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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01. 2023

[만화]요즘 애니메이션이 내향인을 그리는 방법

<겨울왕국> to <봇치 더 락>

Aniplex 유튜브_<외톨이 the Rock> PV 영상 캡쳐


* 이 글에 언급되는 애니메이션 내용의 스포가 있습니다.


웃을 수 없는 유머로부터_인턴기자 주기자


2년 전,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팀은 부장님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느때처럼 캐주얼한 스몰토크를 하는 분위기 속 그날의 화제는 쿠팡플레이 SNL의 '인턴기자 주기자'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신입사원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은 현재 누적 조회수 800만을 기록할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유튜브 쿠팡플레이 캡쳐


부장님은 "그거 재밌지 않았어요?" 하며 조수석에 앉은 내게 운을 띄웠고 뒷좌석에 앉은 동료들도 저도 그거 봤어요. 하면서 재밌다. 잘하더라. 공감된다. 같은 말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잠자코있었다. 내가 신경쓰였는지 부장님은 "요마씨도 봤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고 말았다.



"저는 좀 기분이 나빴어요. 내향적인 사람들을 조롱하는 거 같아서요."



순간 아차 싶었다.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평소에 의견 표명을 잘 하지도 않던 사람이 새삼 그 개그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했을까. 다행히 여차여차 다른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니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나서도, 사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캐릭터를 연기한 주현영 배우나 스몰토크를 한 부장님의 잘못은 아니었다. 배우는 연기를 잘했을 뿐이고, 회사 동료들은 그저 감상을 말한 것 뿐이니까. 다만 내가 발작적으로 반응한 까닭은 그 개그 때문은 아니었을 테다. 내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불쾌했던 경험들이 주기자 캐릭터와 오버랩 되면서 터져나온 것일 게다.


초·중·고, 대학과 군대, 짧은 회사 생활까지 거치며 돌이켜본 나의 '내향성'은 대개 부정과 시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내성적인 성격은 컴플렉스였고, 극복해야하는 과제였다. 사회성을 키운다는 건 내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기에, 책을 읽고 공부하고 또 노력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왜 나는 성격이 이럴까 하며 자아비판도 많이 했더랬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1921년 《심리 유형》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성의 중심이 되는 구성요소로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과 느낌이라는 내면세계에 끌리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세계에 끌린다고 칼 융은 말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듯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에 집중하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사건 자체에 빠져든다.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지낼 때 배터리를 충전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은 어울리면서 충전한다.
《콰이어트》, 수전 케인 中


이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그저 에너지의 방향이 자신 안쪽으로 향하는, 수렴하는 인간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고치려했던, 내향성은 사실 '수줍음', '진지함', '부끄러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향적인 이들이 가질만한 특성이기도 하지만, 이것들만이 내향성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콘텐츠가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실존하는 인물이든, 허구의 가상인물이든지 그런 '캐릭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모방할 수 있고, 긍정/부정적인 평가를 내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MBTI다. 왠 생뚱하게 MBTI가 튀어나오나 싶을지 모르겠지만, MBTI열풍은 내향적인 사람이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발화할 수 있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티스토리 블로그 - 부지런한 인프피


스스로를 I(내향성)라고 정의하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내가 체감하는 세상은 조금은 달라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 집돌이, 집순이는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나와서 놀면 좋은데 왜 집에서만 있느냐' 하는 말을 하는 대신에 '너는 I라서 기가 빨리겠구나.' 하고 이해를 해주는 경험(?)을 몇번 받아보니 '내가 이상한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다시 하게 된다.


그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겐 큰 의미가 되는 사건이었다. 살면서 만나온 수많은 순간들. 이를테면 원치도 않는 추천제 반장 선거, 대규모 인원이 복작거리는 신입생 환영회, 술자리에 가지 않으면 쌓을 수 없는 친목, 목소리가 크고 활달하지 않으면 폐급 취급을 하는 군대, 면접장에서의 자기PR, 회사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외향성 자아'가 디폴트인 세상에서 내향인의 자연스러움은 '갑분싸', '히키코모리', '분위기 못 맞춘다', '쫄보', '소심이' 같은 부적합의 이름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내향적이라고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나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환경을, 이야기를, 방법을 만나기 어려웠기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라왔다. 나는 내향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겐 그들에게 맞는 내향인 서사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야기는 내향인들이 자신의 서사를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이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도 그런 연유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내가 보아온 애니메이션 속 내향적인 캐릭터들은...


나무위키 맹구 / 쿠루루 프로필


어린 시절 나는 만화를 많이 보며 자랐다.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편했던 어린이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투니버스나 애니원에서 방영하던 2000년대 초반의 만화들은 '소년만화'가 많았다. 목표를 향해 성장하며 나아가는 모험심 있고 용기 있는 캐릭터들, 고난과 위기를 근성과 열정으로 극복해내는 강인한 친구들이 대개 주인공이었다. 내향적인 성격을 내세우는 주인공은 거의 없었기에, 나는 남 얘기 같은 주인공들보다는 나와 닮은 조연들에게 나를 투영하곤 했다. 어쩌면 대장보다는 보조, 조연, 서포터, 힐러 같은 2인자 정체성을 형성한 건 이 무렵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내향적인 캐릭터들에게는 저마다 '포지션'이 하나씩 있었다.

*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있을 터다. 기억에 의존해 기록했다.



-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오타쿠나 해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쿠루루, <디지몬 어드벤처> 장한솔

- 소심하지만 다중인격으로 각성하는 음침이

<짱구는 못말려> 훈이, <도라에몽> 진구

- 행동은 느리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4차원

<짱구는 못말려> 맹구, <아즈망가 대왕> 부산댁(오사카)

- 존재감 제로 자체가 캐릭터

<개구리 중사 케로로> 도로로

- 순종적이고 성실한 아이

<신세기 에반게리온> 레이

- 울보, 찌질이

<꾸러기 수비대> 찡찡이

- 포텐이 높지만 자기확신이 적은 인물

<마법진 구루구루> 쿠쿠리

- 유리멘탈, 히키코모리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지


물론, 이렇게 부정적이거나 수동적인 포지션의 인물만 있던 건 아니다.


유튜브 오분순삭 캡쳐


무한도전 무한상사 에피소드에서 하하 씨가 장항준 감독에게 요청했던 캐릭터들을 비롯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도 있었다.

- 내성적인데 말 없고, 이성한테 인기 많은 캐릭터
<슬램덩크> 서태웅, <이누야샤> 셋쇼마루, <나루토> 사스케, <아즈망가 대왕> 이태희

- 말수는 적지만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캐릭터
<신세기 에반게리온> 레이, <진격의 거인> 애니, <스파이 패밀리> 요르

- 따스하고 유순하고 나이스한 캐릭터
<카드캡처 체리> 오청명, <강철의 연금술사> 알폰스

내향적인 캐릭터들은 조연의 자리에서 평면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개인사부터 복잡다단하게 스토리를 빌드업하기보다는 역할을 위한 역할, 혹은 하하 씨가 짚어준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던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2020년대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OTT를 통해 내향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애니메이션을 만났고, 반가운 마음으로 두 작품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2021)> <외톨이 The Rock(2022)>을 정주행했다. 그리고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몇 안되는 내향인 주인공 서사'와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내용 스포가 있습니다.


<미소의 세상>의 절망편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유튜브 KICKBOARDER _ <미소의 세상> 오프닝 캡쳐

<미소의 세상(2001)>은 착한 어린이를 찾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임무를 완수해야 천사가 될 수 있는 예비 천사가 말수가 적은 어린이 미소의 집에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는다.


주인공 노미소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능동적인 아이다. 실어증인가 의심할 정도로 말과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을 뿐,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하다. 당연한 걸 애써 말하지 않아도 미소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려깊음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이들은 그를 무례하고 이상한 아이라고 오해하지만, 미소를 아는 친구들과 천사, 부모님은 본심을 알아본다.


내향적인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친구를 사귀고 유치원에 가는 첫 사회활동에서도 상대의 마음에서 말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나의 (주로 못난)모습을 보며 타인지향적인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의사를 표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도 실은 나의 마음에 비추어 상대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내향인이 이런 전형성을 따라가진 않는다.


노미소는 내게 자존감 높은 내향인 캐릭터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고, 내가 바로선 상황에서의 배려가 주는 멋을 알려준 친구로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유튜브 SHOPRO 티저 PV영상 캡쳐

노미소와 비슷하게 말수가 적은 캐릭터가 있다.  바로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의 코미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매화 부연설명으로 코미가 '커뮤증'을 앓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커뮤증이란 사람 사귀는 걸 힘들어하는 증상 또는 그 증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유의할 점은 소통을 어려워할 뿐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건 아니란 것이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가진 코미는 외로운 중학교 생활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 마침 짝이 된 타다노는 그런 코미의 사정을 간파하고 함께 그의 꿈인 '친구 100명 만들기'를 도와 학교생활을 한다.


이 만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재미가 '내향인 주인공의 행동'과 '외부인들의 오해'에서 오는 아이러니이기에 에피소드들은 비슷한 구조로 짜여있다. 예쁘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코미가 하나의 몸짓을 하면 조연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고 오해하면서 소동이 벌어지고, 수습한다는 식으로.


문제는 이 방식에서 벌어진다. 코미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노트에 글을 적는 필담의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말로 하는 대화와는 속도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미소의 세상>의 노미소가 행동으로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가며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과 다르게, 코미는 수동적으로 주변인들에 의해 '움직여 진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반장 선거에 입후보되었다가, 반장보다 윗 계급인 '신'에 배정되어 코미사마가 된다거나, 크리스마스든 새해든 친구들이 코미의 집으로 몰려들어 파티를 벌인다. 이 과정을 싫지 않다고, 필담을 통해 고마움을 표하면서 주변인들은 점점 더 코미를 자신의 잣대로 재단해서 바라본다. 그를 친구로 대하기보다는 예쁜 피규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대하는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수영복, 가을 축제 때는 메이드복, 새해에는 기모노를 입혀가며 서비스씬을 뽑아내는 연출은 코미가 언제 입을 떼고 성장해서 커뮤증을 극복하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보다는 성적대상화한 아름다운 존재로 머물게 하는 시선에 인물들을 머물게 한다. 만약 그의 외형이 예쁘지 않았다면, 매력이 없었다면 그의 학교생활은 아마도 달라졌을 테다.


커뮤증이라는 소재는 보다 주인공의 내면에 집중해야하고, 그가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 벽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어 갈지를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표는 친구 100명이지, 인기인이 되어 반 친구들에게 추앙받기가 아니니 말이다.


내면의 벽을 뛰어넘는 이야기 <겨울왕국>, 그리고 10년 후의 <봇치 더 락>


다음 영화, 겨울왕국 스틸컷

코미 양의 꿈 '친구 100명 만들기'는 결국 스스로가 세운 벽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해.' 때문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내면으로 생각이 흐르기에, 외부의 나 아닌 것과 나를 견주거나 비교하기 쉽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나 잣대가 높을 확률이 높다. 수없이 돌아가는 생각들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세운 '내면의 벽' 앞에서 주저하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이 글을 쓰기까지 2년이 걸렸다. 괜히 뭘 알지도 못하고 나대는 건 아닐까. 내가 작가나 심리학자도 아니면서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고민들이 가득했다. 누가 나에게 하지 말라고 제지한게 아니다. 생각이 소용돌이처럼 돌고돌아 나 스스로 만들어낸 근심과 걱정이었다. 역설적으로 시간이 걸렸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그런 생각하는데 관심없을 거라고, 네가 네 이야기 하는데 뭐 어쩔거냐고 생각하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게 한 것도 나였다. 다시 말해 내면의 벽은 만든 사람이 깨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


이런 내면의 벽을 정면돌파한 인물이 <겨울왕국(2013)>의 엘사다. 활기차고 모험심 넘치는 인싸들로 가득한 디즈니 프린세스 라인업에서 몇 안되는 내향인 엘사의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이야기를 찾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더빙-자막-자막으로 세 번을 극장에서 보고, 더빙으로 두어 번 더 찾아본 페이보릿 영화가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자신의 마법 때문에 동생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트라우마로 힘을 억제하고 부여된 여왕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던 엘사는 대관식 날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다른나라에서 온 대공에게 얼음을 발사해버린다. 숨기고 싶던 기억이 떠오르며, 그는 아렌델 왕국을 떠나 아무도 없는 황량한 설산에 숨어버린다.

엘사는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로 가득찼던 왕국을 벗어나 혼자가 되는 순간 자유로움을 느낀다. Let it go를 부르며, 마음껏 마법을 부리며 숨겨왔던 건축인의 꿈(?)을 무한히 펼친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그에게 성은 쉴 수 없는 공간이었을 터다. 그렇게 그는 내면의 벽을 쌓는다. '나는 아렌델과 어울리지 않아. 나는 해만 되는 존재야.'라고.

이때 그를 구해주는 것이 동생 '안나'다. 엘사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슈퍼 인싸 안나는 그날 처음 본 다른 남자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라는 노래를 부르며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며, 사라진 언니를 찾아 기꺼이 모험에 뛰어든다. <겨울왕국>은 영리하게 엘사와 안나의 역할을 분리하며, 엘사의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서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귀여움, 발랄함, 코미디, 의협심, 자존감과 같은 코드를 담당한 안나가 '언니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되며, 혼자 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언니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위의 이미지처럼 안나는 다가가는 사람, 엘사는 숨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 호의를 거절하고 도망치지만 위기 상황이 되자 동생을 위해 엘사가 행동하게 한다.

이런 구조가 2013년 영화를 볼 때는 내게는 참 생경한 연출이었다. 공동의 목표 혹은 주인공의 목표를 돕기 위해 조력자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저 앉은 주인공을 세상으로 이끌어내어 함께 발 맞추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 손을 잡고 나온 인물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그렇게 여러번 이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엘사는 자신이 정치적 책임을 안고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어린 시절의 과오라는 내면의 벽을 깨고 이상기후로 눈에 묻힌 아렌델을 구해낸다. 2편에 이르러서는 결국 왕국을 동생 내외에게 넘기고 숲의 정령이 되어 살아가는 결말도 엘사에게 '자연스러운 상태(렛잇고 상태)'에게 부여함으로서 그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Aniplex 유튜브_<외톨이 the Rock> PV 영상 캡쳐


<겨울왕국>과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외톨이 the Rock>, 속칭 <봇치 더 락>은 내향인 주인공의 관점에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내향적인 히토리는 어느 날 아빠와 TV를 보다가 밴드의 일원이 자신이 학창 시절 교실 구석에 박혀 책 읽는 척이나 하는 아이였다는 인터뷰를 본다. 이를 보고 일말의 희망(?)을 얻어 아버지의 기타를 빌려 악기 연습에 매진한다. 중학교 1학년부터 3년간 혼자 연습을 하며 실력도 올라가고, 영상 투고 사이트에 '기타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커버 영상을 올리며 수천 명의 팔로워를 만들기도 하지만 현실에선 인기는 커녕 학교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하다.


자존감이 낮고, 대인기피증이여서 늘 외톨이로 살던 그는 우연히 라이브 하우스 공연의 기타 자리가 펑크가 나며 일원을 구하던 드러머에게 발견되어 얼결에 공연하게 된다. 그리고 휩쓸리듯 '결속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인기를 얻고 싶다'는 삿된 목표로 기타연주를 시작했지만, 밴드를 통해 점차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아간다.


자존감이 굉장히 높은 노미소를 제외하면, 오늘 다룬 내향인 주인공 서사들은 '인싸들이 내밀어주는 손'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미의 '커뮤증' 정의에서처럼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중요한 건 누군가 용기내어 건넨 손을 잡고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을 하고,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받을 줄 아는 마음'이다. (내향인 서사이기에 외향인들이 납작하고 전형적으로 그려지지만, 모든 사람은 거절에 상처를 받는다.)


받을 줄 아는 마음에서 더 성장하면 다시 자신이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것이 관계를 다루는 서사에서의 성장이고, 종착지라고 생각한다. <봇치 더 락>은 밴드 리더가 내민 손을 얼결에 받은 히토리가 봇치(외톨이)짱이라는 별칭과 함께 관계 속으로 자신을 맡기는 과정에 있다.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하기에 이따금 비관적인 망상을 하거나 몸이 얼어버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며 팀으로 녹아 들어간다.


Aniplex 유튜브_<외톨이 the Rock> PV 영상 캡쳐

인기를 얻고 싶다는 삿된 욕망, 실력은 있지만 자존감이 낮은 캐릭터의 서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건, '안나'의 자리에 위치한 '키타'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키타'는 SNS를 좋아하는 인싸 인기인의 전형이다. 음악 드라마지만 모에함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제작진은 봇치 대신 키타에게 그 책임을 떠맡긴다. 내향인들이 한 가지 포지셔닝으로 떠받치던 역할을 역전시킨 셈이다.


그는 주인공 히토리가 자신이 받은 마음을 기반으로, 용기내어 내민 손을 기꺼이 맞잡는다. 히토리가 더 빛나기 위한 장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는 포지션에 위치한다. 인간 관계에 능한 인물인 동시에, 음악에 있어서는 부족한 위치에 있는 그가 기타를 배워가면서 두 사람은 동등한 관계로 나란히 설 수 있게 된다.



(좌) komisan-official.com // (우) 나무위키

내향인 서사에서 내향인이 챙겨야 할 것


이야기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나 가치관, 의미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결은 다르지만 그간 남성 중심 서사들 사이에 묻혔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있어왔지만 있지 않았던 것 치부되던' 이야기들이 발견되고, 생산되듯이 세상에는 '이야기화'되지 않은 것들이 참 많다.


내향인 서사가 주목 받은 건 아무래도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이후일 테다. TED 강연과 함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로 출판에서는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같은 도서들이 등장하며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봇치 더 락> 같은 이야기들로부터 내향성을 하나의 특성으로 하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나는 내향인이니까 누군가 손내밀어 줄 때까지 기다릴 거야. 같은 수동성을 합리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살면서 내게 먼저 선뜻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손에 꼽았다. 아마도 내가 '받는 마음'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내향인 서사를 통해서 내향인이 얻어야할 건 결국 '믿음'인 것 같다. 내 안에 갇혀 어느 누구도 들이지 못하는 내면의 벽을 세운 사람이라면 그 벽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벽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사회가 요구하는 외향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는 믿음을 얻어가면 좋겠다.

나도 먼저 만들어진 내향인 서사들이 내민 마음을 기꺼이 받고, 나와 같이 어떤 농담에 웃을 수 없어 몇년을 곱씹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를 통해 손을 내밀고 싶다. 내향인이여 함께 연대하자!는 결말이라면 진정성이 떨어질 터다.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두고 멀리서나마 힘을 받아보자. 스스로 멋진 내향인 서사를 만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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