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그림책] 몬테로소의 분홍 벽

분홍 벽을 향해 계속 걸어가십시다

by 이요마
8959135011_f.jpg 몬테로소의 분홍 벽(2017)

* 며칠 일이 있어서 쉬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매일 책 한 권 리뷰하기 15일 차




1. 들어가며


가끔은 바람이고 싶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계속 나아가고는 있으니까. 지금 가는 길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곳은 아니더라도 피하고 싶을 만큼 나쁜 것도 아니니까. 어쩌면 나는 나의 바람대로 여태껏 바람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목표나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것에 대한 남들의 평가나 앞으로 책임져야 할 미래가 무서웠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만큼 하며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에 몸을 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것이 되었다.



괜스레 이건 아닌데,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말은 하면서도 여전히 흘러가는 대로 길을 걷는다. 도로를 벗어날 용기는 없다. 다만 이따금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흘끗흘끗 보며 발이나 담갔다 빼곤 한다.



2. 하스카프와 몬테로소의 벽



고양이 하스카프는 낮잠을 자기 좋아하는 고양이다. 그는 어느 날 큰 결심을 한다. 꿈에서 본




'정말 아름다운 분홍색 벽'을 찾아 떠나겠다고.




하스카프는 꿈속에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 그곳이 '몬테로소'에 있음을 알게 되고, 바로 떠난다. 다만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보기 위해 익숙한 모든 것과 이별하고 그렇게 떠난다.



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직업의 소명의식일 수도, 지식의 생산일 수도, 과학기술의 개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몫들은 대개 남들이 가니까 가는 길보다는 내가 정한 곳으로 향할 때 발견되곤 한다. 여전히 세상 곳곳에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있는 건 빛을 본 아주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빛이 그들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다. 빛을 잡은 사람들은 그만큼 확신이 있고 실력이 있기에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분홍 벽'은 있을 것이다. 현실적 여건이, 전망이 없어 보이는 평가가, 불안정적일 것이라는 불안이 자신만의 '분홍 벽'을 스스로 포기하게 한다. 때론 코 앞까지 다가온 기회를 극도의 긴장으로 걷어차버리거나 개인적인 실수로 놓쳐버릴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뜬 눈으로 여러 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shutters-924979_960_720.jpg 분홍 벽을 향해 걸어갈수록 색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세상에 자신의 분홍 벽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길을 나서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스카프도 꿈속에서 봤던 어렴풋한 느낌만으로 길을 떠난 것이 아닌가. 분홍 벽은 한 발씩 가까이 걸어갈수록 선명해질 것이다. 그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타인의 평가나 앞으로 책임져야 할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피하고 싶었던 것은 '믿을 수 없는 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그전에 그 확신을 담보할만한 실력이 부족하기에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정신승리나 자기 포장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외려 나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다가가고 싶다. 여태 외면해온 '나'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시 분홍 벽을 향해 걷는 것이다.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젠 가끔은 바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품지 않는다. 흘러가지도 휩쓸리지도 않는, 내 두 발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마음속의 분홍 벽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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