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에세이] 고맙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는 태도에 대하여

by 이요마
고맙습니다(2016)

사진 출처 : 알라딘


* 매일 하나의 리뷰(혹은 글쓰기) 14일 차

*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있습니다.



1. 들어가며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연배가 가늠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단어선택이나 문장종결어미, 혹은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들로 파악을 한다. 그중 분위기는 흔히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젊은이 ㅡ 패기','노인 ㅡ 여유' 같은 이미지인데 모든 글이 꼭 그런 프레임에 맞춰 읽히지는 않는다.

경기가 좋지 않기에 젊은이들은 안정을 찾다보니 나이보다 성숙해지고, 노인이 된다한들 여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나 저러나 새드엔딩이기에 패기와 여유의 프레임은 이제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올리버 색스는 사실 의사로도 작가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패기와 여유를 모두 잡은 요즘 세상엔 몇 안 되는 이다. 이 글에선 그의 성공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글에서는 오래 세상을 산 사람의 연륜과 삶에 대한 열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맙습니다>라는 에세이집은 올리버 색스가 암선고(안암의 전이)를 받고 치료를 받는 8개월 사이에 쓴 네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환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글이었다. 유약해보이고 부들부들 떨리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힘이 실린 신기한 글이었다.


2. 이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기분이 든다.

'수은'이라는 글에 있는 문장이다. 비록 문과출신이라 주기율표 유우ㅡ머에 웃을 수는 없었지만 집에 가는 버스에서 마주한 이 문장을 나는 쉬이 넘길 수는 없었다. 여든의 색스는 자기자신을 잘 파악한다. 나이 먹음에 대하여, 노년의 즐거움에 대하여, 몸의 쇠약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다. 더불어 소싯적 잘나갔던 시절을 자랑처럼 늘어놓거나 회귀하려하지도 않는다. 현재를 직시하고 끊임없이 마주 하면서 다가올 죽음에 대해 사색한다.

인생 정리는 자신의 과거 행적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하는 것임을 색스는 몸소 보여준다.

삶의 마무리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의 연장이다. 물론 색스가 암선고를 받기 전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마쳤기에 이러한 초연한 태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더 정리할 것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3. 유년기의 회고

그의 생의 마지막 글, <안식일>은 본인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태인 집안의 전통과 그것을 어긴 자신의 이야기. 나는 이 모습을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의 마지막 소설 집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기나긴 하루'에 수록된 <빨갱이 바이러스>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또 어린시절 6.25와 빨갱이 얘기가 나오겠구나. 하고
다른 소설에서 많이 다루긴 했지만, 돌아가시기 2년 전 발표한 그 소설에서 다시 유년기의 (자전적인 소설까진 아니겠지만 충분히 참작가능한) 트라우마 같은 에피소드를 꺼냈다는 점은 한 번 생각 해볼 부분이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기억을 잃을 때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한다. 최후에 남는 기억은 유년기의 기억일텐데 그것이 좋든 싫든 사람은 왜 죽음의 순간에 인생의 초창기 기억으로 돌아갈까.


* 삐빅 아무말 구간입니다.

어쩌면 그 끝이 시작과 닿아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죽음은 사람마다 시기가 다를뿐 이미 예고된 미래의 경험일게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을 땐 결코 닿을 수 없는 경험이기에 현재와는 아득히 멀다.(젊든 늙든) 반대로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도 그 시기가 과거일 수록 현재에서 멀어진다. 더불어 다시 돌아가거나 닿을 수 없는 상상의 공간에 머문다. 둘 다 살아있다면 체험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이다. 때문에 과거와 죽음은 전혀 다르면서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에 대해 우둔하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아서 라기 보단 너무 막연해서 전혀 그려지지 않는 느낌이다. 이 흐름대로라면 내가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 싶다 라고 마무리 해야겠지만, 그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은 다만 건강히 오래 살고 싶다. 나는 내가 느리고 지지부진한 것을 알기에, 나의 색을 찾고 만들어가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게다. 그 색을 찾으면 죽어도 좋냐고? 에이 그래도 오래 사는게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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