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1~10.27
강연 준비로 정신 없던 한 주
어쩌다보니 이번 주엔 강연/강의 레퍼토리를 2개 짜야했고, 새로운 내용을 숙지해야되는 상황이어서 이걸 준비하다보니까 정신 없이 한 주가 흘러갔다. 다시 정신잡고 이번주에 해야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자.
파주 한빛도서관에서 문학사 강의를 했다.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 같아 기분 좋게 했던 수업.
https://brunch.co.kr/@hakgome/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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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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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가 처음으로 생생하게 의식한 것은 그와 함께 살아온 긴 시간이었다.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 최선을 다해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 바로 그녀 자신이 선택한 시간이었다.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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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 노트(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패스!)
문학사 강의 준비하면서 다시 읽은 책. 읽다보니 내가 '다시' 읽는 게 아니라 읽다가 포기했던 이야기였다는 걸 기억해냈다. 너무 괴로워서, 혐오스럽기도 하고 비탄해서, 그리고 기괴해서. 부커상을 받았단 소식을 듣고 뭔가 들뜬 마음으로(?) 집었다가 아... 예술은 원래 어려운 건가... 하면서 좌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5년 만에 다시 잡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감상은? 음... 막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소양이 낮은 독자인 내 시선에선 영혜가 나무가 되길 선택하는 과정은 가부장제와 폭력성(남성)으로의 도피이자 거부 선언의 은유가 아닐까 싶었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남편들이 그를 붙잡고 아버지가 입에 탕수육을 쑤셔 넣는 파트는 그 끔찍함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파트가 아닐까 싶었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요강과 더불어 가부장제/폭력성(남성)을 잘 보여주는 상징 투탑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좋았던 소설은 마지막 [나무 불꽃]이었는데, 영혜의 언니 인혜가 스스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되뇌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부여된 역할로만 살아있을 뿐, 가족이라는 구성에 개인이 아닌 조각(파츠)으로만 살았을 뿐 '정말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선언은 이 3부작이 다만 한 여자가 미쳐서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기담도 아니고, 형부가 처제의 몽고반점을 탐하는 포르노도 아니고,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또 너무 당연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그래야만 하는 것'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도전이 되는 것이었다. 이 소설이 쓰인 2004-05년도와 지금의 현실은 바뀌었으면서도, 엄청나게 변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채식주의자가 과거의 유물이 되는 시절로 세상이 바뀌어가면, 영혜는 나무가 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작별하지 않는다]도 이어서 읽어볼 텐데, 한강 작가의 책은 여운도, 감정소모도 크다. 약간의 텀을 둬야겠다.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연재 다시 시작해서 조금씩 아껴서 보는 중!
* -ing는 기록만 간단히
: 한 4화에서 더 나아가질 않네...
: 첫 장면 연출 미쳤다. 여전히 잘 안나간다.
: 싹 지우고 리뉴얼
실시간 인풋 기록은 아래 인스타에 하고 있다.
문장 밑줄 치고, 그때 든 감정/생각을 바로 기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