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림책] 검은 반점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by 이요마
검은 반점(2016)

사진출처 : 다음 책


* 매일 하나의 리뷰(혹은 글쓰기) 13일 차

*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1. 들어가며

나는 도서관에 가면 늘 기웃거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신착 도서' 코너다. 신착이라는 말은 '물건 따위가 새로 도착함'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도서관에 들어온 새 책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신착 도서 코너에 있는 모든 책이 신간은 아니다.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전학생 같은 느낌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 내가 만난 책은 그림책 <검은 반점>이다. 평소에 그림책을 찾아서 보지는 않았지만, 팟캐스트 '기린 책방'의 '푸른이 그린 기린 그림' 코너에 참여하면서부터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검은 반점>은 신착 도서 코너의 한 쪽 구석에 꽂혀있었다. 짙은 녹색의 바탕에 흑색의 소녀가 있는 표지는 다른 책들에 비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난 그래서 더 손이 갔다. 교실 한 구석에서 조용히 한 공간을 채우는 수줍음을 타는 아이 같아 보였다.


2. 검은 반점이 있었어. 언제부터 있던 거지?

주인공 소녀는 거울을 보다가 얼굴에 검은 반점이 하나 난 것을 알게 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검은 반점을 소녀는 가리기도 하고 씻어보기도 하지만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그러다가 엄마의 등에서, 자신과 비슷한 부위에 점이 있는 남자를 보며,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체에서 여러 가지 색의 반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반점들이 세상을 멋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야기는 끝난다.

그림책의 묘미는 '보는 맛'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 이 책은 '반점'에 천착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포인트는 반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반점은 언제, 어디서 온 걸까? 생각을 하면서 몽환적인 그림을 보면서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다음 책의 출판사 서평에는 '검은 반점이 상징하는 것은 열등감, 상처, 단점 같은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인식하는 순간 자존감은 끝없이 떨어집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명기해놓았다.(해석을 한정 짓는 순간 그렇게 읽을 수밖엔 없게 된다.)

출판사의 서평을 글을 한참 쓰는 와중에 발견하였고, 이번 리뷰는 펑하고 폭발해버렸다.

다음 책에 있는 홍보 이미지

나는 반점을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정보가 얼굴에 쓰여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하는 생각이었다. 엄마의 등에 있는 반점은 평소엔 보이지 않지만 몸을 씻을 때 거울을 통해서나(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본인도 알고는 있는 비밀스러운 일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나와 비슷한 비밀을 갖고 있는 남자를 만나 서로가 사랑을 '공유'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비밀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질려 이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며 그렇게 읽다.

특히 반복해서 하는 질문 '언제부터 반점이 생긴 것이지?'를 보면서 헛다리를 제대로 짚었던 것 같다.(이게 다 출판사 때문이다. 정답이 있으니 나의 상상과 추측이 그저 '오답'으로 끝이 나잖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잘 숨기는 사람도, 못 숨기는 사람도, 서로의 비밀을 끌어안는 사람도, 그 비밀 때문에 지쳐 헤어지는 사람도 있다.

비밀이라는 단어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으로 필요하다. 비밀이 될만한 '이야기'가 벌어져야만 하고, 그 이야기의 주체가 '나'여야만 한다.(내 몸에 난 반점이기에 '나의 비밀'일 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퍼지지 않게 꽉 잡고 있는 현재가 필요하다.

스쳐 지나가듯 툭 던진 한 줄들이 매섭게 다가왔다. 질문에 대한 답. '오늘? 아니, 아주 오래전.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이 특히나 그랬다. 전제 조건의 삼박자가 딱 맞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발설되는 순간 비밀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과거의 사건도 꼭 붙들고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며, 그것을 지키려 한 나의 자존감까지 슝- 하고 날아간다. 엉뚱해 보이는 질문과 답변은 숨기고 싶은 반점이라는 메타포(은유)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과거'에서 산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싶었다.(응~ 그냥 콤플렉스야. 오버하지 마~)

3. 비밀 에너지에서 퍼지는 세상의 생동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과거에 머무는 존재다. (저번에 썼던 비유 같지만) 타이핑을 하는 나도,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끊임없이 과거를 갱신한다. 비밀은 그 와중에서도 '감추고 싶은' 속성의 과거일 게다. 라제떼 편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기억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 임시 저장을 해놨다가 삭제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만'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데 비밀은 현재의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심하면 존재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갖기에 삭제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파멸로 몰 수 있는 힘은 두려운 동시에 경이로운 것이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다시 말하면 파멸은 인간의 예고된 숙명 같은 것이다. 때문에 '경외'심이라는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비밀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는 '강한 힘'이기에 매력적이다. 들고 있는 순간에 끝없는 긴장이 생기고, 놓아버리는 순간 스스로 파멸에 이를 수도 있는...

그렇기에 소녀가 가진 '타인의 비밀'을 색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영적 에너지'를 감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생명이라는 것은 비밀과 마찬가지로 늘 긴장하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존재 자체로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흔히 '기'라고 말을 하는 각자의 에너지가 인체 안에 통제된 상태로 사회를 구성할 때 인체에서 나오는 에너지 파동이 서로 겹쳐지며 생동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검은 반점은 명백히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거창하게 썼지만 본 의견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자료가 아님을 밝힙니다.(본격 아무말 대잔치)


4. 여담

그림이 살아있는 것 같다. 포근하면서도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매력적이고, 몽환적이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내기는 아까운, 두고두고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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