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Oct 10. 2023

10. 조급해 하지 않기로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10. 조급해 하지 않기로

계약을 파투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동해의 기운을 받아 글쓰기 런을 하던 텐션은 온데간데 없었다. 원고는 편집자분들의 피드백에 맞게 첫 장면만 20번 넘게 쓰다 엎고, 페이지 수로는 100페이지 남짓 쓰고 버리다보니 이젠 과거의 내가 무얼 쓰려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괜히 지나온 시간의 기회비용이 아까워서 만지작거리다가 조금만 고쳐서 다른 공모전에 내야지 인터넷만 기웃거리다가 문득 내가 다시 '살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일주일도 안 남은 공모전에 이 원고의 일부를 떼어서 빠르게 고치면 입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 지나온 내 삶의 데이터에 따르면 안 봐도 시나리오가 그려지더라. '어영부영 원고를 제출한다 - 올스톱하고 발표만을 기다리며 헛꿈을 꾼다 - 떨어지고 좌절한다 - 다시 뭐라도 해야지 시작한다'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생각하며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그 이면에 숨은 내 마음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나는 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일주일도 안 남은 공모에 투고 하려했을까. 자기계발서들이 주입한 'JUST DO IT'에 혹해서 일단 저지르려는 걸까. 아니 그런 거였으면 발등에 불 떨어지기 전부터 진즉에 했을 터다. 딸깍 딸깍 대충 일필휘지로 써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글을 쓸 재능이 있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 재능을 과소평가하면 했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하나 가능성을 지워나가다 보니 하나의 단어와 조우할 수 있었다. 바로 조급함이었다.


막연히 계약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기에, 그것을 만회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과거의 매순간 그랬던 것 같다. 조급하게 '빨리 증명해야해'라고 할 때의 나는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준비가 안 되었으니 탈락하거나 성적이 안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런 와중에 매번 좌절하는 포인트도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에 퀄리티가 안 나왔다고 분석적으로 생각하고, 다음 번에는 시간 여유를 더 확보하자는 결론을 내렸다면 개선이 되었겠지만, 그저 '난 쓰레기야. 그래서 망했어.'라고 생각했기에 발전이 없었다.


조급하게 일을 벌이다가 실패한 게 내가 쓰레기여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그러나 그냥 그 실패한 나를 자책하고 벌하는 시간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아끼지 않았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처벌 받아 마땅한 나'로 나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만큼 나 자신에게 박했던 과거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가끔은 소름이 끼친다.


공모전 하나를 흘려보내고 시간이 충분히 남은 다른 대회를 위한 원고 기획을 하는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최악의 조건을 주어놓고 그거 하나 못한다고 비난할 시간에, 충분한 시간을 주고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는 걸 새삼 깨닫는 지금이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조급했을까. 그렇게 채찍질 하면서 내 상태를 체크하지도 않고 일단 뛰라고 몰아부쳤을까.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상황을 가능한 빠르게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이대로 머무르면 점점 아래로 내려갈 일 밖에 없다는 마음. 나에겐 시간이 없다는 마음. 그리고 내 존재의 쓸모를 증명해야한다는 마음까지. 자기비난에 익숙한 내게는 여유가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그렇게 하라고 협박하지 않았고 모두 내가 택하고, 정한 스스로를 대하는 방법론이었다. 이런 조급함의 늪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조급해 하지 않겠다고' 정하면 된다. 살던 대로 살지 않는 선택지도 결국 내가 정하는 거니까 말이다.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라는 말을 뒤집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에게 허락해도 된다고 되새겨본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다시 백지 앞에 서볼 생각이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9.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되는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