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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마당은 우리 삶을 시로 만든다

마당이 주는 행복


제주로 이사를 결정한 후 어느 곳에 어떤 집에 살지가 관건이었다. 결혼 후 십년만의 첫 이사였기에 방과 화장실 개수, 부엌의 컨디션 등 많은 것들이 고민되었다. 제주이기에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새 보금자리가 된 타운하우스 단지 네번째 집은 안쪽으로 넓게 빠진 마당이 매력포인트였다. 6월에 처음 만났을 때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북쪽으로는 바다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초록 잔디 새싹은 파릇파릇 생기를 풍기며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삶의 방식과 태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확인하고 마당으로 연결되는 문을 활짝 열어 아침공기를 마신다. 새가 지저귀고 바람이 솔솔 부는 마당에서 맞는 아침은 활기찬 하루를 만들어준다. 그 시간이 좋아 기상시간이 빨라졌고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깊은 땅의 차가운 기운이 고스란히 내 발에 전해져서 좋았다.


제주 날씨의 변화는 마당에서 더욱 민낯을 보이기에 하루에도 여러번의 다짐을 해야했다. 아침에 구름 낀 우중충한 날씨여서 밀린 집안일을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점심쯤 개어 쨍한 햇살을 내려주었고 바삭바삭한 빨래를 기대하고 널어 놓으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버렸다. 그래서 파란 하늘이 보이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흐린 날이 와도 슬퍼하지 않았고 해뜨는 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이 제일 행복한 날 인 듯 하루를 소중히 살게 되었다.



길게 뻗은 마당의 제일 안쪽에는 한 평 남짓한 텃밭이 자리 잡고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 바질 모종을 사와 줄맞춰 촘촘히 심어놓으면 어느새 잎이 한 가득 열린다. 바질잎과 올리브오일, 마늘, 치즈, 잣을 믹서기에 넣어 갈아만든 수제 바질페스토는 빵이나 고기에 곁들여먹으면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요리를 하면서 마당에 나가 바로 뜯어오는 허브는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 음식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완두콩 씨앗을 사다가 심었을 때 잭의 콩나무가 하늘을 뚫고 쑥쑥 자라나듯 텃밭을 꽉 채웠고 알맹이들 빼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은 마당 식물들에게 물도 주고 텃밭의 잡초도 함께 뽑는다. 여린 모종들이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장갑을 낀 작은 손으로 돌멩이도 파주고 흙도 단단히 눌러준다. 작은 생명들이 더 작은 생명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나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줄 것을 약속한다.



마당의 잔디가 주택사는 사람들의 제일 큰 숙제인데 우리는 앞집 이웃께서 잔디를 깎아주시며 꺾어진 나무도 세워주시고 퇴비장도 만들어주시고 무너진 돌담도 고쳐주시고 무슨 복이 있어 이런 분들을 만났나 싶다. 우리집 잔디도 앞집과같은 높이로 가지런히 깎여있는 모습을 보면 연고 없는 제주에서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바람없는 날씨 좋은 날이면 이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낸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감사한 인연도 제주에서는 다 특별하다.


마당이 있는 집은 우리의 삶을 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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