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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Mar 15. 2024

청국장

함께 준비하는 저녁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울푸드가 있다. 할머니의 청국장, 고구마순나물, 겉절이와 엄마의 토마토소스파스타. 제주 시골에 살다 보니 좋아하는 음식점 몇 군데를 빼면 귀찮아도 집에서 해 먹는 밥이 나은 경우가 많다. 아이들도 워낙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손맛 가득한 할머니의 음식들이 그리웠나 보다. 시골쥐가 서울구경 가듯 육지로의 일정을 앞두고 설레는 목소리로 승연이에게 물었다.


“서울 가면 뭐 제일 먹고 싶어? 엄마는 평양냉면이 제일 먹고 싶은데…”

“나? 할머니밥”

“그래? 청국장? 고구마순?”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이면 다 좋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멍해졌다. 사실 나도 주말이면 해주시던 어머님의 푸짐한 밥상이 그리웠다. 배가 터질 듯이 먹어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맛도 맛이지만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방금 무쳐진 취나물 위로 뿌려지는 깨소금향기, 젓가락, 숟가락을 놓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부엌에서 한상 둘러앉아 같이 식사하던 그 시간이 그립다.


 방학 동안 이 메뉴 저 메뉴 돌아가며 요리를 하다 문득 청국장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들도 한동안 못 먹었던 청국장이 먹고 싶었다. 제주에서는 아는 청국장집이 없기도 하고 장맛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전에 맛있게 먹어봤던 청국장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택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도착!

 부엌에서 썰고 볶는 것에 능숙해진 승민이가 재료 손질을 맡았다. 애호박, 무, 양파, 감자, 버섯을 썰고 김치와 돼지고기 다짐육, 두부를 준비했다.


진한 맛을 위해 꼭 넣는 김치와 무


 끓는 물에 채소들을 넣고 청국장 덩어리를 넣었다. 구수한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승민이가 간을 보며 냄새가 너무 좋다며 “바로 이 맛이야!”를 남발했다.

고사리 손으로 곱게 썬 호박과 감자들이 익어가는 것을 보며 뿌듯한지 미소를 짓는다.


마당에서 끓인 청국장


 어릴 때부터 쌀 씻기, 상추 씻기, 계란 풀기, 호박전에 밀가루 묻히기, 애호박이나 버섯, 두부 썰기, 양념간장 만들기, 채소 볶기 등을 일부러 시켰다. 처음에는 과도로 자르게 하고 옆에서 계속 지켜봤지만 이제는 둘 다 잘한다. 그래서인지 두세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바쁜 저녁 식사시간, 엄마의 손동작에 물 흐르듯 들어와 채소를 볶거나 불을 줄이거나 쌈채소를 씻는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잘 맞는다.


“와~정말 반듯하게 잘 잘랐다!”

“너무 맛있다! 도와줘서 고마워!”

 칭찬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주면 기분이 좋아 “엄마 더 할 것 없어?”하고 신나게 할 일을 찾는다.

나중에 혼자 어디라도 가서 산다면 계란볶음밥이나 샐러드 정도는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이라는 것이 사실 먹을 때는 금방이지만 만들 때는 과정도 뒤처리도 잔일이 참 많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면 시간이 두 세 배 더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다 보면 자기 몸을 소중히 챙기는 마음가짐도 생기지 않을까?


 오늘 저녁은 쌀국수를 삶아 분짜를 같이 만들면서 베트남 여행 갔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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