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었음 좋겠다.
기억인지 추억인지 모르겠다.
그때 그 시간, 그때 그 장소들은 문신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려 하면 상처가 나서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
기억은 사실의 형태로 남는다.
언제였는지, 무엇이 있었는지, 누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남을수록 더 무겁고, 흐려질수록 더 불안해진다.
기억은 없어지기보다 분류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통증이다.
장면이 아니라 좌표처럼 박혀, 비슷한 공기만 닿아도
그날의 온도를 다시 가져온다.
이런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려 하면, 그날이 다시 현재가 된다.
추억은 기억의 감정이 가라앉은 상태다.
기억이 “무슨 일이 있었나”를 말한다면,
추억은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를 남긴다.
기억이 정보를 보관한다면, 추억은 온도를 보관한다.
망각은 이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망각은 삭제가 아니다.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를 찌르는 힘을 줄이는 쪽에 가깝다.
그 거리가 생겨야 기억은 조금 덜 날카로워지고,
추억은 조금 더 조용해진다.
기억과 추억과 망각의 상관관계를 정의하자면
기억은 사실을 남기고, 망각은 그 사실과 나 사이에 여백을 만들고
추억은 그 여백 위에 감정이 조용히 남는다.
망각이 없으면 기억은 계속 날카롭다.
그럼 추억으로 전환되기가 어렵다.
망각이 너무 빠르면 추억이 되기 전에 공백만 남는다.
그러니 망각은 ‘지우는 힘’이 아니라
‘추억으로 가기 위한 완충’이다.
우리는 종종 “잊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기억을 지우고 싶은 게 아니라
기억이 나를 찌르는 방식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잊는 것이 그 시간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망각은 부정이 아니라
기억과 나 사이에 필요한 여백이다
그러니 지워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지우지 않으려 한다.
상처를 내며 삭제하는 대신,
시간과 망각이 만들어주는 여백 속에서
그 기억이 스스로 추억으로 옮겨갈 때까지
조용히 두려 한다.
어쩌면 삶은.. 기억을 안고, 망각으로 숨을 돌리고,
추억으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조용히 이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 에게 난 지움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