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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24. 2016

1. 이 피더슨 재우가 들려준 이야기

학곰군의 웰메이드 소설 보따리

* 이번 회차는 가급적 한 숨에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 글쓰기나 에세이에 분류되면 좋겠습니다. 제발 글쓰기글쓰기 에세이에세이

* 피드백 환영합니다. 댓글, 라이킷, 구독 모두 좋습니다.

* 개인적으로 연락하실 분은 ttotto32@naver.com 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A휴게소에서 겪은 일입니다. 



엄지로 배꼽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문지르며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이다.



저는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출발 전에 와사비가 과하게 들어있는 싸구려 연어초밥을 먹은 것이 탈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버스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은 그날따라 왜 이렇게 멀기만 한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 울리는 충격은 왜 이렇게 센지, 왜 걸음은 평소보다 몇 배나 무거운지. 정말 ‘그날따라’ 힘들기만 했습니다. 




A휴게소는 규모가 작은 간이 휴게소였습니다. 때문에 화장실도 작았습니다. 


전부 노크를 해보았지만 다섯 개의 변기 칸은 모두 꽉 차 있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저는 변기 칸의 문 앞에서 눈을 감고 폭풍우가 치듯 부글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말고도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많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청년이 변기 앞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5분쯤 지났을까요. 출입문을 기준으로 첫 번째 있던 변기에서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드디어 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괄약근에 힘을 꽉 준채로 조심스레 첫 번째 변기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순간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화장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제가 첫 번째 변기에 도달하기도 전에 저보다 먼저 변기 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나 왔어.



소년이 말을 하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아저씨 하나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변기를 향해 걸어갔지만 이미 소년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걸쇠를 잠근 후였습니다. 저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소년의 아비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한 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 뒤에 기다리던 다른 청년들도 분명히 분개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았고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한숨을 쉬면서 엉덩이를 부여잡은 무기력한 그들을 보았습니다.


대머리 아저씨는 벌써 저만큼 가서 손을 씻고 턱을 한껏 치켜든 채로 화장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저는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변기 칸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기다리는 청년들은 저까지 네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정 가운데 칸에서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이번이야 말로 기회를 놓치지 않겠노라 문 앞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중하게 똑똑똑 노크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똑똑똑 하고 돌아오는 ‘나 일보고 있습니다.’ 하는 답신뿐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제 옆으로 정장을 빼입은 청년 하나가 문 앞에 섰습니다. 


그는 분명히 저보다 아니 제 다음으로 온 세 명의 청년들보다도 늦게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밀어내고 세 번째 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노크를 했습니다. 



똑똑똑. 



그러자 문이 열리고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반반정도로 섞여있는 아저씨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이 정장청년은 화장실로 들어가 걸쇠를 잠가버렸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반백발의 아저씨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왜 먼저 온 사람이 못 들어가는 겁니까? 


아저씨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자네의 노크소리는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었어.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 걸세 젊은이.



라고 말하고 문밖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제 괄약근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찰흙을 조물조물 주무르다보면 더러는 손에 묻어서 더러는 손바닥의 열기에 쪼그라들어서 덩어리가 점점 작아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배에서 출발한 제 몸의 기운은 엉덩이에 있는 출구. 한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덩어리는 반복되는 운동으로 파괴되어 살짝만 긴장을 푼다면 바지를 적시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변기 칸에 노크를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냉정한 답변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출입문에서 가장 먼 다섯 번째 변기에서는 다른 칸과는 다르게 한 템포 늦게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돌아왔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다섯 번째 변기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문을 두드리며 설득을 했습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두드리는 통에 문은 휘청거렸습니다. 저는 더 몰아붙였습니다. 문을 더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변기 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만해.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단 말이야.


안에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선택한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어울릴만한 목소리였습니다.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젊은이는 나라의 미래가 아니겠습니까? 정말. 정말로 잘해보겠습니다. 잘해서 세상을 바꿔보겠습니다.


저는 짐짓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한편으로 가슴에 북받친 억울함도 담아 진심을 전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화장실에 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을 기다리는 젊은이의 수는 열댓 명 정도로 늘어있었고 그들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와 처음부터 기다리던 세 명의 청년 중에 하나가 소변기에 바지를 벗고 앉아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의 비명은 배가 아파서 오는 생리적인 고통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말의 자존감. 살아있다는 의미, 살아가려는 힘, 삶의 동력. 어떤 표현으로 말하든지 ‘인간성’으로 수렴되는 그것.


그렇습니다.


청년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는 수치심에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나머지 옆에 있는 소변기들도 기다리다 지친 청년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역한 냄새가 화장실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똥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똥이 난자한 세상이었습니다.


소변기에 주저앉은 청년들은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은 사람처럼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차게 변기 칸을 두드렸습니다.


 선생님. 들리십니까. 그들의 울음이. 들리십니까. 자리가 없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정말 인간들의 세상입니까. 대답을 한 번 해보십시오. 예?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내 문이 열렸습니다. 걸쇠를 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안에서 주름이 자욱하고 탄력 없이 축 늘어진 볼을 가진 민머리의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습니다.


미안하네. 나도 살기위해 어쩔 수 없었다네. 부디 미래를 부탁하네.


저는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변기 칸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다섯 번째 칸 안쪽에는 ‘고장’이라고 프린트된 종이가 스카치테이프로 붙어있었습니다. 


문에는 걸쇠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여태껏 간신히 문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급했습니다. 


한 손으로는 문을 잡고 바지를 벗기 시작했습니다. 


변기 뚜껑을 열고 앉으려는데, 이런. 변기 속에는 내용물이 내려가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급하게 물을 내리려 했지만 ‘고장’이라는 말이 정말로 참이긴 한 것 인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돋보기로 햇빛을 한 점에 모으면 불이 붙듯이 이미 한 점에 수렴해버린 뱃속의 기운은 이미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러운 변기 속으로 녀석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저는 오른손으로 문을 잡고 왼손으로는 얼굴을 감쌌습니다. 울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적으로 일을 볼 수 없는 세상이라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저는,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되는 세상인 건가요. 


그러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버스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제 때 가지 못해 버스를 놓친다면 평생 휴게소 똥무더기에 주저앉아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운명인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운명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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