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Sep 13. 2023

2. 일단 동해를 가자! 글쓰기 캠프를 하러 간다!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일단 동해를 가자! 글쓰기 캠프를 하러 간다!


꼭 동해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동해를 택한 이유는 그저 겨울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서해는 어쩐지 가깝고, 남해는 너무 멀었기에 선택한 것. 그렇기에 애초에 계획 같은 건 없었다. 회사를 관둔 무직자 신분이었기에 시간은 차고 넘쳤기에 쿨하게 '내일 서울역 출발', 월화수 놀고 목요일 귀가하는 일정으로 표를 끊었다. 맛집을 찾고, 관광스팟을 돌며 알차게 보낼 계획이 아니었기에 동선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숙소도 도심에서 많이 멀지 않으면서 특가로 나온 곳으로 택했고 다행히도 비수기인 2월이어서 무리 없이 저렴한 가격에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급히 짐을 싸면서 문득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백수 생활이 어느덧 8개월차로 접어들고 있었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불안함이 마음을 잠식해오던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라 정신차리고 다시 재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공시학원이든 취업연계가 되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이 공백을 면접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행을 출발하기도 전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람은 살던대로 산다. 그게 좋은 방식이든 나쁜 방식이든 수십 년 동안 유지해온 관성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러면 안 돼. 정신차려. 다시 원래의 너로 돌아와'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결말은? 우울, 공황, 퇴사, 칩거 아니었는가.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했다. 행동 하나, 생각 하나 달라져야만 했다. 그래서 불안한 그 마음을 물리치기로 결심했다. 대신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간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간다!


그때부턴 또 고민타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일평생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어야 할 질문들을 스킵해온 결과로 나는 이 쉬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남들 앞에서 호불호를 숨긴 것은. 아니 나 자신에게까지도 좋고 싫음을 판단하지 않게된 건. 이번에는 회피하지 말자. 도망치지 말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답해보자 다짐했다.


가장 먼저 나온 건 '글쓰기'였다. 내가 살은 건지 죽은 건지도 모르게 회사를 막바지로 다니고 있을 때, 나는 신촌의 한겨레 문화센터로 소설 합평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대학생 시절에는 소설가가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로 살고 싶었더랬다. 왠지 모르게 나는 남들보다 글을 잘 쓰는 것 같고, 평생 쓰더라도 소재가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에 사로잡힌 시절이었다. 출판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글을 쓰는 사람들 근처에서 일하다 보면 나도 언젠간 작가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착각이었다. 출판사 직원의 아웃풋은 출판 전문가지 글쟁이는 아니었다.


일에 지쳐서 집에 돌아오면 퇴근 후에는 글씨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도 친구들과 독서모임-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또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책을 놓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창작의 불꽃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창작은 '세상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나 '나만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시각'이 있을 때 목표를 향해 한 발 씩 나아갈 수 있다. 회사원이 된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를 쉬게 내버려둬.'였던 것 같다. 업무 강도가 엄청난 역할을 해서가 아니었다. 기력이 쇠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의 체력이 HP라면 기력은 MP라고 생각한다. 체력과 비례해서 기력의 양은 늘어날 수는 있어도, 소모되는 상황은 다르다. 아침엔 밤 사이 잠을 자서 풀에너지로 시작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력이 쇠해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체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씻고 누워서 하릴없이 유튜브 밖에 볼 수 없는 상태.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창작이든 독서든 쥐어짜낸다고 뭐가 나올 수 있었을까. 당시의 나는 유튜브를 보면서도 맘속으로는 자기계발이나 운동을 하지 않는 나를 다그쳤다. 혼낸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맘 속의 죄책감이 덜어졌던 것 같다.


글쓰기는 그렇기에 밀리고, 밀리고, 또 밀려서 쓰지 않은 채로 5년이 흘렀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여전히 "언젠간 다시 소설 쓸 거야."라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를 포함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9할은 영원히 소설쓰기를 하지 못한다. 한 번 우선순위가 밀린 일이 다시 1순위로 올라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 창작 수업'을 택한 이유는 이미 한참이나 후순위로 밀린 '한 때의 꿈'을 다시 길어올려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문화센터에서 K선생님의 합평수업 세션을 2번 돌면서,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는 문우분들의 작품들을 읽고 코멘트 하면서 참 오래간만에 '재밌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이라면 5년이고 10년이고 해도 좋겠다 싶었다. 여전히 마음 속에는 '글쟁이는 돈 못 벌어. 예술은 취미로 해라.' 같은 마음 속 심판관이 나를 제지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효용감을 느끼는 순간들로 기억한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좋아하는 일이면 그냥 해!' 


좋아하는 일에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는가. 그냥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계속 재고, 효율을 따지고, 아웃풋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재고 또 재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왜?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건 결국 '관성' 살아오며 내가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만들어낸 메커니즘 때문일 테다.

"그거 한다고 뭐 되냐?", "그거 한다고 돈이 벌어지냐?" "너 그거 한다고 말만 하고 이렇다할 결과물도 못 냈잖아." "네가 뭐라고 그걸 해?" "예술은 재능있는 애들이 하는 거야." 조언을 가장한 평가질과 떳떳하지 못한 나 자신의 불안함이 겹쳐져 상처받기 보다는 안 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 않았지만 하기만 하면 대단할 거라는' 가능성의 세계에 머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편리하고 편안한 가능성의 세계에만 머물다보니 '좋아하는 일'과는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나 자신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합평 수업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더랬다.


"예전엔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안 쓴지 5년이 흘렀고 그 버린 시간을 메우고 싶어서 이곳에 귀인을 찾으러 왔습니다."

K선생님은 내 말을 듣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버린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들도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선 마음이 편해졌다. 달이 차오르듯 내게도 채우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그저 한 마디를 들었을 뿐이었는데, 내다버린 5년이 마음을 채우는 5년이 된 순간이었다. 이 마음은 그 수업 세션 중에 들었던 한 마디와 겹쳐져 용기를 주었다.


"등단을 한다거나 책을 내야 작가가 아니에요. 여기 있는 분들처럼 내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에요."

가능성의 세계에 머물며 엄청 대단한 아이디어를 굴려봐야 작가는 아니다. 한 글자라도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작가다. 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좋아하는 일을 가능성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고, 남의 시선이나 내 처지와 견주어 좋아함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그냥 좋아서 해보겠다고.


짐 가방에 노트북을 챙겼다. 동해 여행이 글쓰기 캠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내가 뭐라고에서 벗어나기 / 내게 상을 주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