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Sep 17. 2023

3. 내어주어서는 안 되는 마음에 대해서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3. 내어 주어서는 안 되는 마음에 대해서


사는 곳에서 서울역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여행을 꽉채워서 즐기려면 7시나 9시, 늦어도 11시 열차는 타야할 터인데 우울을 핑계로 불규칙한 생활을 너무 길게 한 탓인지 아침부터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반나절을 패스하고 오후 3시 출발 열차를 타고 일단 떠났다. 


이름은 글쓰기 캠프라고 잡았지만, 이렇다할 계획은 없었다. 결정된 건 숙소 위치와 돌아오는 시간 뿐. 나머지는 내려가는 동안 짜야했다. 도착해서 숙소로 가면 대충 7~8시쯤이었기에 무얼 보러가기도 애매했고,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기에 영화를 예매했다. 언젠가 봐야지 마음만 먹고 미루던 <슬램덩크 극장판>이었다. 마침 숙소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극장이 있어 괜찮아보였다.


다 본 다음엔 뭐하지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다음엔 이거. 이거 다음엔 이거. 계획하면서 살긴 했지만 그렇게 일상을 채워서 나는 행복했나?'

글쎄. 우울증 자가진단 설문의 답지처럼 '때때로 행복했고, 때때로 별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따져보면 3할 정도 괜찮았고, 3할 정도 별로였고, 4할은 별 생각 없이 관성처럼 그렇게 했기에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따져보면 나는 3할의 확률로 행복하기 위해 '살던대로' 행동하고 있던 것이다.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상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정도면 감내할 수 있는'이라는 의미가 진하게 녹아있다. 달리 말하면 조금 별로여도 참을 만하고, 이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할 만한 선택이란 뜻이다. 감정을 다쳐보고 나서 내가 깨달은 건 이도저도 아닌 이 영역이 넓어질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는 올라가고, 내 마음을 후순위로 미루는 선택을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이 중간지대가 넓어질수록 내 마음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은 '착하다'거나 '배려심이 많다'거나 '이타적'이라는 코멘트를 들으며 하나 둘 스스로 내 것을 양보한다. 그러나 그건 착한 것도, 배려심이 많은 것도, 이타적인 것도 아니란 걸 나는 늦되게 병이 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 하나 설 자리도 남겨놓지 않고 남들에게 아낌 없이 퍼주는 건 멍청한 짓이란 걸 다 잃고나서 깨달았다.

누구도 당신에게 내 걸 내어달라고 협박하지 않았고, 빼앗지 않았다. 갈등을 피하려고, 분쟁을 피하려고, 그냥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하는 순진한 마음으로 '내가 기꺼이 내어준 것'이다. 그리고 내어준 것에 대해 '내 것'이라고, '내 마음'이라고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침범을 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나는 쫄려오는 마음을, 내 것이 아닌 것들로 가득한 마음과 일상과 일정들을 누구 하나에게도 토로하지 못했다. 왜? 그건 착하지 않고,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모습이니까. 내가 쌓아올린 이미지 하나 하나가 다 무너지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까봐. 비단 직장이나 학교 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에게까지 그랬다. 나에게 내 자신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단톡방에서 나가고, 하고 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다 그만두면서 올 스톱을 하고보니 참 공허하더라.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빠져나가자 빈 자리에는 공백이 들어찼다. 뭐지? 뭐하지? 어떡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불안이 오면 다시 잠을 자고, 깨어나서 멍을 때리다가 책을 읽고, 다시 초조해지면 억지로 눈을 감고 잠으로 도피하고를 반복한 것도 삶의 우선순위가 무너졌기 때문일 게다.

'나는 무얼 위해 살지?'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서 20여년간 유예해오던 질문이 다가오자 숨이 턱하고 막혔다. 1인칭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바란다.' 말해본 적이 이토록 없었구나. 왜? 남의 시선이, 평판이 두려워서? 그랬다. 내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살던대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가방에 챙겨온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 2>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떻게든 되겠지. 시내를 걷든, 바다를 걷든, 숙소로 돌아와 영화를 보든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미리부터 고민하고 결정하진 말자. 다만, 내 마음이 동하는 선택만으로 채워가자. 그런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책 속에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남은 이들의 잔혹한 삶이 펼쳐져있었고, 나도 은유적으로 이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멋진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날 저녁은 드라마틱하게 멋진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더빙판 슬램덩크를 보았고, 너무 좋았고, 우리 동네에는 없는 24시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야식으로 사먹었고, 숙소로 돌아와 독후감을 조금 쓰고 <헝거 게임>을 보다가 잠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보잘 것 없어보이더라도 매 선택마다 마음 속 '즐거움 게이지'가 60% 이상 넘어가는 것들만 쌓아가며 저녁에 이르니 내적 만족감은 컸던 첫날이었다. 다음날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내일 일어나서 어떻게든 되겠지에 운명을 맡겨봐야지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일단 동해를 가자! 글쓰기 캠프를 하러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