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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을 대하는 도민의 자세


"왜이래? 육지사람 같이?!"


비바람을 피해 우산을 잡고 허둥대고 있는 나를 향해 동네 친구가 농담으로 한마디 건냈다. 제주에서는 비가 내리면 강한 바람이 더해져 옆으로 내리친다. 그래서 우산은 무용지물이 된다.


점심이 되니 점점 해가 나길래 오늘 약속했던 새로 문을 연 떡볶이집에 무사히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여기는 어딘가?변화무쌍한 날씨가 매력터지는 제주도다. 교문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갑자기 비가 옆으로 날아들더니 강풍이 우산을 하나씩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비장한 얼굴로 우산을 접고 떡볶이집으로 뛰었다. 진정한 도민의 자세다.


처음 제주에 이사왔을 때 적응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람이었다. 집에서 실컷 드라이를 하고 나왔는데 차를 타기 전 30초만에 머리가 산발이 됐다. 우리집은 지대가 높아 해풍이 직접 닿는 곳인데 앞집 뒷마당과 우리집 베란다 사이 통로로 강한 바람이 몰아칠 때가 많다. 빨래대가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캠핑의자도 날아가기 때문에 삼다수 물통이나 벽돌로 고정시켜 놓아야한다. 처음에 집집마다 놓았던 플라스틱 창고가 한 번의 태풍으로 전부 날아가버려서 그 후로는 멋 없는 컨테이너창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나도 낮에 펴놓았던 파라솔을 접지 않아 밤사이 옆 공사장으로 날아가 비바람 흠뻑 맞으며 주워 온 적도 있다.


작년 태풍 힌남노가 들이닥쳤을 때는 새벽 3시까지 2층 베란다 창을 붙잡고 있었다. 바람이 집을 뽑아버릴 기세로 불어닥치는데 정말 무서웠고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개미같이 작고 나약한 존재구나를 느꼈다. 지금은 비와 바람에 취약한 제주도 주택에 사는 법을 앞집 어른께 배우며 미리 대비한다. 예를 들어 태풍이 오기 전에 일단 문이란 문은 다 잠근다. 베란다 창문 틈 사이에 박스를 끼워넣어 문틀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데 옆쪽과 위쪽 틈을 다 막아주어야 한다. 나무들도 바람에 흔들려 꺾일 수 있으니 가지치기를 해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안전하다. 아파트 살때는 태풍의 영향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제주도 주택에 살면서 태풍이 지나고 평온해진 날씨에 감사하며 이웃들이 무사한지 서로 안부를 묻게 된다. 바람이 '정'까지는 휩쓸고 가지 못한 모양이다.


바람때문에 육지의 추위보다 더 매서울 때도 있지만 그 바람이 좋아 반해버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제주에 단단히 취한 것 같다. 여름날 바람이 통하도록 베란다창과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 놓으면 하얀 린넨 커튼이 흔들리며 온집안을 바람이 지나간다. 환기는 물론 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그것 뿐일까. 치유의 숲, 사려니 숲길 삼나무들 잎사귀들이 차르르 부딪히는 소리도, 억새물결이 한들한들 흔들리는 오름도,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도 '바람'이 있어 완성되는 제주만의 아름다움이다.


2년 전, 1년 전, 올해... 바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점점 더 유해지고 있다. 동쪽에서 오는 바람도 서쪽에서 오는 바람도 불어오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에게까지 불어와줘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제주바람을 맞으며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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