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잠시 쉬어 가는 벤치가 되고 싶다.
내게는 오래된 인연인 선생님이 있다.
수업으로 만난 시간은 6개월 남짓이었는데,
인연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계산해 보면 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인연이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벤치가 먼저 생각난다.
누군가가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자리.
선생님은 내게 그런 자리였다.
한껏 방황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멋있게 말하면 방황이고,
솔직히 말하면 바닥의 바닥으로 내려가던 시간들이었다.
끝도 없이 내려가면서도, 마지막 문장은 늘 남겨두었다.
‘무너지진 말자.’
아마 그건
내가 나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끌어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바꾸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얼마 전, 점심을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선생님께 보낸 메시지를 다시 열어봤다.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선생님도 잘 도착하셨지요?”
평범한 안부였다.
그런데 그 안부에는 내 마음이 너무 많이 들어 있었다.
점심이 맛있었다는 말도 있었고,
세월이 빠르다는 말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고백 같은 문장도 있었다.
진짜 아무 생각 없던 중딩 이었던 내가
이제 세월을 좀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말.
아. 세월 참.
그 문장을 다시 읽다가 잠깐 멈췄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선생님 앞에서의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였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그 벤치는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메시지에서
나는 결국 한 문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과의 인연의 끈을 열심히 잡고 있었던 것은
제가 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맞다.
나는 ‘나를 놓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나를 그냥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괜찮아?”라는 확인에 가깝다.
"제게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요."
짧은 문장인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런 분’이라는 말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한꺼번에 접어 넣는 말이라서.
선생님은 늘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이
나를 평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웃음을 하나 달아놓았다.
“그래야 저도 계속 중딩 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거 같네요 ㅋㅋ”
웃음 표시를 달아놓고 진심을 숨겼다.
선생님 앞에서의 나는 아직도
어딘가 어설픈 중딩이라
진지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벤치를 하나씩 갖고 싶어 한다고.
완전히 무너지고 싶을 때,
잠깐 앉아도 되는 자리.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자리.
그래서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벤치가 되고 싶다.
대단한 위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답을 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자기만의 바닥을 지나고 있을 때
끌어올리려 하지 않고,
그냥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사람.
잠깐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 자리 자체로 말해주는 사람.
선생님이 내게 남겨준 방식은
아마 그런 거 인 것 같다.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기를 놓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오래된 인연을 떠올리며
나도 조금씩 연습한다.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 가는 벤치가 되는 일.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한 번 더 부른다.
'캡틴 마이 캡틴'
나도 너에게 그냥 벤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