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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Feb 24. 2024

책이 선물해 준 시간

좋은 엄마

오늘도 잠자리 독서를 준비한다. 겨우 양치를 마친 둘째가 책장 앞에서 읽을 책을 잔뜩 고르고 있다. 아이는 그림과 글씨를 함께 보고 싶어 하고 나는 눈높이에 맞춰 읽어주려면 옆에 누워야 한다. 매번 아이보다 먼저 잠드는 게 문제지만 나란히 누워 이불을 덮고 스탠드불 빛 아래 목소리가 울리는 이 시간 참 좋다.


부엌 뒷정리를 하는 동안 ‘마법의 시간여행-링컨의 깃털 펜을 찾아라’를 먼저 읽고 있었던 터라 내가 방에 가자마자 슬픈 얼굴로 링컨대통령이 암살당한 이야기를 해준다. 또 링컨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링컨의 누나는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걸어 다녔다길래 매일 20분 정도 거리를 걸어 다녔던 엄마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도 해주었다.


“언니랑 너도 날씨 좋은 날에는 학교까지 걸어 다녀봐~되게 멀진 않으니까.

제주에 와서 우리가 차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

맞다. 강한 햇빛과 바람에 차 없이는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생각했고 걸어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엄마, 그럼 차 안 타게 우리도 학교랑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 가면 되잖아? “

“너 우리 집 놓고 갈 수 있겠어?”

“엄마는 너무 정들었나 봐.. 우리 집마당, 너희가 축구하고 피아노 치는 거실.. 버리고는 못 갈 것 같아!”

“나도 그래 엄마.. 우리 집 곳곳에 추억들이 있잖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면서 우리 집이 제주도여서 좋다고 말하는 아이.

엄마, 아빠한테 선물도 못주고 더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런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준 아빠께 너무 감사하고 엄마가 ‘좋은 엄마’라서 너무 좋다고..


‘좋은 엄마’라는 그 말 한마디가 방학의 막바지라 조금 지쳐있던 나를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의 마술처럼 기운 넘치고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긍정의 나로 바꿔주었다.


한 살 더 먹더니 벌써 철이 들었나 싶도록 기특한 말을 쏟아내는 아이 앞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너의 존재가 엄마아빠한텐 가장 큰 선물이고 행복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잠들기 전 책 덕분에 서로를 꼭 껴안으며 행복을 즐겼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처럼 어린 시절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덕목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다.

6살 때 제주로 내려와 서울에서 살았던 것보다 열 배는 진하게 새겨졌을 시간들. 모험심이 강한 성격에 둘째라는 포지션에 더욱 자유롭게 자라서인지 정말 ‘믿음’으로 방목육아를 했는데 자란 키만큼 마음도 많이 컸구나 느끼는 요즘이다.


해리포터 다락방처럼 우리집도 창고아지트

책을 읽어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조용한 저녁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힘들어도 책을 또 잡게 되는 것 같다.

엉뚱한 생각이나 행동을 자주 하는 아이가 더디게 철들길 바라는 마음에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는 책을 더 읽히고 싶다.

첫째가 이맘때 재밌게 보던 책 중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시리즈를 추천해 줬더니 어제부터 열심히 읽고 있다.

1년 넘게 오므라이스잼잼을 파고 있는 두 아이를 보고 다른 종류의 책을 봤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조언에 우리는 서점으로 가서 독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책을 세 권씩 샀다.

첫째는 SF소설 두 권, 한국사 한 권, 둘째는 학습만화 한 권, 종이접기 한 권, 나머지 한 권은 엄마추천으로 셜록홈스를 선택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다 읽는 걸 보고 삐삐시리즈를 볼 때가 됐구나 싶었다.

호흡이 긴 책을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어찌나 기특하고 예쁜지.


방학이 힘들어도 여유 있는 시간 덕분에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좋은 엄마’ 수고했어!


이 시간이 쌓여 단단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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