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AI 시대에는 누가 남을까?

쉽지만은 않다.

by hako

IT 일을 하고 있거나, 한때 했던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이 질문을 한 번쯤 떠올렸을 것이다.

과연 AI 시대에는 누가 남을까?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역할은 달라도 불안은 비슷하다.


“내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AI는 이제 많은 것을 아주 빠르게 만든다.
요구사항 문서는 몇 초 만에 그럴듯해지고, 화면은 여러 버전으로 쏟아지고, 코드는 오류까지 찾아 고쳐서 돌아오기도 한다. 예전엔 며칠이 걸리던 일이, 딸깍 딸깍 끝내버리기도 한다.

조직 안에서는 가끔 “딸깍” 하면 모든 프로세스가 완료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생긴다.

‘병목’은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속도가 바뀌면 가치의 기준도 바뀐다.
“얼마나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프로젝트는 여전히 어렵다.
많은 경우 제품은 실패하고, 사용자는 떠나고, 조직은 엇갈린다.

AI가 초안을 만들어줘도 일이 쉬워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초안이 늘어도, 정답이 자동으로 늘지는 않기 때문이다.


AI가 잘하는 건 ‘생산’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부딪혀온 건 생산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문제를 어디에 둘지, 무엇을 포기할지, 어떤 지표로 성공을 증명할지, 실패했을 때 어디서부터 다시 고칠지. 프로젝트의 핵심은 늘 “선택”에 있었다.

선택은 책임을 동반하고,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AI 시대에 남는 직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는 ‘태도’가 있는 것 같다고.

산출물을 만드는 일은 더 쉬워질 것이다.
문서를 정리하고, 화면을 그리고, 코드를 입력하는 일은 점점 더 빨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쉬움은 역설적으로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이걸 왜 만들지?”
“이게 정말 필요한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
“안전한가?”
“유지할 수 있나?”
“내일도 살아남나?”


기획자는 이제 문서만으로 존재를 증명하기 어렵다.
대신 문제를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실험과 지표로 ‘맞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디자이너는 화면의 미감을 넘어,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흐름과 구조를 설계하며, 품질 기준을 세워야 한다. 개발자는 코드를 넘어서, 시스템이 버티는 방식과 장애가 복구되는 방식, 보안과 운영까지 포함한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 이 변화는 한 가지 공통점을 만든다.


직무의 경계가 흐려지고, 결국 남는 사람의 모습이 비슷해진다는 것.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믿기보다 검증하는 사람, 트레이드오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 성과와 리스크를 함께 관리하는 사람. 다시 말해 “그럴듯함”이 아니라 “맞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그게 우리가 원래 하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모호한 요구사항을 해석했고, 불완전한 데이터를 읽었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했고, 출시 뒤의 문제를 마주했다. AI는 그 과정에서 비교적 쉬운 부분, ‘초안’을 만드는 일을 맡아준다. 그래서 남는 일은 더 인간적인 쪽으로 모인다.


판단, 설득, 검증, 책임.


결국 이 질문은 직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방향의 문제다.
AI 시대에 남는 사람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냐”로 결정된다.

초안을 만드는 사람인가, 방향을 정하는 사람인가.

기능을 붙이는 사람인가, 기준을 세우는 사람인가.

결과를 내는 사람인가, 결과를 증명하는 사람인가.


AI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만들어줄게. 대신 너는 결정해.”

그래서 지금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과연 AI 시대에는 누가 남을까?
아마 답은 하나다.

남는 사람은, 선택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검증하는 사람이다.



PC통신 시절엔 모뎀 소리가 입장 효과음이었다.
“띠—” 하고 연결되면, 세상과 접속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웹이 오자 링크를 타고 떠돌았고, 모바일이 오자 세상이 주머니로 들어왔다.

인간은 진화했고… 배터리 잔량에 감정이 흔들리는 휴먼이 됐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한다. “이제 사람 필요 없어.”
그럴 때마다 웃는다. 그런 말이 나올수록, 사람은 늘 다른 방식으로 더 바빠졌으니까.

초안은 AI가 만들고, 우리는 그럴듯함을 ‘맞음’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검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

모뎀 소리도 견딘 우리가 AI를 못 견딜까.


AI? 어디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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