고 '큰 상처를 남긴 아픔'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잠시 지나가는 사건과 같다.



물론 주인공들의 피해 최소화 능력과 회복탄력성(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이 큰 탓도 있겠지만, 이들에게 실패는 경험이고, 맥락일 뿐이다. 나는 삶이 과거의 경험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연결되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내가 할 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과정 중 하나인 게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Dots와도 같은 말이다.


steve-jobs-2160725_960_720.png 잡스는 말했다. Connecting Dots!


물론, 소설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사람 패기 사업' 말하자면 심부름센터 같은 곳을 운영하는 목사가 어딨으며, 그를 이용해 에이전트를 만들어 활동하는 일은 허구이기에 웃으며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현실에선 그보다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명분들 사이에서 일이 일사천리로 흐르진 않을 게다. 더불어 실패에 대한 책임, 메워나가야 하는 리스크는 쉽게 Connecting Dots니 맥락이니 하는 말을 못 꺼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실패를 하나의 사건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데는 '근거'가 있다.



바로 두 번째, 실력이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사업가는 저마다의 능력이 있다. 힘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이미지 메이킹과 창의적인 사업구상, 체계적인 관리와 SNS 채널 관리 능력 같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100% 활용할 줄 아는 인물들이다. 때문에 그들은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다. 그것도 실패를 바탕으로 한층 성장한 실력으로 말이다.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일만한 바이럴 전략을 강화한다. 한편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초기 사업에 자본을 대거 투입하거나 사업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 모든 계획과 사업 구상은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수련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임기응변 같고 때론 운이 좋아 속된 말로 아다리가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본능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실은 그들의 과거와 연결된다.



킬러 안데르스는 사람을 제압하던 힘을 쓰던 과거의 경험을 통해 쓸모를 유지한다. 육체적으로 함부로 그를 건드릴 수 없고, 그가 마음먹으면 타인을 해할 수 있는 힘 자체가 그를 유의미하게 한다. 더불어 '악'밖에는 없는 과거도 그의 현재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늘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이 한 번 선행을 하면 그가 '변했다.', '갱생했다.', '사람이 되었다.' 같은 코멘트가 붙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런 악독한 그가 선행을 한 번, 두 번 베푼다면 그의 이미지는 어중간하게 착한 사람보다도 강렬하게 타인에게 각인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이미지를 마케팅에 잘 이용한 것이 요한나다. 그녀는 수년간 목사일을 했다. 하나님의 뜻을 신도들에게 전하고, 교회의 이미지를 관리해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오도록 하는 경험이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직업 때문에서라도 외고 있는 성경구절들은 야생마 같은 안데르스를 조종하는 고삐가 된다.



한편 창의적으로 일을 기획하는 일을 하는 요한나를 보완하는 인물이 페르다. 그는 리셉셔니스트라는 관리직을 오랜 시간 경험했다. 재고관리와 투숙객의 체크인/아웃 관리 등 꼼꼼함을 체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더불어 농사에 쓰는 말을 팔다가 트랙터의 등장으로 쫄딱 망해버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일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따라서 이들은 준비된 인물들이고, 실력이 있기에 사업을 성공시키고 망했어도 다시 일어날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과거의 일들이 지금의 퍼포먼스에 지대한 역할을 미치는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3. 나가며 - 다시 소설을 읽는 이유


우리는 소설 속 킬러 안데르스처럼 살인을 하기 힘들다.(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살인범을 데리고 사업을 벌이기도 힘들다. 그리고 사기를 쳐서 엄청난 돈을 벌기는 더더욱 힘들다. 우린 왜 이런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읽는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소설을 읽는가?



이는 아-주 진부하고, 아-주 보편적인 대답으로 귀결된다.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상은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답이다. 소설 속 인물처럼 여러 번 사업에 망한다면 현실의 우리는 아마 파멸할지도 모른다. 인생은 소설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가 시작하고, 책을 덮는 순간 잠시 끊기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진밖에 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은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해석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예상과 해석의 과정은 일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된다.



인간의 인생은 짧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 공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수명만큼, 재산만큼(돈이 없으면 평생 한국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외 다른 이유들로 한정적일 수밖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직접 겪을 수는 없는 것이다. 책은 간접 경험을 통해 미처 겪을 수 없는 시, 공간 이를테면 역사나 미생물의 세계 같은 곳까지 우리의 경험을 확대시킨다.



이렇게 확대된 경험의 풀은 현재의 행동에, 미래에 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경험이란 점들이 모여 '나'라는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는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경험을 쌓고, 이 경험들은 나의 실력으로 알게 모르게 쌓여갈 것이다. 책을, 그것도 지식도 정보도 얻기 힘든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자명하다. 내일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도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7. [만화] 얼굴 빨개지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