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도 꾸준하게
10년이 넘게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린다.
이쯤 되면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도 한 번 도전해 볼만도 한데,
끝까지 버티고 있다.
나는 꾸준한 거를 그닥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영어 공부는 결심으로 시작해서 변명으로 끝나고,
다이어리는 첫 장이 가장 완벽하다.
그런데 커피는 참 꾸준히 내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나를 위한 꾸준함은 늘 가볍게 무너졌는데,
다른 사람을 위한 꾸준함은 그래도 잘 굴러간다.
“커피 마시자”라고 하면,
그 문장이 나를 움직이는 버튼이 된다.
내 의지는 약하지만, 너의 아침에는 강하다.
꾸준함이라는 건 대단한 것 같다.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일을 대단하게 반복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은 의외로 “나”보다 “너”에서 더 잘 나온다.
그래서 새로운 꾸준함을 시작했다.
‘관계는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라는 문장이 담긴
필사 노트를 하나 샀다.
필사를 시작했다.
정원 가꾸기는 그래도 좀 한다.
잡초가 올라오면 뽑고,
물 주는 타이밍을 놓치면 다음 날 더 신경 쓰고,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사람 간의 관계는… 영 부족하다.
정원은 말이 없다.
시든 잎은 시든 티를 내고,
과한 물은 과한 티를 낸다.
원인과 결과가 비교적 정직하다.
반면 관계는 가끔,
물을 줬는데도 시들고
안 줬는데도 살아 있고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인지 모르겠고
그렇다.
설명서가 없다.
나는 오랫동안 키보드만 사용했던 사람이라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손목이 먼저 항의한다.
“우리가 언제 이런 일을 했었나?”
노트위에 필기체는 곧장 초등학생의 일기장으로 돌아간다.
정성은 있는데, 폼이 없다.
그래도 계속 쓴다.
커피를 내리듯이.
한 줄, 한 줄.
매일 아침 물을 끓이고,
콩을 갈고,
물줄기를 내리고,
향을 맡고,
조용히 하루를 연다.
이제는 그 꾸준함을
커피 말고도 하나쯤 더 가져보려고 한다.
나를 위한 꾸준함을.
관계를 위한 꾸준함을.
말을 고르고, 시간을 주고,
손을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꾸준함을.
꾸준함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작은 의식이라는 걸
나는 커피로 이미 배웠다.
내일 아침도 커피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쓸 것이다.
정원은 금방 변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믿을 만하다.
관계도 아마 그럴 거다.
천천히,
매일.
커피 한잔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