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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30. 2022

회사를 그만두며 알게 된 것들_나는 나를 지지해

급 강릉 여행 떠나서 나와 나눈 대화들

KTX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규칙적인 속도를 가졌다. 파업이나 사고가 있지 않는 한 매일 같은 스케줄로 움직인다.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감을 준다. 내가 잃어버린 반복을 열차는 가지고 있다. 불쑥 강릉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삶의 루틴이 완전히 망가진 그저께 새벽 세시였다.


그때의 나는 나스닥 선물 차트를 1분 봉으로 보고 있었다. 지수의 3배 추종 파생상품 TQQQ와 SQQQ를 사고팔며 그래프의 파도를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벌었다가 잃었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잃었다. 도파민이 바짝 올라오는 도박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확률게임을 왜 하고 있나 싶어서.


시작은 약을 줄이면서였다. 밤에 잠을 설치다 보니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고, 그 시간에 유튜브가 지겨워 다른 걸 찾다가 미국 주식 차트를 본 게 화근이었다. 중독은 금방 몸에 퍼졌다. 돈을 확실히 버는 것도 아닌데 눈이 빠지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세네시에 잠들었다. FOMC, 실적 발표, 바이든 연설 같은 걸 기다리고 내용을 살펴보며 뭐라도 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 내가 하는 건 홀짝 야바위였다. 상승 또는 하락에 배팅하기. 단 3일 만에 일상이 망가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새벽, 손절을 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벌겋게 충혈된 얼굴의 내가 보였다. 아. 다시 한번 나는 내 인생을 조지고 있구나 싶었다. 갑자기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코레일 앱을 켰다. 가장 위에 ㄱ자로 시작하는 강릉이 보였고, 9시 차를 예약했다. 성수기에 금요일이었기에 예약이라기보다는 취소표를 구한 셈이었다. 알람을 맞추고 침대에 누워 열차 시간을 다시 확인하는데… 아뿔싸 예매한 표는 8시 1분 차였다. 집에서 서울역까지 못해도 1시간 50분이 걸렸기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이 안 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간신히 6시에 일어나 씻고 갈아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읽을 책 두 권, 휴대폰 충전기만 들고 일단 떠났다. 계획이나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출근 시간대라 그런지 자유로는 차가 막혔고, 가까스로 합정에 도착해 택시까지 잡아 서울역으로 갔지만 열차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배드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택시 안에서 나는 수수료를 물고 기차표를 환불했고, 다시 9시 열차 취소표를 구해 시간을 벌었으니까.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이따금 혼자서 버스든 열차든 타고 국내여행을 다녔고 그때마다 발생하는 계획 밖의 일들에 익숙했다. 여행 중에 선택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고,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면 되는 것 그 감각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결국 경험과 반복되는 상황에서 생긴다. 그에 반해 나스닥 차트 상하방 맞추기는 내겐 경험으로 안 되는 영역이었다. 운의 영역이었고, 난 인복은 있을지언정 그쪽의 운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싶었고 나 자신이 또 한없이 한심해졌다.


열차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음악을 틀었고,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가 흘러나왔다. 별생각 없이 듣다가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라는 가사가 나올  순간 울컥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라면 가사처럼 나를 전적으로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랬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말이다.



책을 읽다 보니 강릉에는 금방 도착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 보다 체감상 더 짧았던 것 같다. 나는 일단 화장실을 들렀다가 교동짬뽕을 먹으러 갔다. 줄은 길었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은 가져간 책을 읽었다. 미쓰다 신조의 <흉가>를 가져갔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으스스한 공포소설을 읽기 위해서였다. 애석하게도 무섭긴 한데 시원해지진 않더라.


밥을 먹고는 버스 정류장에 가 강문해변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온 김에 바다는 봐야지 않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되었다.


<나는 문제없어>를 반복 재생해두었고, 계속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에 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 시간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까.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얼 하고 살아야 행복할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이 중 하나에만 답해도 이 여행은 괜찮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초당동에 내려 해변을 향해 걸었다. 멀리부터 길게 줄지어진 방풍림이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걸었다.


내가 쓰고 있는 습작소설에는 방풍림 씬이 나온다. 주인공이 방풍림 나무 아래 중요한 물건을 숨겨놓고 왔다는 죄수의 말을 듣고 몇 날 며칠을 나무들을 헤매며 결국 수첩 하나를 찾아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방풍림이란 건 내게 사회책에서 배운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고, 실제의 모습은 상상과는 달랐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디테일들을 눈에 담았다. 아, 경험만큼 디테일을 잡는데 좋은 건 없겠구나 싶더라.


한참을 걸어 강문해변에 닿았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바다 뷰 카페에서 책이나 읽고 오자는 마음이었어서 꼭 가고 싶었던 카페가 없었기에 무난한 선택을 한 셈이다. 앉아서 책을 읽다가 문득 책 하나 읽자고 참 멀리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책 하나 읽자고 온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아.’라는 말은 내게 놓인 ‘상황’에 대한 파악이다. 그렇지만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다. 내 경우는 꽤 오랜 시간 상황 파악에만 머물러있었기에, 방향을 찾지 못하고 혼자 도시요 도시요 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것이다.

나는 노트를 꺼내 적으면서 내게 물었다.


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 회사도 관뒀고, 그렇다고 편히 쉬면서 회복에 전념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나스닥 선물창 보는 내가 너무 한심해.

그럼 어떻게 하면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생각하니?

: 내가 통제 가능한 것,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니?

: 솔직히 모르겠어. 예전엔 글쓰기나 책 읽기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니?

: 내가 그것들로 아웃풋을 내지 못하다 보니까 잘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웃풋을 내기 위해 무얼 해보았니?

: 글쎄 읽고 쓰고 체계적으로 해보진 않은 거 같아

체계적으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보니?

: 해보진 않았지만 없지는 않을 것 같아

좀 더 명확하게 다시 대답해봐.

: 안 해봐서 그렇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해봐



집에서는 백날 생각해도 정리되지 않던 것들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에도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읽는 일이든 쓰는 일이든 휴식이든 주식이든. 허나 마냥 나이키 광고처럼 Just do it 하면 안 되었다. 지금은 낯선 공간에서 에너지를 얻어 불타오를 수 있지만, 내가 하는 공간은 반복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언제고 홀짝놀이로 밤을 새우러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추가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자신이 체계적으로 읽고 쓰는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무엇이니?

: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돈인 거 같아.

 그것들이 너를 방해하니?

: 아웃풋의 형태는 소설일 터인데, 기약이 없는 것 같아. 공모전에 내기까지는 효율 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결말이 좋다는 확신도 없거든.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돈도 걱정이야.

그래서 주식을아니, 그럼 어떻게 하면  시간을 견딜  있을까?

: 확신이 있으면 좋겠어. 된다. 무조건 되니까. 그냥 하자. 몇 개월까지는 괜찮으니 그 시간은 읽고 쓰는 일만 해.라고 보장하면 좋겠어.

확신은 하다 보면 생기지 않을까? 여태 그러지 못했지만 나만은  자신을 믿어볼게. 되니까 그냥 하자. 돈은 앞으로 6개월까지는 계산 안 하고 살아도 충분해. 그러니 돈걱정도 줄여보자.

:고마워.


고마워라는 답이 마음속에 떠올랐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많은 게 아니고 그냥 전적인 지지 하나뿐이라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쳐서야 그간 주식하면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틀어놓았던 자기계발 유튜버들이 떠올랐다. 이왕 나 자신에게 시간을 쓰기로 한 것 조금 더 할애해보기로 했다. 드로우 앤드류님의 이키가이와 켈리 최 회장님의 핵심 가치, 100번 쓰기를 적용해보기로 했다.


(2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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