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다.
사진 출처 : 알라딘
* 매일 하나의 리뷰(혹은 글쓰기) 9일차
*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1. 들어가며
어제 '체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드라마 주인공도 변한다는 글을 쓰고나서 한참이나 마음이 공허했다. <문송>이라는 단어는 남 일 같지 않은 말이기도 했고, 이런 말을 할수록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우울을 타파하기 위해서 고른 책은 아니었지만 마침 읽던 책 중 하나가 '니체의 인간학'이었고 체념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우리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기도 하고, 저자의 나이를 고려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몸에 배인 성에 대한 인식, '노오오오오력'의 변주는 적당히 걸러서 읽었다.
2. 착한 사람 = 약자
이 책은 '철학'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따져보면 '니체의 철학' 해석 및 '텍스트를 인용한 에세이' 정도 된다.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잡은 주제는 <착한 사람 = 약자>라는 프레임에 관해서다.
흔히 '착하다'라는 말은 긍정의 의미로 쓰인다.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며 공동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한다. 그러나 나카지마는 이 '착함' 뒤에 숨은 비열함과 찌질함(?)에 주목한다. 약자가 아닌 자들이 스스로 약자의 프레임에 들어가 '나는 약자니까.' 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나는 그가 일본의 약자를 자청하는 사람들과 신형 약자(히키코모리 같은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랜선자아를 메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들이 세상을 약하게 만든다는 논조로 쓴 글을 읽으며 최승호 시인의 '북어'라는 시가 떠올랐다.
3. 너도 북어지?
말의 변비증을 겪으며, 막대기 같은 생각을 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로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하는 그 북어 말이다.
나카지마가 경계하는 세상의 약자화는 '약한 대중이 세상을 하향평준화'시킨다고 읽을 수 있다. 즉, 약하다는 말을 재정의하면 '약하기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강한 자를 경계하고, 나를 보호할 만한 대중의 품에 숨어 들어가 시스템에 편승하는 것.'이고 그 '약자'들이 숨는 도덕적 방패가 '착함'이라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비난 받는 것을 싫어한다. 비난을 받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비난 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는 말은 나에게 꽤 쓰리게 다가왔다. 평소에 종종 이 말을 써왔기 때문이다.
나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내재화하고 누구에게도 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처음에 그 부분을 읽을 땐 마음 속에서 그게 뭐가 나쁜데? 하고 울컥했지만 뒷부분을 읽으면서 반성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한 인용은 아니고, 대강 요약해서 썼다.)
'그런 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약자에 있는 것을 비열하게 이용한다. 평소에는 호의를 베풀고 동정을 하지만 자신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면 발을 빼고, 말을 바꾼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악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강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다. 적이 없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나를 죽여가며(남의 비유를 맞춰가며) 남과의 충돌을 피해왔다는 이야기다. 내가 강해져서 상대와 상대의 비난에 부닥칠 생각보다는 타협과 고개숙임으로 약자의 위치에 계속해서 있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소중하게 다뤄온 '착함'이 실은 더럽고 비열하게 나의 안위만을 생각한 속물적인 발상이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도 '북어'였고 남들이 나처럼 못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 자신이 의심스러워졌다.
4. 억울하면 강해져라 - 열등감에 대하여
어느 게임을 하면서 (채팅 말투로 보아 나보다 어린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유저에게 들은 말, '억울하면 강해져라.' 나는 이 말을 농담삼아 종종 썼다. 대충 뉘앙스는 '꼬우면 니가 강해져서 뒤집어 보든지.'하는 조롱과 자조에 가까운 말을 말이다. 내가 착한 사람 = 약자 라는 프레임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나의 생활패턴을 의심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착함'만큼이나 집착했던 단어는 '열등감'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에는 '열등감은 나의 힘'이라면서 세상을 저주하기도 한다.(시기에는 ~ 한다. 라고 표기한 것은 이 시기가 이따금씩 찾아오고,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 반성한다.) 열등감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항이 필요하다. 열등한 사람과 우등한 사람. 그리고 이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전자뿐이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철저하게 약자의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을 왕왕 쓰는 나는 늘 '약자'이고 싶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쟤보다 ~을 못해. 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나는 할 수 없고 너는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동경' 둘째는 '그런 너가 나처럼 잘 안 되었으면 하는 마음.(시기)'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의미는 자신도 모른채 비열하게 나타난다. 열등감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강자에 비해 도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이유를 상대에게 대입하면 상대는 반드시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에 반대항에 있는 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동경하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기하는 이중인격적이고 파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타인에게 악영향이 끼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강자이고 나는 약자이기에 나는 그를 공격할 수 있지만 그는 나를 공격할 수 없는 프레임을 짜기 때문이다.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적 하나 없고 순수하게 착하기만한 나의 자아를 믿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착한 척'을 통해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하는 비겁한 행동이었으니까.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 책을 통해 한 거풀 벗겨진 기분이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하긴, 강해져야지. 누구와도 대등한 입장에 설 수 있게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않겠는가. 강한 사람들은 당당하다.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곤조'를 지킨채로 앞으로 전진하는 힘이 있다. 더불어 자기자신이 확고(확실)하기에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나는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바뀌려고 노력하려 한다. 더이상 착한 사람이 되지 않으련다. 참 쪽팔린다.
(물론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강자가 되란 말이 아니다. 비교로 만들어지는 강함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중심을 잡고 나의 축을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첨언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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