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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03. 2023

11. 마우가니, 내 스토리 쌓아가기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11. 마우가니, 내 스토리 쌓아가기


10월에는 공모전에 낼 경장편 소설을 쓰는데 집중했다. 다행히 마감일 전날 완결을 지었고, 우편을 통해 제출했다. 예상보다는 수월했고 나온 결과물도 만족은 하는지라 뿌듯한 마음이다. 이번 대회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를 바라지만 지난회차에서 말한 것처럼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이 두 번 어그러지고는 외려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 졸이며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할 시간에 다음 작품을, 외주일을 열심히 쓰면서 오늘을 살자고 다짐하고 나서는 감정의 기복이 준 것 같다. 물론 결심만으로 평정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계기를 찾는다면 반려식물을 들이고나서부터 일 것이다.


큰 건 내 손톱만하고, 작은 건 여덟 살 조카의 손톱만한 크기의 조그만 마우가니를 택한 건 순전히 귀여움 때문이었다. 사이즈도 외형도 젤리 같은 탱탱한 매력(?)에 홀렸는지 정신을 차리니 집 앞에 화분 3개, 총 4두의 녀석들이 도착해있었다. 물을 자주 주면 외려 뿌리가 썩는 다육이인지라 내가 일상에서 케어하는 건 별로 없다. 그저 오늘은 어떤지 지켜보고, 바람이 통하게 창을 열어주고, 집을 청소하는 게 전부다. 


그런 방치 속에서도 마우가니들은 제 갈길을 가더라. 엉덩이 처럼 갈라진 홈 사이로 어느날부터 뾰족 새살이 돋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꽃대가 올라왔고 며칠 후에는 저 혼자 꽃을 피우더라. 가로세로가 1cm도 안 되는 작은 녀석이 꽃까지 피우는 것이 갸륵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이리저리 관찰하다가 문득 이 모습이 '원고를 쓰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롯을 완성하고, 캐릭터 빌드업을 완성하더라도 하루만에 소설을 일필휘지로 쓸 수는 없다. 차곡차곡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쓰다보면 어느새 목표한 끝에 도달해 있는 게 '쓰는 과정'이더라. 오늘 영감이 왔다고 신들린 것처럼 쓰더라도 그 양에는 한계가 있다. 내 경우는 시간으로는 3-6시간, 분량으로는 200자 원고지 30-60매 내외. A4용지 10pt기준으로 5~8장을 꽉채우는 양 정도다. 그 몰입의 순간을 사용하면 반드시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읽거나, 에세이를 쓰거나, 책리뷰를 쓰는 결이 비슷하지만 다른 작업은 할 수 있어도 그 날은 다시 쓰던 소설로 복귀하기란 어렵다.


왜 그것밖에 효율이 안 나냐고 다그치며 나를 더 몰아붙여도 작업량의 총량은 한계치에서 크게 늘지 않았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정도구나' 하고 측정하고, 이에 맞춰 스케쥴을 잡아갔다면 마음이라도 편했겠지만, 마음이 조급했던 나는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 돼.' 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나를 내몰았다. 그 결과는 예상하다시피 '자신감 하락-자존감에 상처-무기력-아무것도 하지 않음-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비난하기'로 이어지는 악순환 사이클이었다.


마우가니는 하루하루 자신의 할 수 있는만큼 자신을 변화시켰다. 성장은 마디게 진행되는 통에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보였지만, 준비한 시간이 다 채워지니 어느새 제 몸통만한 꽃을 피워내더라. 그 점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세간의 평가나 남들의 기준에 맞춰 빨리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가 갈 길을 알고 나 자신을 믿는다면 꽃을 피우는 정해진 결말로 나아갈 수 있다고 녀석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에세이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막 살을 뚫고 나온 새싹일지, 봉오리를 틔우기 직전의 꽃대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정해진 엔딩 '글로 먹고 사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미래에 원하는 것을 이루고, 이 기록을 되돌아볼 날을 생각하며 나는 나 자신의 스토리를 기록해 간다. 원래 천재여서 하루아침에 뚝딱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 매일 스토리를 쌓아서 현재에 도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마감을 하고 며칠은 무얼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정신을 잡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나를 키워가야겠다. 오늘도, 내일도, 내일 모레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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