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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07. 2023

12. 다시 내 궤도로 돌아오기 위한 리셋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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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시 내 궤도로 돌아오기 위한 리셋

어제는 자취방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잠을 잤다. 매번 이런 식이다. 본가에 다녀오면 하루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무얼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아마 다음에 다녀와서도 이럴 것 같다. 수백킬로 떨어진 고향에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 있는 시간이 외려 고역인 관계가 안 좋은 가족도 아닌데 한 번 떨어진 텐션을 올리는 데는 꼬박 하루가 필요하다.


왜 그런걸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올라올까 생각해다가 문득 일상 속의 우선순위에서 내 자신이 후순위로 밀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좋고 싫음을 표하지 않으면 대개는 남들이 선택하거나 제안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정도는 괜찮겠지. 이정도는 양보해도 되겠지. 하면서 한 발 두 발 내주다보면 나 자신은 저 멀리 멀어져있다. '어? 이건 아닌데?' 하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본가에 가면 나보다 우선인 것들이 생기고, 하나 둘 마음을 내어주다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견디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징후는 잠을 못 잔다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무엇 하나 손에 안 잡혀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진다거나, 자극적인 만화(이를테면 잔인한 묘사가 많은)를 찾게 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늦되게 어제서야 깨달은 건 내가 본가에 오래 머무를수록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잠은 일종의 도피다. 무력하고, 자기통제권 없이 밀려난 나를 되찾기 위한 도망이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낭비하고 나서야 다시 궤도로 돌아올 작은 의지나마 찾을 수 있었다. 이기적일수도 있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할 역할, 책임을 다하는 것과 내 일상 템포를 깨어가며 다 내어주는 건 다른 일인 것 같다. 갈등과 분란이 회피해온 많은 것들이 있었다. 이제 작은 부분부터라도 내 의사를 표현할 생각이다. 유세를 떤다. 생색낸다. 꼴값떤다. 같은 타인들의 (예상되는) 반응과 평가보다는 나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를 끌어갈 것이다.

궤도 이탈 - 강제 회복의 시간은 이제 그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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