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통찰 모먼트(21.2.1)
* 오.통.모는 '오늘의 통찰 모먼트', 불현듯 생각난 깨달음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는 글 모음입니다.
* 책, 물건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보고 듣고 느낀점을 적습니다.
* 기존의 이요마 다이어리는 오.통.모.로 변경합니다.
바람을 쐴겸 카페에 나갔고 커피를 마시면서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 <소란>을 읽었다. 자신의 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생생하게, 또 진하게, 과거 시간의 희로애락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이구나. 감탄하며 읽어내려갔다. 그러다가 한 대목, '완창'이라는 워딩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은 울고 싶을 때 다섯시간이고 열시간이고 내리울어 해소하는 것을 완창이라고 불렀다. 나는 요즘 많이 울고 싶었지만 울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홀로 사람이 없을만한 시간대에 극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감동의 포인트가 조금이라도 나올랑말랑하면 왈칵 울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울어본 게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바탕 완창을 하고 나면 마음이 청소되고, 다시 배가 고파지고 살아갈 여지를 만들어간다는 부분을 읽다가 문득 사람은 '살아갈 이유'가 사라지만 살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블루의 여파일지, 고립된 지역에서 독립해서 혼자 살다보니 고독해진 것일지, 그도 아니면 1년전부터 이어지는 번아웃의 연장선일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었다. 무얼 하고 싶은 생각도, 잘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내게 주어진 의무들을 채워가며 살고 있었다. 현재에 만족하지만 만족하지 않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매순간 공허한 아이러니들로 매일을 채우고 있었다.
30대가 되었는데 뭐하나 이룬 것도, 해본 것도 없이 늙어만 가는구나. 또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고 기대할 것도 없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 한껏 센치해져서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를 끌어내리다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애석하게도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는 뜻밖의 답이 먼저 나오더라. 월급을 얻어 월세를 내고 나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집에 폐끼치지 않고 가족에게 부담되지 않기 위해서, 때되면 돌아오는 기념일에 조카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지난한 이유들이 줄줄히 나왔고 대부분은 내가 사회 안에서 또 가족 안에서, 회사와 친구들 집단 안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잘 역할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의 삶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삶이 만족스럽지 않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내가 선택해서 만든 결과니까. 다만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지금의 삶에 조금씩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일상의 꽤 많은 부분들이 관계 유지를 위해 쓰였고 나머지 시간들은 이런 사회적 '나'로부터 도피하는 시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주말에는 10시간이고 12시간이고 연달아 잠을 자거나,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하면서 게임에 5시간씩 말그대로 '그냥' 하거나, 목표 금액이 있거나 일확천금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흔들리는 주식 호가창이나 바라보는 시간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게 참 고단했다. 분명 내가 좋아서 만들어온 나의 세계인데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이를테면 내가 포기했던 수많은 과거의 시간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도 나 외에 다른 누군가를 책임 지지 않아도될 마지막 타이밍일 것 같아 조급함으로 다가왔다. 그럴수록 내가 하는 것들은 조악한 일거리가 되었고, 방향을 잃어버렸고, 이렇게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런 고민이 닿은 곳은 뜻밖에도 경제 유튜버 Julius Chun님의 <26분 만에 주식투자의 중수가 되는 법>이라는 영상이었다.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한참 늘어놓다가 왠 주식영상인가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힌트를 얻은 것은 그의 포트폴리오 구성 방법이었다. 천영록 대표는 주식 초보가 실수하는 것 중 하나로 매도를 꼽았다. 예를들어, 내가 가진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A 종목은 -5%, B 종목은 0% C 종목은 +5% 수익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초보자들은 C를 수익실현해서 A 종목을 싼가격에 추가매수하는 속칭 물타기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내 계좌에는 가장 적자 부서들만 다 껴안고 있고, 흑자 부서는 흑자가 나자마자 다 내보내어서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에 많은 돈이 물려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통찰 모먼트가 왔다. 혹시 나는 처음에는 괜찮다 생각해서 사들였던 일상의 조각들 중에 좋은 것들은 그때그때 다 팔아없애고, 나쁜 것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겠다고 물타기하던 의무감과 도리만 남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좋아서 들어간 회사, 좋아서 시작한 프로젝트들, 좋아서 만든 프로젝트들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나의 관심도와 애정도가 추세반전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하면 답은 두 가지일 게다. 하나는 다시 좋아지게 상승 추세로 돌려 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좋은 것들로 나의 인생을 채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게 마음의 볼륨을 키우는 것이다. 당장에 잃어버린 행복과 삶의 방향성을 찾아 즐거운 인생으로 바꾸는 건 하루아침에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시 조금씩 나의 일상을 즐겁게 할만한 일들을 모아가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간 나는 너무 도망가고 싶었지만, 되는 것 하나 없다고 수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다시 나를 악순환의 굴레로 빠뜨리는 자학을 해왔던 것 같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서 우선 방치했던 브런치를 다시 꺼냈다. 뭐라도 쓰는 시간은 즐거움을 줬고 그 비중을 조금씩이라도 늘려가면 내게 어제보다는 나은 마음이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다.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좋은 것들로만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