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지난 일요일 수영대회를 마치고 제주박물관으로 달려갔다. 국보를 직접 보기 위해서다. 지난달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이건희 컬렉션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면 제주박물관은 더 과거로 흘러가 시대를 상징하는 보물들이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수집가의 방 문을 열었을 때 우리를 환대하는 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첫인사는 초대받은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설레게 했다.
국보들이 나오기 전 전시된 물건들 자체는 굉장히 일상적인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저 붓으로 그려진 그림들, 서예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역사의 한 장면을 걸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사실 인왕제색도가 제주에 내려왔다는 소식이 이번 전시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관람객들을 압도하고 있는 정선의 자신감 넘치는 화풍은 국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았다. 멀찍이 의자에 앉아서 인왕산의 풍경을 즐기고 싶어 조용히 혼자 남길 기다렸다. 몇 해 전 아이들과 함께 인왕산 계곡에 발 담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범종 앞에 앉아 듣는 종소리의 울림은 깊고 맑았다. 5초 정도의 간격으로 녹음된 종소리가 반복되었는데 울릴 때마다 함께 퍼지는 빛들이 감동을 더했다.
기획전시실 자체가 넓지 않은 공간인데 이 많은 보물들을 동선을 고려해서 놓아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의 변화’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문이 처음에는 작지만 점점 커져 호수 전체로 확산돼 나가는 것처럼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희 에세이에서
아직 어린이박물관을 좋아하는 나이라 기획전시실은 후다닥 보고 종이배 접으러 간 우리 집 막둥이. 그래도 오랜만에 찾은 제주박물관에서 함께 손잡고 ‘우리의 것’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전시실도 지하의 영상실도 좋았지만 박물관 뒤에 숨겨진 동자석 정원은 바람 부는 초저녁에 전시의 여운을 더했다.
한국적인 작품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며 그것들을 한데 모아 놓고 우리의 예술혼을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었을 어느 수집가.
그의 방 문을 열어 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