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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동쪽 캠핑여행

제주 동쪽은 캠핑 천국


제주에서 차를 모는 것은 육지와 많이 다르다. 일단 30분이 넘어가는 곳은 되도록 가지 않는다. 막히는 길 한시간 가는 것과 차 없는 길을 내리 운전하며 간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기도 하고 부득이하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오갈 때는 1박을 하고 온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을 해야하는 동쪽으로의 이동을 나는 '동쪽여행'이라고 부른다. 휴양림을 끼고 있는 야영장이 주로 동쪽에 몰려 있다 보니 붉은오름자연휴양림, 교래자연휴양림 야영장에 우리의 텐트를 쳐 놓고 주중에는 가보지 못하는 명소들을 가고 휴양림을 즐기게 되었다.


제주의 휴양림야영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다. 숲나들e 홈페이지에서 매월 1일이 되면 휴양림들의 다음달 야영장 예약이 열리게 되는데 1초만에 주말 자리가 마감된다.


데크끼리 거리가 있어 조용한 분위기에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붉은오름휴양림야영장은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캠퍼들의 로망으로 불린다.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진 취사장과 샤워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목재문화체험장은 붉은오름을 다시 찾는 이유다.


입구로 들어와 붉은오름의 웅장한 기운을 받으며 체크인을 하면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 우리 오늘은 몇 번이야? 조릿대? 복수초? 상사화?"

"응. 우리는 조릿대야."


식물이름으로 데크마다 세워놓은 푯말이 예쁘다.

자연스레 수레를 끌고 오는 고사리 손들이 분주하다. 트렁크 가득 싣고 온 짐을 왔다갔다 옮기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난다. 먼저 와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텐트를 슬쩍 구경하며 우리 자리를 찾는다. 아이들은 제법 능숙해진 손길로 텐트를 펼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빠를 도우려 이 장비 저 장비 만져본다. 폴대를 끼워 뼈대를 만들고 천을 잘 맞춰 세우면 이틀동안 우리의 집이 되어줄 텐트가 완성된다. 테이블과 의자 가져온 식량들을 잘 배치한 후 한 바퀴 둘러볼겸 산책로를 걷는다.


하늘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높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각각의 텐트들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 난장이들이 뛰어나올 것처럼 동화 속 숲속마을 같다.



'엄마, 저기 노루보여? 조용히 가보자!'. 길을 걷다 노루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잠시 멈췄던 순간. 신비로운 경험에 심장이 뛴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마음을 키워가는 과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기에 엄마, 아빠와 함께한 이런 시간들이 아이들을 성장시킬 것이라 믿는다. 네 식구가 좌충우돌 겪어보는 일들이 우리를 더 웃게 해주고 서로의 눈을 더 읽게 되는 것 같다.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저녁 식사 준비에 텐트들이 시끄럽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오면 집집마다 조명이 켜지고 나무 숲 아래 은은한 빛이 감도는 저녁 시간이 아름답다.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 우리도 아이들도 겉옷을 더 챙겨입는다.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데우기 위해 우리가 자주 해먹는 메뉴는 샤브샤브다. 육수에 알배추, 버섯, 숙주, 어묵을 넣은 담백한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몸을 녹인다.



캠핑에 와서는 설거지를 하기로 약속한 아이들이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챙겨 취사장으로 간다. 소매도 젖고 고무장갑도 커서 수월하진 않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임해줘 기특하다.


우리 가족만의 대화를 나누며 점점 더 깜깜해지는 밤을 바깥에서 온전히 누린다. 시간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나중에는 한장면 한장면 추억으로 남을 것을 안다.


잠자리를 책임져줄 침낭에 내 몸을 가지런히 넣고 지퍼를 잠근 후 꿀맛 같은 잠에 빠진다. 낯설고 어딘가 불편한 바닥이지만 침묵 속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아무도 깨지 않은 고요한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떠 텐트 지퍼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적실 때의 상쾌한 기분이란 경험해 보지 못하면 알 길이 없다.


기지개를 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무사히 지나간 어둠의 시간들에 안심하고 아이들 얼굴을 평화롭게 바라본다.


빵을 데우고 과일을 깎으며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다. 숲 속에서 내리는 원두커피는 어느 유럽의 운치있는 카페보다 설렌다. 준비해온 재료 안에서 부족한 듯 허기를 채우고 붉은오름 탐방로가 있는 휴양림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발걸음이 빨라질 수록 뻐끈해진 등과 허리를 자극시키며 서서히 체온이 오름을 느낀다.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바다, 오름들이 내려다보인다. 캠핑을 하면서 오름도 즐길 수 있다니 이것이 제주도 휴양림야영장에 오는 이유이다.


짐을 싣고 옮기고 펼치고 접고 다시 옮기는 번거로운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남편을 따라다니며 점점 시간을 보내보니 자연안에서 천천히 맞이하는 시간들이 참 좋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새와 나무가 속삭여 가만히 귀 기울여지고 싶어진다. 아이들도 함께 텐트를 치고 망치질도 해보고 음식준비며 설거지며 작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도맡아 책임을 다해보는 경험을 한다. 뒷정리를 하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비옷을 걸치며 묵묵히 일을 이어간다.


자연 속에서는 매순간이 다 소중해진다. 집에 돌아와 피로가 쌓인 몸이지만 머리 속은 깨끗해지며 다음 캠핑장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의 몸도 나아가는 것 같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은 나의 바램에도 가까워지는 듯 하다.


올 가을도 텐트에서의 낭만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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