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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07. 2016

내 맘대로 영화 읽기 1. 정글북

디즈니의 이공계 장려 정책의 관점으로

*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을 적습니다.

* 글 내용에 스포일러 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스토리 소개, 장면 소개보다는 지엽적인 것을 봅니다.




정글북(2016)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2489)


1. 전체적인 소감과 영화 이야기 먼저

  'The bare necessities'와 'I wanna be like you' 두 노래만 믿고 극장에 들어갔다. 노래는 흥얼거릴 수 있는데 영상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주인공 모글리가 빨간 빤쓰를 입는지 노란 빤쓰를 입는지 같은...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다. 디즈니야 기승전 해피엔딩(혹은 권선징악) 일 것은 뻔하고, 원작이 나온 지 100년도 넘은 작품(러디어드 키플링, 1894년)이기에 당대의 (오늘날과 다른)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고려했다. 감독이 100년 전 이야기를 어떻게 재해석해서 영상으로 풀어냈을는지는 내가 영화에 대해 잘 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본 디즈니의 만화 '정글북(1967)'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태로 긴 광고를 견딘 후에야 모글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땐 알지 못했다. 이 영화는 반드시 포스터를 보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포스터를 보면 늑대, 곰, 퓨마, 원숭이, 뱀 등의 동물 친구들이 불을 들고 있는 모글리(빨간빤쓰) 를 보고 있다. 핵심은 영화 안에서 'Red Flower(붉은 꽃)'으로 표현되는 저 '불'이다. 이것을 통해 누군가는 인간에게 불을 전한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인간 문명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나는 '도구'라고 칭하겠다.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호랭이 '쉬어칸'이 정글에 들어온 부자(父子)를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아비를 공격하다가 붉은 꽃에 화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쉬어칸은 불꽃 때문에 아비는 죽였지만 아이는 죽이지 못한 채 사라진다. 홀로 남은 이 아이가 모글리다. 모글리는 퓨마 바기라가 발견하고,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 아키라에게 데려가 위탁 양육을 맡긴다. 모글리는 암컷 늑대 락샤에 의해 키워진다.(모글리라는 이름도 늑대들이 지어준 것이다.)

  여기까지가 배경 스토리라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딱 키워드 셋이다. 


호랭이의 복수, 모글리의 성장, 권선징악

  

  따옴표를 찍으니까 되게 멋있다. 그러나 내가 얘기하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고려하시길 바란다. 복수나 성장, 권선징악 같은 것을 말하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는 반복해서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Rule(규칙)'이다. 약육강식의 정글 안에도 규칙이 있고 동물 무리 안에도 규칙이 있으며 동물과 동물 사이에도 규칙이 있다. 규칙이라는 단어는 '법'내지 '법칙'이라고 말은 하나(정글의 법칙 ㅂㄷㅂㄷ) '상도덕'정도로 사용된다. 호랭이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늑대들이 고발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2. 천재 모글리, 그리고 엘사와 히로

  모글리가 바기라에 의해 구조된 시기는 추측하건대(영화에 직접 몇 살인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이 동물 나이 못 알아보듯 퓨마나 늑대 친구들도 모글리의 나이를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추측하건대 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지만 말은 못 하는 시기이기에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박이가 첫 출연을 할 무렵 정도 되었을 것이다.(대충 돌 전후?) 즉, 모글리는 늑대의 세계에서 사회화되어 성장하는 것인데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소가 '늑대처럼 사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모글리는 도구를 쓴다. 4족 보행을 하는 동물 친구들이 연못에서 얼굴을 물에 처박고 마실 때, 바가지를 줄에 묶어 던진 다음에 크레인처럼 물을 퍼다가 마신다. 이 장면에서 모글리는 늑대 대장 아키라에게 혼난다. 이유는 '늑대는 늑대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 외형은 인간의 아이(Man cub)라지만 늑대 사회 안에서 모글리는 늑대니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이 영화 내에서 가장 문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정리를 해보자. 돌잡이 할 나이에 늑대에게 입양되어 성장한 아이가 도구를 만들어서 물을 마신다. 물론 '모글리는 인간이잖아요! 양 손을 써서 도구를 쓸 수도 있지 왜 기를 죽이고 그래욧!'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라. 늑대한테 몇 년 길러졌으면, 하물며 4족 보행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두발로 걷고 도구를 만드는 머리는 천부적인 것이다. 수재나 천재가 아닌 이상 어미의 행동을 따라 하며 성장한다. 모글리가 일반적인 아이였으면 네발로 걸어 다니면서 머리를 물에 처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난 간파했다. 이건 디즈니의 농간이다. 최근 몇 년간 반복해온 디즈니의 이공계 장려 정책이 테크놀로지 적으로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한 번 살펴보자.


누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다리를 설계하고 성을 설계 하고 만든 건축업계의 샛별 엘사.

  사진출처 : 디즈니채널(www.disney.co.kr/channel)


  먼저 겨울왕국(2013)의 엘사다. 이 여인은 20년 평생을 성에만 갇혀 살고, 어린 시절 동생을 해했다는 죄책감으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까지 단절된 사람이다. 자기 방에서 유튜브로 건축설계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저 정도 퀄리티의 북유럽 풍 성을 짓지 못한다. 관객들은 엘사의 고혹적인 외모와 레릿꼬의 성량만을 기억하지만 설계부터 시작해서 하이바(헬멧, 안전모) 하나 쓰지 않고 성을 뚝딱 만든 엘사는 건축업계의 샛별이다. 건축에 센스도 있는데 예쁘고 노래도 잘하면서 요즘 유행한다는 스칸디풍 인테리어까지 한 것을 보면 그녀는 방에서 '내 집의 품격'같은 것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며 요가라도 한 모양이다. 여하튼 그녀는 '건축학'을 베이스로 한 이공계 천재다.


얘는 대놓고 로봇공학 하는 천재다.


    두 번째로는 빅 히어로(2014)의 히로다. 이 친구는 대놓고 로봇공학 천재로 등장한다. 기계문명의 이기를 극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친구다. 뒤에 있는 로봇 베이맥스의 귀여움과 빠른 화면 전환에 묻혀 주연의 이름조차 기억 못 받는 신세이긴 해도 능력으로만 따지면 디즈니 최상급이다.(최정점은 지니...) 이 친구는 설정도 어린데 로봇공학 쪽에서는 그냥 다 안다. 배운 것도 없는데 다 이해하고, 다 꿰뚫고 있고, 다 뚝딱 만든다.(억울하면 강해지라 이건가.) 형을 잃긴 하지만, 형 덕분에 공대에 견학도 가고 공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엘사와 히로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이공계 천재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천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적 배경과 재력, 마지막으로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창의력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람'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3요소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창의력을 갖은 자, 둘째는 '창의력을 갖은 자'를 알아보는 이.  
셋째는 '창의력을 갖은 자'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때 들었던 예가 스티브 잡스 형이 제록스에서 만든 마우스를 보고 그 가치를 알아보고 애플로 가져와 출시를 해 대박을 치는 이야기 일 게다. 이때 첫째는 마우스 개발자, 둘째는 잡스형, 셋째는 애플에서 판을 깔아준 것이 되겠다. 마찬가지다 엘사와 히로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엘사의 첫째는 엘사 본인의 건축 능력, 둘째는 영화에서는 (누가 직접 인정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결말 부에 아렌델(엘사의 나라)의 주민들이 엘사가 만든 분수 앞에서 생활하는 모습(은연중에 여왕님의 설계능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봅시다.), 마지막은 여왕이라는 포지션이라 나라 땅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황(산에 성을 짓을 때 엘사가 임차인이었다면 그런 창의적인 성은 못 지었을 것이다.)

  히로의 첫째는 역시 히로 본인의 로봇공학 능력, 둘째는 죽은 그의 형과 형 친구들(이들은 히로의 실력을 인정한다. 꼬맹이! 이런 소리 없이 히로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잘 따른다.) 셋째는 지하 창고가 딸린 실험실, 대학 실험실 등이다. 샌프란쇼쿄 라는 애매한 지명으로 동서양의 융합을 이끈 듯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일본의 재미교포 3세 정도 되어 보인다. 지하 창고가 딸린 집에 살며 유명 공대 학비를 낼 정도의 집안이면 히로를 충분히 로봇공학 영재로 키울만한 재력이 되는 것이다.

 

3. 그러나 모글리는?

   모글리를 창의력 발현의 삼각형 모형에 집어넣어보자. 첫째, 모글리 본인의 능력이다. 영화 안에서 모글리는 물을 뜨는 장면 외에도 많은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쓴다. 특히 발루(곰)의 부탁으로 벌집을 따는 장면은 대단하다. 정글에 널린 덩쿨을 통해서 도르래를 만들고 무게 추로 발루(곰의 무게는 몇 백 Kg는 나가니..)를 사용해 명동에 놀러 온 재력 있는 관광객들 마냥 그 근방 벌집을 싹쓸이한다.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나뭇잎으로 옷을 입은 것도 신의 한 수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모글리는 영재, 수재, 천재의 싹수가 보이는 아이다. 본인 능력은 충분하다.

  둘째, 이를 알아주는 이. 이게 가장 애석한 부분이다. 하필, 왜. 하필, 그의 능력을 알아본 이가 발루란 말인가. 여태 도구를 쓰는데 욕만 먹다가 처음으로 곰에게 인정을 받으니 모글리는 인정투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왜? 칭찬, 인정을 처음으로 받는데다가 이것을 받으면 자기 자신의 자존감이 상승하기에 모글리는 약아빠진 곰의 농간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벌꿀 채집 셔틀로서 최적의 도구를 개발하고, 최적의 양봉업자로 성장한 것이다. 이를 진작에 알아보고 영재 발굴단에 전화했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셋째 조건도 과학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반복된 일을 할 뿐 그 이상으로 활용할 여지가 사라져 버린다.


컬투 아자씨들의 구원이 필요한 모글리.

사진 출처 : SBS(sbs.co.kr)


 4. 디즈니의 이공계 장려 정책

  예전엔 노래를 잘 부르고 잘 뛰어다니는 예체능 인재만 고수하던 디즈니가 바뀌었다. 겨울왕국 이후로 노래를 잘하는 이공계 인재(그것도 천재)를 주인공으로 선발하고 있다.(빅 히어로의 히로의 경우는 노래도 안 부른다.) 잡스 형이 인문학, 인문학 하면서 피를 토하며 열변해도 결국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인문 고전을 즐겨 읽는' 이공계 인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꽃을 보고 호랭이 쉬어칸을 때려잡을 설계와 도구를 설치하는 모글리.....

  불꽃을 보고 시를 지어 호랭이를 감탄하게 하고 자신의 편으로 교화시켜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문과 출신 모글리를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까. 가장 인간적인 것은 과학적인 인간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생각할 줄 알고 함께 공존할 줄 아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새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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