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소설] 아자젤

일단 '사건'을 겪어봅시다. 어디로 갈 지는 모르지만

by 이요마
56. 아자젤.jpg 아자젤(2015)

사진 출처 : 알라딘


*임계점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되는 데까지 매일 하루 1 리뷰 도전해봅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14일 차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뒤로 가려면 지금 가야해욧!)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가 이해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1. 들어가며



만약 지금 악마가 찾아와 소원 하나 들어준다면 당신은 어떤 소원을 빌겠는가. 영혼을 판다거나 수명을 가져간다거나 하는 클리셰처럼 쓰이는 대가는 잠시 미뤄두고, 당장에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는가. 글쎄. 이 질문에 나는 마땅히 답할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보름달이니 별똥별이니 하늘을 바라볼 때도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보면서도 잠자리에 들 때도 '소원'을 빌지 않는다. 이루고 싶은 꿈이나 이상도 따로 없다. 그래서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경험'이 더 아득하고 나와는 먼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아, 매일 밤 기도를 하고 잠드는 나날도 있었다. 나라에 차출되어 원치 않게 21개월간 강원도에 살던 시절. 나는 잠자리에 누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나 역시 건강할 수 있기를.'


당시엔 나름 절절했던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그 기간 동안 가족들에게는 '별 일'이 없었고, '별 탈'도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 기도는 어느 순간부터 생략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생각해보니 '구체적이지 못해서 길게 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전 포스팅 몰입의 즐거움에서 언급했던 '나의 현상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행동'이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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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구체적이지 못한 소원은 흐지부지되었고 그 뒤에도 나는 '콕 집어서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는 어차피 안 될 것 해서 뭐해. 같은 자포자기일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낼 상상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매일매일 생활패턴이 비슷해서 반복에 질린 것일지도 모른다.



2. 일이 점점 커지네!



'아자젤'은 단편 소설집이다. 몸길이가 2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악마 '아자젤'을 소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어느 중년 아저씨 조지 비터넛과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나(아이작 아시모프)의 이야기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나'는 어느 날 조지 비터넛이라는 인물을 만나 우연히 식사를 하게 된다. 조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라며 자신이 작은 악마 '아자젤'을 소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조지의 말에 의하면 아자젤은 2센티미터의 길이에 붉은 혹은 핑크색의 몸뚱이를 가졌고 이마에 뿔 두 개가 솟아있으며 통통하고 뾰족한 꼬리를 갖고 있다. 아자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악마의 힘을 이용해 사람의 체질을 바꾸거나 능력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그 힘은 반드시 '다른 이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는 데에만' 쓰여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나(아시모프)'는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가늠이 안 가는 이 '구라'를 속는 셈 치고 듣는다.(작가인 '나'는 사실 이 이야기를 잘 들어뒀다가 책으로 쓰려는 속셈도 있다.) 그렇지만 조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하다. 한 예로, 농구부의 한 (후보) 선수를 사랑한 조카를 위해 아자젤에게 부탁해 그 선수가 던지는 모든 공이 골대로 들어가게 바꾸는 에피소드가 있다. 선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만 잡으면 골을 넣었지만 피아 구별 없이 가까운 골대에 골을 넣어서 퇴장을 당하고 만다. 다른 이야기도 비슷한 패턴이다. 조지의 친구가 헤어진 여자 친구가 노래를 부르는 교회로 찾아가 이별 선물로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것을 보고, 조지는 이번에도 아자젤에게 부탁해 친구의 소원을 이뤄준다. 애석하게도 친구의 전 여자 친구는 앞으로 자신이 그와 같이 노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노래를 평생 하지 않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청중은 그 노래 이후 어떠한 음악도 소음처럼 들렸다는 결말로 끝난다.



오지랖이 넓은 아저씨 조지 비터넛은 아자젤의 원칙에 따라 '다른 이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는 데' 악마의 능력을 쓴다. 그러나 그가 전해 들은 타인들의 소원은 아자젤에게 '잘못' 전해진다. 마치 만화 도라에몽에서 대나무 헬리콥터, 빅/스몰 라이트, 어디로든 문 같은 자주 쓰는 도구가 아닌 이상에 매번 '잘 못 사용하여 이상한 결과'로 흘러가듯, 아자젤의 '선행'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게다가 조지의 '주변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해줘야겠다는 마음.' 그 쓰잘데기 없는 해결본능이 뜻하지 않게 여럿을 파괴시킨다.



genie-2590056_960_720.jpg 사실 따지고 보면 지니는 알라딘에게 끊임없이 착취당한다


일이 예상과 다르게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처음엔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황당한 결말로 이끌어가는 이야기. 한 마디로 예측 불가능한 엉뚱한 이야기.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좋다.



그런 이야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사건'이다. 돌이 연못에 떨어지면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파장은 원 모양으로 점점 넓게 주변으로 주변으로 퍼진다. 그렇게 물의 흐름이 달라진다. 돌이 처음 물속에 들어가는 '사건'이 없다면 그러한 파장도, 물의 흐름의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매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상에 큰 파동을 가져온다. 아주 사소한 변화로 인해 사람은 변한다. 한 사람이 변화하면 주변도 자연히 바뀐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 그가 사는 세상도 바뀐다. 아주 작은 '조건의 변화'가 한 개인을 완전히 다른 결말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결말은 새로운 변화로 인해 새 삶을 살수도, 적응하지 못해 파괴되는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아주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인생이 통째로 휩쓸릴 수 있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이 주인공의 행동을 유발한다. 평소에 안 가던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살인사건이나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한다거나,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굳이 그 날따라 들어가 보고 싶어서 집 근처 묘지나 폐가에 갔다가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별안간에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우연히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영웅이 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아버지 때문에 빛을 못 보고 평생 000의 자식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사이드킥같은 인물이 되는 자식들도 생겨난다. 때론 우연히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몇 년 사이에 달라진 후배를 보고 사랑고백을 하기도 하고, 그 고백을 지켜보다가 거품 물고 쓰러지는 남자 친구를 이송해 응급실을 갈 수도 있다.



일상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변수'들이 소설을 움직이는 힘이다.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일상에 '변수'가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을 두고 소설 같은 인생, 영화 같은 인생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사건'은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다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자젤'에서 조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이성에게 인기를 얻고 싶다, 술을 잘 마시고 싶다, 상업적인 글이 아닌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같은 생각들 혹은 하늘을 날고 싶다, 내가 만든 조각상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상상들 같은.(심지어 이 두 가지 예는 이카루스와 피그말리온이라는 유명한 모티브도 있다.)



나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고, 남들도 해봤을 것 같은 생각들이지만 이것들이 '소설'로 들어온 순간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은 우리네 삶과 다를 것 없다. 다만 어떤 '사건'을 겪고 그 파장을 따라 어찌어찌 흘러가다 보니 상상도 못 하였던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쯤 정리하다 보니 문득 내가 '소원'이 없는 이유를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건'이 두렵다. 예측 가능한 일상도 앞으로 좋아질 것 없는 상황이지만, 그 끝이 파멸이 될지 성공이 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 뛰어드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만한 '소원'보다는 가만히 지금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한 것일 게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한다. 사건을 만들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파장 속에 뛰어들고 싶어 졌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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