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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나의 요리 성장기

텃밭에서 재료 공수


나의 첫 요리는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석 달 정도 계셨던 때 배웠던 오징어국이었다. 중학교 3학년 즈음 어깨너머로 김치볶음밥, 계란말이 정도를 할 줄 알았던 나는 할머니께 한식의 기본양념과 미역국, 소고기무국, 그리고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오징어국을 전수받았다.


달궈진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마늘을 볶다가 반듯하게 썬 무를 넣고 고추가루를 넣어 양념이 무에 잘 베어들도록 중불에서 달달 볶아주었다. 주인공인 오징어는 껍질을 벗기지 않아야 국물이 진하고 감칠맛이 살기에 붉게 물든 무에 오징어살을 넣고 멸치육수를 부어 끓여주면 구수한 오징어국이 완성되었다.


'이 맛이지!' 하며 아빠가 남김없이 드신 그 국은 나의 첫번째 성공작이었다. 할머니의 음식솜씨를 닮은 엄마의 닭도리탕은 식구들의 밥도둑이었고 나도 엄마와 도마 앞에 나란히 서서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께서 생일날 해 주신 구절판은 소고기, 표고버섯, 숙주, 당근, 오이, 흰자지단, 노른자지단, 피망 8가지 재료를 곱게 채 썰고 볶아 흰색 밀전병에 싸 먹는 요리인데 9가지 재료를 넣어 하나의 쌈에 담긴 음과 양의 조화를 음미할 수 있었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한식의 기품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매년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쪽으로 여행을 가면서 현지 음식의 배경과 요리법에 관심이 커졌고 동남아음식에 빠지지 않는 향신료와 우리나라의 새우젓과 같은 피쉬소스, 중독성 강한 고수, 싱그러운 라임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얌운센(태국식 샐러드), 분짜(베트남식비빔면), 미고랭(인도네시아 볶음면)등을 한식과 접목해 나만의 레시피로 완성해 단출하지만 색다른 밥상에 마주 앉아 내 음식에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제주에 내려와 마당있는 집에 살다보니 손님들의 초대가 잦아졌고 양가에서 지원해 주시던 반찬들과 헤어지게 되어 자연스레 집에서 음식을 더 해야만 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봄에는 쌉싸름한 나물을 여름에는 신맛 좋은 과일을 가을에는 담백고소한 잡곡을 겨울에는 기름진 생선들로 오감을 자극받았다.


'돌담에 고사리 놓았어요.'라는 앞 집 아주머니의 문자가 오면 냉큼 나가 들고와 고사리나물, 고사리피클 레시피를 찾아 새로운 찬을 만들게 되었다. 이웃사촌이 밭이나 바다에서 갓 따온 귀한 재료들을 챙겨주시니 그 마음이 감사했고 흙냄새가 가시지 않은 재료 자체의 맛을 음미해 보려고 했다.


불린 톳과 보리밥을 함께 지어 흑돼지약고추장을 한 숟갈 올려 먹으면 바다향이 입안에서 고소하게 퍼졌고 살아있는 뿔소라는 오독오독 씹혀 몇 개만 먹어도 보약 먹은 것 처럼 힘이 났다. 우영팟(텃밭)에서 상추도 키우고 완두콩도 키워 바구니 한가득 담아내니 친숙해진 채소들은 어떻게 키우면 잘 자라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큰 아이는 아침마다 블루베리나무에 물을 주며 관심을 갖으니 올해는 주렁주렁 열매가 많이도 열렸었다.



제주에서 나는 재료를 아이들과 직접 만져보고 향을 맡아보고 소중히 다뤄보는 시간을 통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은 이 귀한 것들이 우리 몸과 마음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한가지가 있다면 시어머니가 그때그때 만들어주셨던 그리운 김치들인데 그 맛을 기억해내어 작년에는 친구들과 첫 김장을 했다. 시어머니 김치보다 감칠맛은 없어도 엄마 곁을 떠나 진짜 한 가정의 밥상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거듭난 것 같았다.


음식이라는 것은 맛도 모양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만들어가는 시간동안 함께 먹을 사람과의 소통, 웃음, 대화를 기대하며 나의 정성과 어우러지며 완성된다. 제주의 뜨거운 태양을 버티며 살아낸 채소들의 생명력은 내가 제주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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