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을 내려놓고 불편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12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가 이해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 소설 합평 모임에서 한 친구가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여성 이야기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대강 이런 코멘트를 했던 것 같다.
캐릭터가 온갖 불행을 짊어지고 사는 것 같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피해자의 위치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야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나는 오직 내가 살아온 세상만 볼 줄 알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있을 맥락이나 이야기는 진부한 표현이나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했고, 무관심했다. 그 친구는 어떻게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참 미안하다. 앞으로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대중문화에서 여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해 살피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논조는 일관적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부당한 상황들을 제시하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재고한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책의 내용 중 한 대목에서도 나오는 부분인데,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100% 우리의 의지로 선택한다는 생각이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실제로 누리는 선택의 자유는 한정적이다. 과거에 비해 점차 선택지가 다양화되고 있지만(어느 주제든, 이를테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점심때 먹을 음식을 정하거나, 새로 바꿀 핸드폰 기종을 선택하거나 등등) 선택은 '선택지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완벽하게 원해서 하는 선택만이 있을 수는 없고, 때로는 차선, 때로는 차악을 고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취향은 형성되고, 상식은 만들어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있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 적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가지고 있는 막연한 편견일 수도 있고, 자신이 믿어온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태도가 불온하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 '지극히 당연한 것'들 속에 은근슬쩍 방기 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난겨울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던 것들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던 것처럼, 잘못된 것은 과거에 당연했다 할지어도 바꾸어나가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정당한 지에 대해 다시 판단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습득된' 혹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하기에, 아무것도 아니기에 편리하게 판단을 내리기 전에 '맥락'을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전에 어떠어떠한 이유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 이유는 현재에도 타당한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은 퍽 귀찮다. 그래서 '원래' 그런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보통'이나 '안정'과 같은 단어로 의미화한다. 보통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안정을 의심하거나 변경하려는 일은 '공격'이 된다. 때문에 '사사건건 시비'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 되고, '분란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라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방어는 스스로를 피해자에 위치하게 한다. 이는 가상의 공격 혹은 공격으로 여겨지는 메타포에 대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정당방위'로 합리화시킨다. 문제는 그 폭력이 실제의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폭력이 만연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폭력을 인지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한다. 24시간 자신이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과 폭력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에서 오는 소통의 실패는 둘 사이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린다. 서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들을 생각 없이) 막연하게 상상하면서 극단적인 개인을 집단의 보편적인 것으로 퉁쳐버린다. 서로가 귀를 막는 세계에서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오해는 커져만 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상대에 대해 생각하고 그의 입장을 상상하는 능력, 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듣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단 듣고, 해당 상황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지 확인하는 과정, 인륜적으로 옳은지 함께 대화하는 과정이 절실하다. 나는 사람을 믿는다. 사회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워딩'과 '낙인찍기'(물론 이 방법들도 어떠한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겠지만)에 어그로 끌리지 않고 그 뒤에 있는 '꼭 필요한 이야기'가 공유되어 부당함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친구의 습작 속 주인공이 온갖 불행을 겪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되도록, 계속 피해자로 방치되지 않도록 정당한 세상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이는 나와 당신 그리고 모두가 편리함을 내려놓고 불편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