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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Mar 12. 2024

범섬과 유채꽃

추억을 먹고살아요


 제주유나이티드 홈경기가 있는 날. 제주 fc 팬이 된 딸들이 경기 스케줄을 꾀고 있어 이번 일요일에 열리는 개막전을 보러 가자며 미리 선포를 한다.

 날씨 좋은 봄날 온 가족이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으로 떠났다. 챙겨 온 패딩점퍼가 민망할 정도로 내리쬐는 햇볕에서 역시 서귀포는 서귀포구 나를 느꼈다. 열심히 응원한 덕분에 제주 vs대전의 경기결과는 3:1 승리!


 집에서 45분 정도 달려가 축구를 본 날은 서귀포투어의 날이기도 하다. 여름엔 강정천에 가기도 하고 그 앞 공원에서 축구도 하고, 올레시장에 들르거나 올레 7코스를 걷기도 한다. 제주시에 사는 사람들 중 서귀포에 자주 가는 편인 우리 가족은 제법 알차게 동선을 짜놓게 되었다.


 이번에는 유채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법환포구 산책길을 걸었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범섬이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유채꽃이 바닷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햇살이 비추어 앞에 걸어가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난다.


노랑과 파랑

 

 이 길은 8년 전, 우리의 첫 번째 보물 승연이와 제주여행을 왔을 때 걸었던 길이다.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구글포토의 맨 아래로 스크롤을 넘기며 그때의 사진을 한참 찾는 남편.


 바닷가 앞 돌담카페에서 찍은 승연이의 사진을 찾았다. 통통한 볼살과 귀엽게 튀어나온 이마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말도 조근조근 잘하기 시작했고  아기티는 아직 남아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원피스를 입고 있는 5살의 승연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그 아기가 보고 싶어 사진을 만지고 또 만졌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빠와 승민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엄마도 젊다.


5살의 승연이와 13살의 승연이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둘이서 만나 아이 둘이 생긴 지금까지의 시간이 해마다 왔던 제주여행의 순간순간들로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이제는 제주 어느 바다를 가면 그때 먹었던 피시 앤 칩스의 맛, 화장실 찾아 손잡고 뛰어다니던 장면, 빗방울이 바다 위로 똑똑 떨어졌던 소리들이 떠오른다. 여행자에서 현지인으로 살게 되면서 그 추억은 더 많이 쌓이게 되었다.


 좋은 곳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부지런함 덕분에 참 좋은 것을 많이 느끼며 살았구나 느끼게 된다. 어디든 다시 찾아왔을 때 과거를 추억할 기억이 있다는 것은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 추억을 당겨와 지금을 느끼고 또 내일을 기다리게 되는 것. 그것이 가족을, 나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는 것 같다.


 그 카페 앞에 오늘의 추억을 놓고 돌아가는 길, 몇 년 후 다시 왔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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