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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Oct 06. 2023

9.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되는구나

좋아하는 일이 마땅히 없어서요

* 소설 공모전 결과 발표는 문예지에 실린다. 심사위원의 이름, 타 작가분의 작품명은 지웠다.


9.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되는구나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시작이나 결과를 좋아한다. 지난한 성장의 과정을 따라가는 콘텐츠보다는 '이런 걸 할 거야! 응원해줘!' 하는 식의 다짐이나 '성공한 사람의 비법 공개' 같은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룬 것이 마땅찮고, 여전히 끝없는 터널 같은 과정에 머물러 있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은 어둠 속에도 볕이 들기 마련이고, 이번 회차에는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 빛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다.


루틴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동해에서 구체화한 미완성 원고를 공모전에 투고했다. 학생시절 대학문학상에 50페이지 남짓을 투고한 이래로 거의 10년만에 뗀 한 걸음이었다. 제출에 의의를 두고 캐주얼하게 참가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지만, 괴발개발 써서 낸 글이라도 '혹시라도 천운이 따라서 아다리로 입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생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2월 말에 원고를 제출한 다음, 나는 다시 평소의 루틴으로 돌아와 열심히 원고를 완성시켰어야만 했다. 하지만 한 번 들이킨 헛물은 끝없이 나를 기대감과 가능성에 매달리게 했다. 하던 거가 잘 안 풀리면 다음 것으로 넘기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어야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뭐라도 해야지 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밖에 나가긴 했지만, 마음이 다른 데 가있어서 무엇하나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공모전에 입상하면 어쩌지? 덜컥 작가가 되면 어쩌지? 같은 되도 않는 상상부터 시작해서, 신문 인터뷰, 유튜브 촬영, 심지어는 모교에 가서 작가와의 만남 강연을 하는 망상까지 희망회로를 돌렸던 것 같다. 삿된 꿈을 꿔본 사람은 안다. 이런 일은 99.9% 확률로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0.1%를 뚫고 이뤄진다고 해도, 탄탄하지 못한 기반으로 말미암아 첫 작품 이후로 무너지고 말게다. 


가능성과 기대감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3월 한 달은 이렇다할 것을 쓰지도 못한채로 잡생각만 하다가 보냈던 것 같다. 4월, 결과 발표가 나기 일주일전부터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당선자에게는 미리 연락을 주어서 프로필이든 소감이든 받아갈텐데 어서 연락을 하라고!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흘 전에는 그래 바빴나보지. 3일이면 소감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생각하며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루 전까지, 아니 당일까지 나는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면서 기다렸지만 끝끝내 당선작 공지가 올라올 때까지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루틴을 그만두고 막연한 희망에 고문당하며 아무 행동하지 않은 결과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감정만 바닥을 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익숙한 일상이 주는 충만함이 무뎌지더라도, 나는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하루 이틀이 쌓이면서 위기는 차곡차곡 쌓였을 게다. 결과 발표날 나는 뻥- 하고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다. 슬프다기보다는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던 것 같다.


하루 정도 속상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있다가, 그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자! 마음먹은 게 밀리의서재 - 밀리로드였다. 새로 오픈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한겨레 문화센터 수강자 대상으로 사전 공개작을 받기에 급히 표지를 제작하고, 샘플 원고를 수정해 <가디언즈 프로젝트>를 메일로 보냈더랬다. 이번엔 연락이 왔다. '안타깝게도 사전공개작에 선정되지 못했다고'


한 번 자빠져봐서 그런가 나선 외려 마음이 편해졌다. 오픈일에 나는 바로 2회분을 업로드했고, 이후 매일 한 편 씩 오전마다 <가디언즈 프로젝트>를 업로드를 했더랬다. 공모전 버전에서 별로였던 부분은 덜어내고, 좋았던 부분은 수정해가며 이거만 끝까지 완결내고 깔끔하게 다시 구직활동을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날 아침도 밀리로드에 원고를 올려두고 메일에 뉴스레터를 확인하러 들어갔고, 메일 하나를 발견했다. 

[이요마 작가님께 - 0000 출판부 0000드림]

공모전을 주관하던 출판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공모전에 투고해준 글은 잘 읽었다. 입선은 못해 아쉽지만 흥미로웠다. 미완성 원고니 같이 만들어가면 좋겠다. 밀리에 올라온 걸 보았고, 혹시 계약이 안되었다면 논의해보자.


아. 가능성이나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지 않고 움직이니까 길이 열리는구나.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과 미팅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뒤늦게 알게된 사실은 <가디언즈 프로젝트>가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본심에는 올라 논의를 거쳤다는 것이었다. 한 달 정도 뒤에야 도서관의 문예지 코너에서 심사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되는구나. 그 간단한 걸 비효율적이고 미련하게 나는 익혀가고 있었다.

물론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잠시 반짝였다가 사라진 빛이라고 초장에 말한 것처럼, 계약은 어그러졌다. 5개월간 이런저런 이유로 이월되던 원고는 수많은 수정의 가능성을 모색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엎어졌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안좋은 일이 연달아 생긴 개인사의 탓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다시 기본을 잊었기에 힘든 시간을 자초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계약이 되겠지 생각하며 나는 다시 살던대로 돌아갔다. 가능성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으로 말이다. 물론 무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의 평가와 처분을 기다리며 시간을 날렸다.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실력이 애매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잘 매조지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그렇지만 정신을 잡고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 공백을 잘 메웠다면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시 돌고 돌아서 방법을 찾아 움직이게 되었다. 계약 불발을 알리고, 이 에세이 연재를 위해 <가디언즈 프로젝트>의 초반부는 열어두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공모전을 준비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업에 계신 편집자 분들의 원고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흡수해서 원안을 쪼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다. 


이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하나 다짐한 게 있다. '좋아하는 게 마땅히 없어서요.' 같은 말은 이젠 하지 말자고. 단번에 끊어내긴 어렵겠지만 줄여라도 가자고. 나는 호불호를 표하지 않으면서, 내 감정이나 원하는 선택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아왔다. 피드백이면 피드백, 평가면 평가, 조언이면 조연, 결정이면 결정 나의 득실을 따져 선택하기 보다는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하더라도 용인 가능한 범위 안이었다면 그냥 오케이를 했더랬다. 그게 사달이었다. 가끔은 오케이가 아닌데도 상대와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마지못해 승낙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상대는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그래도 되나보다.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자분을 만나 인사를 드리며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야금야금 내어주어서는 안 될 부분까지 점차 타인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다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걸 몰라서 우울증을 직격으로 맞아봤기에,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택하고,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외의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내 결정을 말한 순간이었고, 막연한 상상처럼 사이가 틀어지거나 망가지지는 않더라. 외려 꼭 완성하면 좋겠다고 응원을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나도 연이 닿는다면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이제 다시 0부터 시작이다. 나는 내 길을 선택해나갈 것이다.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다가오는 공모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마감을 하고, 공부하고, 연재하면서 미래를 도모해보자.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는 걸 잊지말고 오늘 할 일을 하자. 이번에 요구한 건 (오늘까지) 마감이야. 이요마 렛츠고다.

(계속)  



    이번 회차까지 와서 서술시점이 라이브로 맞춰졌다. 앞으로는 깨달음 모먼트들을 중심으로 생각나는대로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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