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누구나 하나쯤은, 자기만의 대나무 숲을 품고 살까?
사람들 앞에서는 말이 정돈된다.
표정이 먼저 계산되고, 문장은 무난해진다.
그런데 어떤 말들은 무난해질 수가 없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고
나에게는 핑계가 될 것 같아서.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담아둘 곳이 없어서.
그래서 가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대나무 숲을 떠올린다.
외치면 바람이 받아 적고,
대나무가 대신 흔들어 주는 곳.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 말이 누군가의 평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내게는 그런 대나무 숲이 있다.
도자를 굽고 사는 친구다.
그 친구와 있으면 말이 살아난다.
밖으로 꺼내 놓기 힘든 말들.
그러나 꺼내 놓지 않으면
속에서 부풀어 터질 것 같은 말들.
나는 그 말을 친구에게 “들어달라”기보다
그냥 “묻고 싶다” 고 느낀다.
묻는다는 말은 참 편하다.
해결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고,
정답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어딘가에 내려놓고
잠시 무게를 잊는 일.
도자 작업실에는 가마가 있다.
불이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진다.
열이 공간을 지배하고
말도 그 열을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 외침도, 내 감정도, 내 고단함도
가마의 열 속에 같이 들어가 버리는 장면을.
그 열이면
내 말이 재도 남기지 못할 것 같다.
타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정리되는 느낌.
대나무 숲이 메아리를 돌려주지 않듯,
가마도 말의 흔적을 돌려주지 않는다.
대신 남는 건, 형태다.
흙이 버티고, 불이 지나가고,
마침내 단단해진 그릇 하나.
어쩌면 내가 친구에게 묻고 싶은 건
말이 아니라 그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살아내는 시간을 버티는 방법.
뜨거운 시간을 통과하는 태도.
그러니까, 내 대나무 숲은
대답해 주는 곳이 아니라
말이 나를 삼키기 전에
잠깐 숨을 쉬게 해주는 곳이다.
내 외침도 조용히 구워져
어딘가 단단한 형태로 남아주기를.