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살아 내는 방식
나는 진심으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오늘을 넘기는 일이다.
어제와 비슷한 얼굴로 아침을 맞고,
익숙한 길을 걸어가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말들을 고르고,
마지막엔 “그래도 하루가 갔다”는 사실 하나로 잠든다.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조용하다.
누군가는 그걸 결과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의미라고 부르지만,
내가 아는 살아감은 대개 표정이 없다.
웃는 얼굴 뒤에도, 괜찮다는 말 뒤에도
사람은 늘 조금씩 닳아 있다.
가끔은 이런 날이 있다.
살고 있다는 감각이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감각만 남는 날.
숨을 쉬고는 있는데 마음이 따라오지 못하는 날.
몸은 일정을 소화하고
입은 대답을 하고
손은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멈춰서 있다.
그럴 때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살고 있나.
아니면 그냥, 살고 있는 척을 하고 있나.
진심으로 산다는 건
언제나 열심히 산다는 말과는 다르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도 아니고,
늘 선명한 방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산다는 건 오히려
내가 무너진 지점을 숨기지 않는 일에 가깝다.
함께한 모든 시간이 진심이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아름다운 고백이 아니라
지금의 공백을 설명하는 증거가 된다.
진심이었던 만큼,그 자리는 더 크게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이 아프고 그 아픔이 오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진심을 줄이는 방법을 배운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기,
기대하지 않기,
정리할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기.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마음을 절반만 쓰는 법.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살아야 한다면,
꼭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나는 진심으로만 살 거다.
더 아프고 더 힘들어도
내 마음을 속이면서까지 살고 싶진 않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태도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살아내겠다고, 오늘도 무너지지 않겠다고,
오늘도 진심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비어 있는 자리가 아프면 그만큼 진심으로 살았다는 뜻이다.
아프지 않은 삶이 좋은 삶이라면 나는 그 삶을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아픈 만큼 진짜였던 시간을 믿는다.
살아간다는 것.
그건 누군가에게는 목표이고
누군가에게는 벌이고
누군가에게는 습관이다.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진심을 잃지 않고
하루를 통과하는 일이다.
오늘도,
더 아프고 더 힘들어도
나는 진심으로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