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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가을엔 바다수영을 하겠어요

곽지에서 한담까지


10월. 바다는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 태양 아래 철인 슈트를 입고 수영을 하면 체온이 올라가 숨이 답답해질 정도라 강렬함이 한풀 꺾인 늦가을부터 바다수영하기 좋은 날씨다. 수온은 한 달 정도 늦게 떨어지기 때문에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을 바다수영의 성수기로 부른다. 여름내 나타났던 물벼룩과 해파리들도 점점 사라져 안심하고 수영을 할 수 있다.


바다수영 일정이 동호회 밴드 공지에 올라오면 회원들이 차례대로 댓글을 단다. 참석 1, 참석 2, 참석 3... 바다라는 곳은 어떤 긴급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참석'이라는 두 글자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회원들과의 약속까지 담겨있다.


'물때와 날씨'라는 앱에서 풍량, 조류, 간조, 만조 등 바다상태를 확인하고 빠진 장비가 없는지 미리 체크해 놓는다. 바다라는 대자연이 주는 감동에는 매일이 다르고 예측할 수 없는 데 있지만 그만큼 슈트와 부이(부표)는 생명줄과도 같다.


바나나 한 개 정도로 배를 가볍게 채우고 수경, 수모, 스노클, 롱핀, 핀삭스를 챙긴다. 타이트한 고무소재된 철인슈트는 처음 입을 때는 땀이 날 정도로 오래 걸리지만 차츰 적응하게 된다. 슈트는 돌이 많은 바다에서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시켜 주며 부력으로 인해 몸이 뜨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아직 꿈나라인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고 '엄마, 아빠 바다 갔다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따뜻한 물을 챙겨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 둘째가 좀 커서 우리 둘만의 외출이 가능해졌고 바다에서의 두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꿀 같은 자유다.


'승연아, 승민아 일어났니? 엄마, 아빠 곽지 오는 길에 쌍무지개 봤다?! 이제 바다 들어가니 끝나고 연락할게!"


마흔에 바다수영을 만나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 아빠 바다가 그렇게 좋아?"."응. 바다에서 수영하면 물고기가 된 것 같아!"


아이들도 우리의 취미생활이 신기한 듯 물어본다. 제주바다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바다수영, 스노클링, 프리다이빙을 함께 배우면서 네 식구 모두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른 아침, 주말마다 곽지바다를 향해 달리는 이 기분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설렘이다. 서울에서도 남편과 나는 수영을 다니긴 했지만 바다에서 하는 공통 취미가 생긴 것이다. 서로의 장비를 체크해 주고 주차장에서 반가운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처럼 자신을 지켜줄 장비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바다로 간다.



곽지과물노천탕 앞에 도착하여 모두 슬리퍼를 모래사장 밑에 파묻고 준비운동을 한 후 입수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슬리퍼 분실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회원들이 다섯 명이 되자 상습범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분이 숨어서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남자가 모래사장을 뒤적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을 포착해 도둑놈을 잡고 난 후로는 우리의 슬리퍼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해변에서 반환점까지의 코스를 보면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들어가기 전까지도 의문이 든다. 하지만 끝까지 와서 바라보는 바다는 다르다.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조금은 친근해진 기분이다.



처음에 입수 후 물속을 천천히 헤엄치며 가장 먼저 시야를 확인하고 조류를 몸으로 느끼면서 바다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파도가 심한 날 긴장한 모습을 본 바다대장이 나에게 슈트 안으로 물을 넣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차가워도 체온으로 데워져 훨씬 더 빠르게 적응이 되는 것을 느낀다. 바다에서는 첫째도 침착, 둘째도 침착, 셋째도 침착이다. 멘털을 강하게 잡고 있으면 어떤 상황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바다에서는 긴급상황에서 내 구조요원이 되어줄 버디를 꼭 정해서 함께 다닌다. 멀리 떨어져서도 안되고 속도가 다르다고 먼저 가도 안된다. 입수부터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며 반환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호흡을 깊게 쉬면서 오리발을 꾹꾹 눌러가며 물살을 타고 버디와 박자를 맞춰 팔을 젓는다. 물고기 떼도 보이고 바닥을 기어가는 가오리도 보면서 해양생물들과 함께 수영을 할 때 물속에서 웃음이 난다. 큰 여(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돌에 붙어있는 뿔소라와 전복, 성게를 찾아보고 있으면 떼로 지나가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주먹만 한 뿔소라를 잡은 회원이 돌에 깨서 알맹이를 손질해 먹어보라며 준다. 물에서 바로 먹는 뿔소라는 진한 바다의 맛이었다. '바로 먹는 소라는 보약이야~보약!' 대장의 말에 온몸에 힘이 솟는 기분이 든다.



수영을 시작한 지는 십 년이 넘었지만 바다수영은 올 5월이 처음이다. 내 몸의 한계와 부딪혀보며 숨을 끝까지 써보는 운동을 하게 되면서 체력이 점점 더 올라왔고 하면 할수록 바다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느꼈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오면 약 2.5km 정도가 된다. 처음에는 숨도 차고 버겁게 다녀왔는데 이제는 즐기면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버디와 함께 팔동작을 맞춰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내 몸이 나가는 것이 느껴질 때 희열을 느낀다. 바다에서 일출을 보고 물고기 떼를 보며 서로 감탄하고 비 오는 날 빗방울을 원 없이 맞으며 어린아이처럼 웃어도 보고 파도가 높아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버디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전우애가 생기고 제주에서 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들이다.


우리는 오늘도 주말 바다 수영 공지에 참석 댓글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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